본문 바로가기

관심사

제구력의 마술사 그렉 매덕스...

728x90
반응형

정말로 좋아하는 선수중 한명입니다...



133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9번째 350승 투수가 나왔다. 우리가 직접 목격한 것은 로저 클레멘스(354승)에 이어 2번째다. 11일(한국시간) 그렉 매덕스(42·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지 21년8개월, 719경기 만에 350번째 승리를 따냈다. 클레멘스와 마찬가지로 100% 선발승이다.
 

매덕스의 다음 목표는 워렌 스판(363승). 20세기에 태어난 최다승 투수다. 스판에 앞선 5명(사이 영, 월터 존슨, 피트 알렉산더, 크리스티 매튜슨, 퍼드 개빈)은 모두 1800년대생이다. 하지만 팬들은 보다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직접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전설의 숫자, 400승이다. 메이저리그에서 2번째이자 마지막 400승은 1926년에 나왔다.

만 42세 투수에게 50승을 더 기대하는 것은 고목나무 보고 꽃을 피우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필 니크로(318승)가 48살까지 뛰며 42번째 생일 이후 85승을 거둔 것은 너클볼투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42세 시즌에 23승을 기록하는 등 영원히 은퇴하지 않을 것 같았던 스판도 결국 '42세 이후 34승'에 그쳤다. 하지만 그 도전자가 매덕스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스카우트의 평가기준인 20-80스케일에서 '메이저리그 평균'인 50에 해당되는 패스트볼 구속은 90마일(145km)이다. 놀란 라이언은 27년을 뛰는 동안 90마일 미만의 패스트볼을  1개도 던지지 않았다. 46살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강속구를 뿌린 라이언은 신화다. 하지만 90마일에도 미치지 않는 패스트볼로 350승을 거둔 매덕스 역시 신화다.

피칭 사이언티스트
오클랜드의 마무리투수 휴스턴 스트리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정성껏 모은 녹화 테이프를 본다. 화면 속 주인공은 미모의 여배우가 아니라 매덕스다. 스트리트는 매덕스가 타자를 잡아내는 과정이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다고 한다. 그는 매덕스를 '사이언티스트'라고 부른다.

매덕스가 던지는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서클 체인지업, 슬라이더, 스플리터, 싱커, 커브의 8가지. 이 모든 구종은 다시 속도과 궤적을 바꿔가며 들어온다. 한 경기에서 같은 공이 같은 코스, 같은 속도로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매덕스가 그 경기에서 80개의 공을 던지면 그날 던진 공의 종류는 80가지라는 농담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매덕스의 첫번째 성공요인은 제구력이다. 그에게 홈플레이트의 양 모서리에 꽂히지 않는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가 아니다. 통산 715경기에 선발로 나선 매덕스는 31.3%인 224경기에서 1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다. 1개를 내준 경기는 220경기(30.8%) 2개를 내준 경기는 142경기(19.9%)다. 3개 이상의 볼넷을 허용한 경기는 18%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체 볼넷의 18%는 고의4구다. 매덕스보다 고의4구의 볼넷이 높은 투수는 없다. 고의4구를 제외할 경우 매덕스의 9이닝당 볼넷수는 1.486개. 1900년 이후 1위는 1.589개의 크리스티 매튜슨이다. 하지만 1900년대 초반에는 고의4구가 홈런보다도 더 희귀한 장면이었음을 감안하면, 매튜슨을 넘어서는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전설적인 제구력의 투수는 과거에도 많았다. 백인이었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됐을 것이라는 세이첼 페이지는 홈플레이트 위에 놓인 껌종이를 맞힐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구종을 모두 완벽히 제구할 수 있는 투수는 없었다. 매덕스의 제구력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덕스도 눈을 감은 포수의 미트에 그대로 공을 꽂아넣은 일화가 있다.

퀘스텍시스템의 등장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투수는 매덕스다. 자신들의 스트라이크존에 점수가 매겨지기 시작한 후 주심들은 매덕스의 스트라이크에 대해 가장 인색해졌다. 그만큼 주심들은 매덕스의 제구력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애매한 공이 들어오면 일단 손을 올리고 봤다. 왜냐고? 매덕스니까. 그만큼 매덕스는 타자와 상대하기에 앞서 먼저 주심부터 완벽하게 제압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매덕스의 최고 무기는 투심이다. 메이저리그에 투심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이 바로 그다. 매덕스는 구속보다 무브먼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에 93마일 포심 대신 87마일 투심을 택했다.

손가락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매덕스표 투심의 무브먼트는 다른 투심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패스트볼(fastball)이 아니라 '빠른 변화구(fast-breaking ball)'다. 매덕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훈련은 손가락의 악력을 기르는 것이다. 현란한 매덕스표 투심의 원동력은 바로 손가락의 힘과 기술이다. 매덕스의 투심은 특히 좌타자 입장에서 '몸쪽으로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깥쪽으로 급격히 휘어져 나간다.

1990년대 초반 매덕스는 '왕서방이 싱커 던지듯' 투심을 뿌려댔다. 전성기 시절의 투심 구사 비율은 75%에 달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게 되고 87-89마일이었던 투심 구속이 84-86마일대로 떨어지자, 구질 다양화라는 새로운 전략을 택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성공했다.

특히 딕 폴 투수코치에게 배웠지만 그동안 던질 필요가 없었던 컷패스트볼을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몸쪽을 파고드는 커터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투심, 그리고 서클체인지업의 조합은 좌타자에게는 악몽이었다. 마리아노 리베라와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매덕스의 커터도 메이저리그 정상급 수준이다.

구속 변화, 제구력, 무브먼트에 이어, 매덕스 피칭을 대표하는 마지막 단어는 '수싸움'이다. 많은 타자들이 매덕스와 대결하고 나면 자신의 머릿속을 난도질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매덕스를 '외과의사'라고 한 토니 그윈의 기준으로 보면, 매덕스는 뇌수술 전문의다. 웨이드 보그스도 마치 매덕스가 글러브 안에 수정공을 숨겨넣고 타자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매덕스는 다른 투수들과 달리 볼배합을 포수에게만 의지하지 않는다. 매덕스의 볼배합은 비결은 단순하다. 너무 복잡하게 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자들은 그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다 결국 매덕스에게 말려든다. 관찰력 역시 상상을 뛰어넘는다. 매덕스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모습을 보고 어떤 공을 노리고 있는지를 알아낸다. 그가 17개의 골드글러브를 따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던진 공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를 알고 있는 덕분이다.

매덕스는 제구력의 마술사다. 그리고 무브먼트의 전도사다. 또한 속도 조절의 천재이며, 두뇌피칭의 대가다. 피칭을 예술로 승화시킨 마운드 위의 예술가다.

매덕스를 만든 사람들
13살 '소년 매덕스'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전직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랄프 메더였다. 지병 때문에 은퇴한 메더는 라스베거스로 옮겨와 어린 선수들을 가르쳤다. 매덕스도 그의 제자가 됐다. 메더가 배출한 메이저리그 투수는 단 3명. 매덕스 형제와 마이크 모건이다. 하지만 이 3명이 메이저리그에서 뛴 시즌은 도합 60년에 이른다. 모건은 22시즌, 형은 15시즌을 뛰었고, 매덕스는 23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메더가 매덕스에게 가르쳐준 것은 구양신공 같은 무림의 절대무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칭 교본 1장 1절에 해당되는 뻔한 내용이었다.

메더는 있는 힘껏 공을 던지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매덕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네 신체조건으로 그렇게 강하게 던지려고만 해서는 타자를 제압할 수 없을 게다" 그리고 힘을 빼고 던져 정확한 위치에 집어넣는 훈련을 시키고 또 시켰다. 메더가 강조한 것은 '볼 같은 스트라이크'와 '스트라이크 같은 볼'이었다.

매덕스는 메더로부터 그의 투수 인생을 지배하게 될 단어인 '무브먼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메더는 매덕스의 팔을 11시에서 10시로 내리게 했다. 그리고 투심 패스트볼 그립을 가르쳐 줬다. 그러자 공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매덕스는 무브먼트의 의미를 깨달았다.

당시 매덕스는 또래 투수보다 빨리 배운 체인지업을 이용해 또래 타자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더는 체인지업 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만의 패스트볼을 만들 때'라면서 지겹도록 패스트볼만 던지게 했다. '투수 매덕스'의 기초는 남들보다 훨씬 탄탄하게 다져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1984년, 매덕스는 네바다주에서 가장 돋보이는 투수가 됐다. 하지만 그를 보러 찾아오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거의 없었다. 대학들도 매덕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프로필에 적혀 있는 신체조건 때문이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매덕스의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매덕스가 받아온 유니폼을 줄여주는 것이었다.

그해 봄 시카고 컵스의 스카우트 덕 맵슨은 구단으로부터 매덕스를 보고 오라는 귀찮은 지시를 받았다. 컵스는 1년 전 같은 학교의 다른 투수를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 매덕스라는 특이한 존재를 알아냈다.

매덕스를 본 맵슨은 실망했다. 스피드건과 스톱워치를 가지고 여러가지를 쟀지만 뭐 하나 만족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패스트볼 구속도 84마일(135km)에 불과했다. 배트보이가 마운드에 올라와 공을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장난에는 일가견이 있는 매덕스는 실제로 데뷔 첫 해 가장 좋아한 선배인 릭 서클리프와 함께 배트보이인 척하고 다니며 많은 상대팀 선수와 구장 관리인을 골탕먹었다).

하지만 맵슨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공을 너무도 쉽게 던지는 모습이었다. 경기장 이곳 저곳을 다니며 매덕스의 피칭 동작을 둘러보니, 그보다 힘을 적게 들이고 던질 수 있는 투구폼은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 7회가 되자 맵슨은 또 한 번 놀랐다. 위기를 맞은 매덕스가 갑자기 돌변, 강속구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속도를 재보니 90마일이었다. 그제서야 맵슨은 매덕스가 지금까지 전력피칭을 하고 있지 않았음을 알았다.

맵슨은 댈러스 그린 단장에게 매덕스를 뽑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라고 보고했다. 컵스는 맵슨을 믿기로 했고 결국 자신들이 가진 2번째 지명권(31순위)을 매덕스에게 썼다. 자신이 메이저리그 팀의 선택을 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매덕스는 하와이에서 졸업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매덕스라는 괴물을 창조해낸 '프랭켄슈타인 박사'는 그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메더는 드래프트 1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1987년 21살의 매덕스는 의기양양하게 풀타임 첫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큰 낙담과 함께 시즌을 마감했다(6승14패 5.61). 실패를 견딜 수 없었던 매덕스는 시즌 중 감독에게 마이너리그로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다.

매덕스에게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것을 눈치챈 딕 폴 투수코치는 구단에 매덕스를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에 보내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자기도 따라갔다. 폴이 목표로 삼은 것은 체인지업의 완벽한 장착. 그리고 몸쪽승부였다. 매덕스는 윈터리그에서 지겹도록 서클 체인지업만 던졌다. 그리고 이듬해 메이저리그에서 체인지업을 가장 잘 던지는 투수 중 1명이 됐다.

또한 폴은 매덕스에게 '삼진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삼진은 우연한 산물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매덕스는 이후 폴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랐고 타자를 잡아내는 데 가장 적은 공을 쓰는 투수가 됐다. 힘의 사용과 부상 위험성을 최소화시킨 투구폼을 가지고 있는 데다 공도 적게 던지는 투수. 매덕스는 롱런할 수밖에 없었다.

매덕스는 자신을 행운아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좋은 스승을 만났다고 자부한다. 메더와 폴 외에도, 마이너리그 시절 바깥쪽 승부의 기초를 닦아준 짐 라이트, 역시 마이너리그 시절 투수코치로 마운드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준 짐 콜번, 그리고 자신을 진정한 투수로 완성시켜준 리오 마조니. 매덕스가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달아줘야 할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매덕스도 이들의 합작품이다.

인물과 기록으로 보는 매덕스 A-Z
Atlanta(애틀랜타) :  매덕스의 350승은 컵스에서 올린 133승(38%) 샌디에이고에서 올린 17승(5%) LA 다저스에서 올린 6승(2%)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거둔 194승(55%)으로 구성되어 있다.

Best season(최고의 시즌) : 최고의 전성기는 2년 연속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수상한 1994-1995년(53경기 20완투, 35승8패 1.60). 안타깝게도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들로, 선발 17경기를 잃었다. 매덕스는 1994년 파업이 일어나기 직전 7경기 5완투 5승2패 1.03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파업을 주도한 선수 대표는 팀 동료 톰 글래빈이었다.

Cy Young(사이 영) : 사이 영의 <15년 연속 15승>과 <19년 연속 10승>은 511승과 함께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매덕스는 <17년 연속 15승>과 <20년 연속 10승>으로 이를 넘어섰다. 2⅓이닝만 더 던졌다면 <19년 연속 200이닝>이라는 영의 또 다른 기록도 깰 수 있었다. "립켄의 연속 출장에는 수많은 슬럼프와 부진했던 시즌들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매덕스의 연속기록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엘리어트 캘브의 말이다.

Diamondbacks(애리조나) : 매덕스는 사막의 방울뱀을 가장 무서워한다? 애틀랜타(8승)를 제외한 모든 내셔널리그 팀들을 상대로 10승 이상을 거둔 매덕스지만, 애리조나를 상대로는 2승에 불과하다(통산 19경기 2승11패 5.29). 2000년 승리 후 2007년 2번째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는 11경기에서 8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뱀사골(체이스필드)에서의 성적 역시 형편없다(12경기 1승7패 6.01).

Eddie(에디 페레스) :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호흡을 맞춘 매덕스의 첫 전담포수. 매덕스가 하비 로페스의 방망이를 마다하고 페레스를 택한 것은 그의 완벽한 포구능력 때문이었다. 특히 움직임이 심했던 매덕스의 공은 포수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스트라이크가 되기도 하고 볼이 되기도 했다. 이후 매덕스는 미트질이 좋은 포수를 보면 군침을 흘렸고, 폴 바코가 페레스에 이은 '매덕스의 남자'가 됐다.

Family(가족) : 매덕스가 가장 존경하는 투수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손쉬운 방법. 딸과 아들의 이름을 보면 된다. 매덕스는 딸의 이름을 아만다 '세이첼' 매덕스, 아들의 이름은 체이스 '페이지' 매덕스로 지었다.

Gold glove(골드글러브) : 황금장갑 17개는 짐 캇(투수)과 브룩스 로빈슨(3루수·이상 16개)을 넘어선 역대 최고기록. 어쩌면 20개를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실책이 단 1개인 그에도 약점이 있으니, 바로 도루다. 매덕스는 통산 718경기에서 521개를 내줬다(글래빈 673경기 225개). 그러나 도루 저지에 대한 그의 무관심은 오히려 철저한 손익계산에 의한 것일 수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