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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아이브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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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아이브 전기


Détails sur la bio de Jonathan Ive aujourd'hui en vente

par Florian Innocente le 15 novembre 2013 à 14:43

조너선 아이브 전기가 출간된다. Cult of Mac의 창업자이며 현재 Wired에 있는 린더 카니(Leander Kahney)는 아이브의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업적, 그리고 애플에서 그의 영향력 모두를 책에 담았다.

아버지는 장인, 어머니는 정신과 의사였던 아이브는 196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46세). 작업장이 텅빈 성탄절 기간에 아버지는 늘상 조너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작업장을 쓸 수 있게 해 줬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만들고 싶은 물체를 먼저 그려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13살의 조너선은 마음 속에 아직 뭔가 잡혀 있지 않은 채로 벌써 "그린 것을 만들겠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영국 북쪽 Newcastle에 있는 Northumbria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던 아이브는 1987년 맥을 발견한다. 이때 처음 그는 기업으로서 애플과 애플의 가치, 기능, 제품에 대한 접근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Tangerine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디자인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아이브는 당시 애플 디자인 책임자였던 봅 브러너(Bob Brunner)의 눈에 띄였다. 90년대 초, 잡스는 이미 애플을 떠나 넥스트와 픽사로 옮긴지 오래였고, 스컬리가 애플을 다스리던 때였다. 브러너는 Juggernault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모바일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 작업을 Tangerine에게 맡겼었다. 아이브는 모르는 사이에 결국 애플에 들어가 1995년 브러너의 뒤를 잇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기 2년 전이었다. 브러너는 디자인이 엔지니어링을 앞서는 철학을 애플에 심어 뒀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애플 디자이너들은 장기적으로 새로운 방향과 제품 개발을 계획했었다.

1986년, 일본 Zebra의 소묘용 펜 - credit Apple Design - Paul Kunkel/Rick Ennglish


조너선 아이브는 우선 새로운 버전의 뉴튼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애플 브라운관 모니터용 샤시에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중간과 후면은 같지만 화면 각도에 따라서만 바뀌는 모니터를 위해서였다.

린더 카니의 책은 아이브가 아이디어를 제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애플에서 조너선 아이브의 힘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애플은 당시 새로운 컨셉 작업을 위해 회사 외부 디자인까지 의존하는 등 스스로 변화했다. 다만 자기 내부에 인재가 있었음을 그제서야 깨닫기도 했다…

Projet Juggernault, 아이브가 공동 창업한 Tangerine 사무소에게 애플이 의뢰했었다.
- credit Apple Design - Paul Kunkel/Rick Ennglish

1997년 7월 9일, 잡스는 애플로 진정한 복귀를 했고 CEO 길 아멜리오의 특별고문에서 임시 CEO가 됐다. 아멜리오는 수 십명의 애플 간부진 앞에서 사임을 발표했다. 아멜리오가 떠나자 잡스는 곧바로 주문부터 했다. “여기서 뭐가 잘못됐는지 말해 보죠.” 그는 이어 여세를 몰아, “제품들이 잘못 됐어요. 다들 형편 없습니다. 더 이상 섹시하지가 않아요.”라 말했다.

그때까지도 조너선 아이브는 사표를 내고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잡스가 뭔가 말했다. 애플이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의 목표가 돈벌기가 아니라 최고의 제품 만들기라는 사실을 스티브가 말할 때, 분명히 기억 납니다. 이러한 철학에 기초한 결정은 그때까지 애플에서 일어났던 다른 결정과 근본적으로 다르죠.

그렇다고는 하지만 잡스가 즉각적으로 내부적인 도전에 응대할 준비가 된 팀을 갖추지는 못 한 상태였다. 브러너는 디자인 그룹을 스스로 애플 캠퍼스 바깥, 먼 곳으로 옮겨놓았고, 잡스는 디자인 그룹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래서 잡스는 에슬링거(넥스트 일을 했었다)와 새퍼(씽크패드), 쥬지아로(자동차 디자인의 스타였으며 이미 언론의 구애를 받고 있었다), 혹은 솟사스(올리베티 제품으로 유명하다) 같은 디자인 스타들의 영입을 고려하고 있었다. 아이브는 자기 팀의 능력을 팜플렛 형태로 만들어서 보여주기로 했다. 그는 특히 투명 스타일의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이메이트(eMate)를 강조했었다. 잡스는 곧바로 디자인 사무실로 갔고, 그곳에서 이전 경영진이 차마 내보내지 못 했던 제품 프로토타입들을 다수 발견했다.

잡스는 마침내 아이브에게 신임을 줬고 일단 존 루빈스타인의 지휘 하에 디자인 팀을 배치했다. 아이브의 팀은 나중에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지만 아직까지는 잡스가 질서를 잡고 있던 때였다. 아이브의 지휘력은 검증이 안 됐었고 디자이너들은 여러가지 각기 다른 방향성을 지닌 프로젝트로 “난잡스러운” 분위기였다.

잡스는 제품을 단순한 표로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 가지 제품군이 들어간 유명한 표다. 잡스는 우선 개인용 컴퓨터를 재발명하자는 목표부터 선언했다. “제 딸이 대학에 들어가는데 이제까지 있는 컴퓨터를 보니 전부 다 쓰레기더군요. 정말 큰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제부터 인터넷용 컴퓨터 제작입니다” 아이맥의 탄생이었다.

책에는 Palm과 애플에서 일했고 현재는 인텔의 산업디자인부 부사장으로 있는 샛츠거(Douglas Satzger)의 증언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등,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가령 아이브와 루빈스타인 간의 갈등 관계도 알 수가 있다. 한 번은 아이브가 파워맥 G4에게 외양과 특별한 마감을 주기 위해 핸들을 원했었다. 루빈스타인은 핸들을 집어 넣을 경우 생산이 지연될 수 있으며 가격도 올라가리라 보고 반대했었다. 그래서 아이브는 루빈스타인을 우회하여 잡스에게 직접 보고했고, 승리를 거뒀다.

Ive et Rubinstein


잡스 지휘 하에 아이브의 디자인 그룹은 점차 애플 전체에서 하나의 세력화되었다. 한 전직 직원의 표현이다. “디자인 그룹과 함께 일하는 방식을 이해부터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아니오라 말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조차 없어요. 비록 비싸 보인다거나 웃기다거나 심지어 불가능할지라도 일단은 해 봐야 합니다… 어떻게 나올지를요.

예를 들어서 판매 실적으로 볼 때 실패작이었던 큐브(판매 대수가 15만 대 정도였다)는 수개월 후에 생산이 중단됐다. 그렇지만 큐브 덕분에 애플은 여러 영역을 탐험해 볼 수 있었다. 미니어쳐 작업 및 플라스틱과 금속의 채용, 이전까지는 작은 규격품에만 쓰였던 주형 기술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나중에 아이맥 G4와 반구형의 본체, 아이패드, 맥북의 대량생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 린더 카니는 책을 작성하고 디자인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조너선 아이브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 아이브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곳이며, 3미터 너비의 부엌 크기라고 한다. 단 벽면은 유리이며 특별한 장식물 없이 탁자만 놓여 있다. 이 탁자는 아이브의 친구 디자이너인 마크 뉴슨(Marc Newson)이 만들었으며, 프레드 스코트(Fred Scott)의 Supporto 의자가 놓여 있다.

그들은 네 개의 대형 목조 탁자(애플 스토어에 있는 모델이다)에서 프로토타입을 놓고 논의한다.제품 하나마다 하나씩 탁자가 있으며, 옆방에는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수 있는 디지털 제작 머신이 놓여 있다. 디자이너들은 개방된 공간에서 혼란스럽게 작업하며 배경 음악도 틀어져 있다. 스튜디오의 조직과 업무에 대해 길게 묘사한 사람이 샛츠거이다. 그의 설명이다. “모든 개방된 공간은 너무나 조용해서 서로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있을 때면 우리는 음악 볼륨을 켜서 잡스가 자기 상대하고만 대화할 수 있게 했었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없게 말입니다.

매주마다 크로키가 대량생산됩니다. 브레인스토밍이 끝나면 조니가 탁자에 모인 모두에게 크로키한 것들을 복사한 다음, 프로젝트 책임 디자이너에게 크로키 복사지를 돌려 보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면 조니가 책임 디자이너를 옆에 앉히고 주의 깊게 매 페이지를 보면서 검토를 하죠. 책임 디자이너와 한 두 명이 따라 붙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책은 다른 이야기도 들려준다. 현재의 맥 프로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다. 2004년경, 애플 최고운영책임자였던(COO) 팀 쿡이 미래의 맥미니를 미국에서 제조하자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래서 알루미늄의 사출과 가공 전문의 미국 기업을 한 군데 선택했지만, 수 개월 후, 이 업체는 애플 요구사항에 맞는 시제품을 한 대도 만들어낼 수 없음이 드러났다. 플랜 B도 따로 없었고 출시일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애플은 미국에서 맥을 만들자는 계획을 물리고, 중국과 폭스콘으로 향했다.

다른 작은 사례도 있다. 파워맥 G5의 단종과 맥프로 디자인 과정이다. 본체 문에 고리가 붙은 G3/G4 모델과는 달리, 이번에는 모두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고리를 낼 차례였다. 샛츠거는 고리를 머신 뒤로 없앨 것을 주장했다. 자동차의 특정 트렁크 고리도 바깥에서 안 보인다는 점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멀티터치도 디자인 그룹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는 얘기도 있다. 애플 엔지니어들이 멀티터치를 시연해 보이자 아이브는 완전히 넘어갈 정도였다. 개발자들이 탁구대 정도의 탁자 모니터 터치 스크린을 사용했다. 사용자 손의 움직임을 검출하는 시스템과 맥이 보내는 화면이 이 스크린에 비쳐졌다.

조너선 아이브는 이 기술을 꼭 잡스에게 보이고 싶어서, 비밀리에 잡스에게 시연했다. 결국 잡스는 이 기술이야말로 혁명적이리라는 점을 설득 당했고, 1주일 후, 잡스는 엔지니어 2명에게 태블릿 프로토타입의 크기를 파워맥에 붙인 12” 맥북 화면 크기로 줄이라 명령을 내렸다.

이 책은 그 외에도 여러 애플 디자인의 메커니즘 사례를 알려주고 있다. 몇 가지 이야기는 이미 알려져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있으며,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애플의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보여준다.

“Jony Ive - The Genius Behind Apple’s Greatest Products” (288 페이지) 이 책은 영문이며, 불어판은 현재 번역중이고 2014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현재는 아마존에서 판매중이다.

종이판은 21€, 킨들판은15€이며, 아이북스토어에서는 13€로 11월 18일부터 판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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