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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이후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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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ghlyDrafted Magazine

Daniel Eran Dilger in San Francisco

Apple’s 15 years of NeXT

December 21st, 2011

15년 전, 애플은 넥스트 소프트웨어 인수를 발표했었다. 결국 20년 전 공동창립했던 회사로 스티브 잡스를 복귀시킨 인수였다.

애플의 넥스트 인수 이후 15년이 흘렀고, 애플은 이제 완전한 기업으로서 재탄생하였다. 넥스트 출신의 간부진과 엔지니어를 포함하여 잡스가 이끄는 새로운 경영팀이 완전히 새롭게 애플을 바꾸는 동시에 넥스트의 신기술과 방향을 얻어내면서 말이다.

NeXT before Apple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기 이전, 넥스트 소프트웨어는 1993년 하드웨어 사업을 갑자기 철수한 이래 자신의 진보적인 운영체제 기술을 어떻게 판매할 수 있을지 힘든 해를 보내고 있었다. 이미 넥스트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넥스트 컴퓨터 시장을 충분히 확보하는데 실패한 바 있었다.

소프트웨어 회사로서 3년을 거친 넥스트는 선(후에는 HP)과 파트너쉽을 맺어 오픈스텝(OpenStep) 계획을 발표했다. 오픈스텝은 넥스트스텝 운영 및 개발환경상에 구축해 놓은 개방형 스펙으로서, 선의 솔라리스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NT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영체제상에서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선과 HP 모두 결국 넥스트와의 파트너쉽에서 물러나게 된다. 선은 자바에 집중하고 HP는 애플과 IBM의 탈리전트(Taligent)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탈리전트는 넥스트 기술을 그대로 복제한 기술 프로젝트였다.


넥스트는 또한 넥스트스텝의 객체지향 개발툴로 다이나믹한 웹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해 사용하는 툴인 웹오브젝트(WebObjects)도 개발했다. 잡스는 웹오브젝트를 넥스트의 핵심 자산으로 여겼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가 점차 지배해가고 있는 시장에서 써드파티 대안형 운영체제를 팔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웹오브젝트를 택했기 때문이다.

Apple before NeXT

1996년, 애플은 이제 윈도 외에 살아남은 유일한 주요 컴퓨팅 플랫폼이었고, IBM의 OS/2와 선의 솔라리스, BeOS, 넥스트스텝과 같은 대안형 라이센스 OS와는 달리 직접 매킨토시 하드웨어를 판매했기 때문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안형 라이센스 OS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라이센스 계약에 종속적인 PC 시장에서 충분한 수의 구매자와 개발자를 끌어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다고는 해도, 애플의 상황 역시 좋지 않았다. 원래의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현대화시키려는 애플 스스로의 노력은 실패했고, 컴퓨터 업계에서도 지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애플은 IBM(후에는 HP)과 연합하여 넥스트스텝-류의 시스템인 탈리전트를 개발하고, 스스로도 코플랜드 운영체제를 시도했지만 그 어떠한 노력도 실제 제품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애플은 아직 실험적인 운영체제였지만 매킨토시 라인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Be와 협상을 시작했다. 단 BeOS가 맥 하드웨어에서 이미 돌아갈 수는 있었지만, 기존 맥오에스의 대체용으로 팔 수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고 출력 아키텍쳐와 같은 핵심 기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애플을 되살리기 위해 영입됐던 당시 애플 CEO인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넥스트를 조사했다. 급속도로 나이를 먹어가는 맥오에스를 대체할 완성되고 입증된 데스크톱 OS로서, 또한 관련 개발툴인 웹오브젝트와 적당한 기업시장을 갖고 있는 곳이 넥스트였다.

당시 맥 사용자들은 넥스트보다 Be에 더 친숙했다. BeOS의 소비자/취미가를 향한 집중도 그렇지만 잡스가 애플을 떠난 이후 애플이 넥스트의 소비자시장 진출을 계약으로 막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잡스는 애플을 나갈 당시 주요 애플 엔지니어를 같이 데리고 나갔었다. 하지만 아멜리오는 넥스트를 확신했다. 1년 정도면 "랩소디" 전략상 넥스트스텝을 돌리는 맥을 출하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Apple + NeXT

1996년 12월20일, 애플은 4억 2,900만 달러의 현금과 150만 주를 잡스에게 주고 넥스트 인수를 발표하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더군다나 잡스도 인수 이후 애플에 고문으로 들어왔고, 넥스트의 웹사이트는 애플의 인수를 "합병"으로 묘사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배받는 개인용 컴퓨터 업계는 넥스트 인수 후에도 애플을 주요 업체로 취급하지 않았다. 애플이 재빠르게 넥스트스텝 운영체제를 새로운 맥오에스로 만들고, 옐로박스 레이어로 오픈스텝을 전환시키겠다는 전략을 발표되자, 심지어 넥스트의 기존 고객들조차도 애플을 피했었다.

특히 웹오브젝트를 자사 온라인스토어에 채용하고 있던 델은 넥스트와의 기업관계를 청산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여 새로운 온라인스토어를 구축했다. 선과 HP 또한 넥스트와의 오픈스텝 파트너쉽을 포기했다. 결국 넥스트 기술에 대한 애플의 지원이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하리라 본 기업은 거의 없었다.

애플은 보다 심각하고 복잡한 유닉스-기반 운영체제의 채택을 맥 사용자들이 주저하자, 목표를 바꿨다. 상황은 더 안 좋았다. 어도비와 매크로미디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맥 개발사들이 옐로박스에 대해 거의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고, 그들은 기존 코드에 최소한의 변화만 거쳐도 돌릴 수 있는 뭔가 현대적인 기술을 애플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벽한 파트너로 보였던 애플의 넥스트 인수가 엉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애플은 하드웨어 업체와의 맥오에스 라이센스 계약에 묶여 있기도 했다. 맥오에스 라이센스는 클론 업체들이 매상을 올리면서, 기존에 의도했던 맥 시장 확장보다는 OS만 줘버리고 하드웨어 이윤을 잃는 효과를 가져왔었다.

애플은 또한 양판점에서 싸구려 PC 옆에 아무런 차이 없이 애플 컴퓨터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경쟁력이 분명한 제품이 없으면 팔 방법이 없으며, 개발자들을 끌어모아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 앞이 안 보이던 때였다. 매킨토시의 전망은 꽤 암울해 보였다.

매킨토시 외 유일한 주요 제품으로는 뉴튼 메시지패드가 있었다. 태블릿 컴퓨터였던 뉴튼은 훨씬 단순하고 저렴한 팜 파일럿(Palm Pilot)에게 추월당하고 있는 중이어서 애플의 관심과 노력이 상당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Jobs turns Apple around

넥스트 인수 다음 날, 잡스는 이런 글을 쓴 바 있다. "10년째 되면서 매킨토시에 의지해온 산업이 느리게나마 맥의 혁명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베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며, 애플보다 이런 혁신을 더 잘할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컴퓨터 산업을 애플 말고 누가 이끌었습니까? 처음에는 애플 II, 그 다음에는 매킨토시와 레이저라이터를 선보인 곳이 애플입니다. 이번 합병을 통해 넥스트의 진보적인 소프트웨어와 애플의 매우 거대한 하드웨어 플랫폼과 마케팅 채널이 만나 기존 플랫폼을 혁명적으로 뛰어 넘고 향후 10년 이상 애플과 업계의 따라쟁이들을 부추킬 것입니다. 애플에 대해 대단히 깊은 감정을 지금도 갖고 있고, 덕분에 애플의 미래를 구성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처음, 애플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던 잡스는 1997년 7월, 여름 맥월드에서 자신이 아멜리오 후임자를 찾을 때까지 임시 CEO를 맡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사실 아멜리오 축출을 이끈 장본인은 잡스였고(1997년 맥월드 엑스포에서는 둘 다 모습을 드러냈었다), 아멜리오가 내린 결정사항들을 곧바로 뒤엎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아멜리오가 분사시켰던 뉴튼도 들어 있었다. 잡스는 뉴튼을 새로이 애플의 산하 부서로 편입시켰었다. 당시 잡스는 애플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시켰다.


잡스가 없앤 것 중 큰 건 중에는, 진보기술그룹(Advanced Technology Group: ATG)이 있다. 이 그룹은 QuickTime TV와 QuickDraw 3D, OpenDoc, HotSauce, Macintalk 음성인식, 뉴튼 필기인식 등 돈을 전혀 벌지 않는 제품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낸 곳이었다. 잡스는 또한 클론 업체와의 계약을 종료시켜서 매킨토시의 운명을 애플이 통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러가지 시험삼아 하는 프로젝트를 없애고, 뒤얽힌 영업망의 강화를 위해 컴팩으로부터 팀 쿡을 영입한 잡스는 웹오브젝트를 사용하여 델이 포기한 것과 유사한 온라인스토어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애플은 사용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개별사양"으로 맥을 팔 수 있게 됐다.

또한 잡스는 여러가지 매킨토시 제품도 없애고 기본적으로 타워형과 노트북 G3만을 남겼고, 여기에 새로운 아이콘으로서 아이맥을 추가시켰고, 1999년에는 소비자용 아이북 노트북도 선보였다. 새 하드웨어를 발족시키면서 잡스는 클래식 맥오에스에도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다. 넥스트스텝에 기반한 맥오에스텐을 작업하면서도 코플랜드 프로젝트에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살려서 맥오에스의 업데이트를 행했기 때문이다.


한편 잡스의 애플은 맥 판매를 증대시키기는데 집중했다. 애플 고유의 소매점을 짓기 시작하면서 주요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인수하여 프로 앱 패키지를 만들고, 아이라이프와 아이웍 등 소비자용 제품도 만들었다.

Apple goes open

애플 고유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더해 넥스트-중심적인 개발팀은 맥오에스텐의 코어 유닉스 OS 파운데이션을 다윈이라는 이름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플 자신의 개방형 코드와 더불어 애플은 OpenGL(퀵드로 3D를 대신한다)과 같은 공개사양의 채택으로부터 CUPS(맥오에스텐과 무료 유닉스, 리눅스 배포본이 사용하는 개방형 출력 아키텍쳐)의 매입 및 지속적인 관리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프로젝트의 오픈소스 개발에 자금을 대기 시작했다.

애플은 또한 오픈소스 웹킷 프로그램을 토대로 고유의 사파리 웹브라우저를 만들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로부터 웹의 권력 균형을 오픈소스 쪽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넥스트스텝의 BSD 유닉스 코어에 대한 오픈소스 전략과 더불어 웹킷은 제일 유명한 웹브라우저 엔진이 됐고 특히 휴대용 기기에서는 유일한 주요 브라우저에 올라섰다.

애플은 GNU/Linux의 GNU 컴파일러 컬렉션 개발 툴체인(toolchain)을 진보적이고 새로운 LLVM 컴파일러 아키텍쳐로 완전히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LLVM은 어배너-섐페인(Urbana–Champaign)의 일리누이 대학교에서 개발중인 아키텍쳐로서 BSD 스타일의 오픈소스로 제공됐고, 애플은 여기에 LLDB와 Clang을 추가시켰다. 이로써 애플은 유닉스-류 소프트웨어의 미래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OpenGL 지지와 함께 애플은 GPU 하드웨어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목적의 고속처리를 돌리기 위한 OpenCL 사양을 만들어냈다. OpenCL은 그래픽 업체의 지지를 받기 위해 중립적인 중개자의 역할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애플은 한편 인터넷 파일과 달력, 주소록과 연동하는 공개표준으로서 WebDAV와 CalDAV, CardDAV의 발전에 주된 역할을 했다.

추가적으로 애플은 개방형 오디오재생을 자가 고유 표준으로 바꾸려 시도했던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계획을 물리쳐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MP3와 AAC, MPEG H.264 오디오 스트리밍 및 비디오 인코딩, 배포세계를 열었다. 마찬가지의 노력으로 어도비 플래시의 스트리밍 비디오 장악노력도, 애플은 시장력을 동원하여 플래시의 통제를 깨고 비디오를 모두에게 열어주었다.

Jobs' golden decade of Apple

넥스트를 인수한지 5년이 지난 2001년, 애플은 최초의 소매점을 열고 맥오에스텐의 첫 번째 빌드를 출하했으며, 아이포드를 발표하여 소비자 가전 시장으로 진입하는 강수를 뒀다. 아이포드 자체는 애플 컴퓨터사에서 '컴퓨터'를 빼버리는 역할을 할 정도로 애플의 사업에 지극히 중요했다.

잡스는 여러가지 디바이스의 중심에 아이맥을 놓는 디지탈허브 전략을 제시했다. 맥오에스텐의 코어 기반을 개선하고 하드웨어를 끊임 없이 진보시키는 애플이 2000년대 내내 채택한 전략이었다.

2000년대 중순, 잡스는 PowerPC에서 인텔로의 이주를 단행했다. 이로써 맥 사용자도 윈도를 돌릴 수 있었고, 덕분에 윈도와 계속 어울려야 하는 기업 사용자 등도 맥을 사용할 여지가 생겨났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애플은 태블릿 컴퓨터 개발에 돌입하였고 결국 2007년에는 아이폰이라는 결과를 냈다. 아이폰은 미니 버전의 맥오에스텐으로서 iOS라 불리었고, 매킨토시 자체보다도 더 큰 규모로 자라났다.

2010년, 잡스는 대성공을 거둔 아이폰이 닦아 높은 길을 통해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를 적절한 가격에 선보였다. 아이폰의 경쟁은 심해졌지만 아이폰은 시장을 깊게 형성시켜서 기존 업체를 모두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제일 잘 팔리는 휴대폰 중 하나가 됐다. 예전에 아이포드가 그러했듯 아이패드는 자신의 시장을 크게 형성시켰다. 이전까지는 어느 경쟁자도 형성시키는데 실패했던 시장이었다.

2001년부터 2010년 사이 애플 주가는 주당 $10에서 $315로 뛰어 올라 전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기업이 됐으며, 수입은 물론 이윤도 제일 많이 벌어들였다. 애플은 컴퓨팅에만 한정돼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 아이포드와 아이튠스에 연동되는 음악과 영화시장을 탈바꿈시키고 휴대폰 업계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으며(이제 남아 있는 유일한 경쟁자는 스스로를 무료로 푸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밖에 없다), 최초로 성공한 태블릿인 아이패드를 통해 새로운 휴대기기 시장을 선보였다.

A world without Apple's NeXT

15년 전 인수했던 넥스트가 없었다면 잡스의 주도와 창조성, 비전도 없었을 것이다. 애플 컴퓨터는 90년대에 인수되거나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며, 매킨토시는 아미가와 동급으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개인용 오디오 시장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와 PlaysForSure 시스템의 지배를 계속 받으며 음반사의 변덕 하에 CD로 굽는 것만 해도 제한이 여전했을 것이다.

맥오에스텐이 없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이 윈도 2000 버전만 내놓았을 것이며, 윈도 비스타나 윈도 7, 그리고 진보적인 GPU 주도의 그래픽엔진도 없었을 것이다. 맥오에스텐의 쿼츠 컴포지팅이라는 애플의 개척적인 노력의 산물이 GPU 위주의 그래픽엔진이었다.

아이폰이 없었다면 사용하기 쉬운 터치스크린 휴대기기도 안 나오고, 그 대신 아이폰 이전의 안드로이드와 유사했을 것이다. PalmOS와 윈도모바일, 블랙베리의 버튼-중심적인 휴대폰만 있을 것이며 4년 전에 그랬던 바 처럼 세상을 바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태블릿 또한 안 나왔을 일이다. 맥북에어와 같은 울트라북에도 딱히 노력이 없었을 테고, 그저 여러가지의 저렴하고 저품질의 넷북만이 나와 있을지도 모를 법 하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소니, 팜, HP, 어도비 등은 도전받지 않은 채, 개선에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데스크톱 플랫폼을 위한 저가형 앱스토어를 나서서 만들 일도 없으며, 구글은 여전히 웹브라우징만 할 수 있을 저가형 노트북에 집중했을 것이다. 이들은 현재 지위가 하락중이며 기술업계에서 자신이 어째서 실패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실패를 멈출 수 있을지를 모르고 있다.

What's next for Apple

2011년, 세상은 애플과 넥스트의 창립자를 잃었다. 잡스는 자신의 비전에 멀어져 있던 애플을 고쳐냈고 기술과 인문 사이의 교차점에서 위대함을 다시 이끌어낼 수 있는 팀을 만들어냈다. 잡스는 애플 경영팀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업체에서건 추종을 받을만한 분명한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

애플은 기업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전세계 소매점도 잘 돌아가고 있고 모바일과 데스크톱 제품에서 강력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풍부한 현금으로 최첨단 연구개발도 벌일 수 있다. 15년 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그러나 현재의 애플은 자신의 실패와 실수를 알아볼 능력도 갖고 있다. 지난 15년간 애플은 설사 전략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돈을 잃었던 난관을 돌파해 왔다. 엑스서브와 엑스서브 RAID, Xsan으로 서버시장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단순히 훨씬 저렴한 대안만 제공하는 것 가지고서는 손수 고객서비스와 지원을 요구하는 시장을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애플은 잘못됐음을 알고 물러나는 것 또한 올바름을 알고 성공을 거두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애플은 마찬가지로 주류시장을 공략할 강력한 기능을 제공하는 선에서 프로앱스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소수의 전문가 사용자들은 특별한 개발사가 더 잘 보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 경영진은 애플이 뭘 안 할 줄 안다고 매번 되풀이해 말하고 있다.

딱 15년 전의 애플은 아니라고, 맞다고 말할 수 없었으며 계획을 실천한다거나 투자자에게 자신을 믿어달라 확신을 주지도 못했다. 지난 15년은 창립자를 재발견하여 그의 비전에 따라 업계를 재편성한 놀라운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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