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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배기의 죽음’ 비정한 부모 무심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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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어린 자녀를 살해해 유기한 비정한 부모 검거’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세살배기 아이가 아빠한테 맞아 숨졌고, 부모는 숨진 아이를 몰래 버렸다는 사건 내용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그뿐이었고 사건은 곧 잊혀졌다. 검거된 부모가 키우던 다른 두 아이에 대한 사회의 별다른 조처는 없었다. 혹한의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된 아이의 주검은 사건 해결 뒤에도 한달이 되도록 병원 냉동고에 ‘차갑게’ 방치됐다. 경찰은 ‘아이 아빠가 구속된 뒤 엄마가 장례비 지원금을 갖고 사라졌다’고 전했다.

호진(가명)이의 주검은 지난 1월31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짓다 만 건물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됐다. 영하 12도의 칼바람 속에서 주검은 흰 비닐봉지에 둘둘 말린 채 시커멓게 얼어 있었다. 버려진 합판 하나를 주워 가려던 왕아무개(57)씨가 합판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려고 비닐봉지 속 분홍색 줄무늬 수건을 잡아당기지 않았더라면 호진이의 주검은 영영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검은 흰색 유아용 이불, 파란색 비닐봉지, 분홍색 줄무늬 수건, 흰색 이불포장 비닐봉지에 겹겹이 싸여 택배용 상자에 담겨 있었다. 상자 일부는 이미 누군가 뜯어간 상태였다. 아이 머리엔 핏자국이 선명했다. 온몸이 ‘억울한 죽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광진경찰서 강력2팀은 설 연휴를 반납하고 수사에 매달렸다. 수건의 글씨, 이불포장 비닐의 상표까지 추적하며 화양동 일대를 탐문했다. 일주일 뒤 범인이 잡혔다. 비닐을 칭칭 감고 있던 황토색 테이프에서 나온 지문이 범인을 지목했다. 호진이 엄마 이아무개(29)씨의 지문이었다. 경찰은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이가 아빠 김아무개(32)씨였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 호진이가 숨진 날은 지난해 12월16일이었다. 이날 새벽 3시께 자다 깨 우는 호진이를 아빠가 손으로 마구 때렸다. 방이 두개인 반지하 집에서 김씨 부부는 호진이의 형(4)과 동생(8개월)만을 데리고 큰방에서 잤다. 호진이는 작은방에서 홀로 자던 중이었다. 부부는 경찰에서 “둘째가 유독 떼가 많고 잘 울어 따로 잤다”고 진술했다.

10대를 넘게 때릴 즈음에 아이의 숨이 멎었다고 한다. 부부는 아이 주검에 이불을 덮어 8일 동안 작은방에 방치했다. 냄새가 나자 다시 이불과 비닐로 싸 세탁기 위에 열흘 동안 방치했다. 주검을 집 안에 방치하는 동안 호진이 형한테는 “작은방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주검을 내다버린 건 아이가 죽은 지 18일이 지난 1월3일 새벽이었다. 남은 가족들은 서둘러 이사를 했다.

부부는 2006년 컴퓨터 게임을 통해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2007년 첫아이를 낳은 뒤 이씨가 가출을 했고, 두달 만에 돌아온 그는 임신 상태였다. 동거를 계속했고, 둘째에 이어 셋째도 낳았지만 남편은 둘째 호진이가 다른 남자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했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남편은 겨울 들어 일이 없어 매일 집에 있었고, 넷째를 임신한 상태였던 아내는 게임방에 가서 컴퓨터 게임을 해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었다.

경찰은 아빠 김씨를 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지만, 엄마 이씨는 남은 두 아이의 양육과 출산을 위해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가가 있는 대구로 갔다. 그 뒤 병원에서 이씨에게 “아들의 주검을 찾아가라”고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이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장성원 광진경찰서 형사과장은 “이씨가 시가에 아이들을 맡긴 뒤 장례비 지원금을 들고 집을 나갔다”고 전했다. 아이의 주검과, 다른 두 아이가 또 버려진 셈이다.

지난 8일에야 호진이의 주검이 화장됐다. 주검이 방치돼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홍영화 광진경찰서장이 민간단체인 한국피해자지원협회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장례비 등을 지급했다. 병원으로부터 “비용은 해결됐으니 와서 장례를 치르라”는 전화를 받고 호진이 할머니가 화장터에 동행했다. 숨진 지 3개월, 발견된 지 40여일이 지나서야 호진이는 한 줌의 재가 됐다.

임지선 이유진 기자 sun21@hani.co.kr

‘패륜’ 부모에 남은 아이 키우라니…

친권 이유로 개입 망설여
아동피해 지원 강화해야

호진(3·가명)이의 주검이 방치된 배경에는, 가정 내부에서 범죄가 일어나도 그 해결을 다시 그 ‘가족’에게 맡기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빈약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아이가 부모에게 맞아 숨졌는데도 가해자인 부모에게 장례 절차를 맡기고, 또 가해자인 부모와 나머지 자녀를 분리하지도 않을 만큼 아동 범죄피해자 보호에 무감각한 것이다.

지난 2005년 ‘범죄피해자 보호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실제 혜택을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216만8000건의 범죄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범죄피해자 구조금을 지급받은 경우는 200여건에 불과하다. 류호선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사무과장은 “아직까지 피해자 지원에 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아 수사기관과 피해자, 지원단체 사이에도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호진이의 주검 처리 문제도 미처 파악을 하지 못해 지원이 늦어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범죄피해자 지원 시스템이 열악한 상황에서, 사건에 개입하기가 매우 조심스런 ‘가족 내 사건’은 더욱 외면당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국내에서는 범죄 피해를 당한 아이는 물론 그 형제들까지 사회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미비한 상태”라며 “어머니가 양육을 지속할 경우 (호진이에 이어) 다른 아이들까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친권에 대한 개입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도 “범죄피해자 지원 정책의 경우 아동과 청소년, 노약자, 여성 등에 대한 우선순위 등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지선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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