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사

'바둑의 전설' 우칭위안 100세로 타계

728x90
반응형

중국에서 태어나 14세 때 일본 유학, 극우들에게 살해 위협 시달리기도
신포석이론으로 '바둑계 뉴턴' 불려… 일대기 다룬 中·日 합작영화도 나와

세계 바둑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하던 별이 졌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살아 있는 기성(棋聖)'으로 불리며 바둑을 동양 철학의 최고 경지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아온 우칭위안(吳淸源) 九단이 지난 30일 새벽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오다와라(小田原)시의 한 병원에서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14년 6월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에서 태어난 우칭위안은 7세 때 부친으로부터 바둑을 배우자마자 불세출의 기재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베이징에 살던 한 일본인 화상(畵商)이 당시 일본 바둑계 유력 인사였던 세고에(瀨越)에게 그의 존재를 알린 것이 현대 바둑사에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됐다. 14세 소년 우칭위안은 일본 유학길에 올라 세고에의 제자로 들어갔고 단숨에 三단을 인허받았다.

우칭위안(왼쪽)이 후지사와 호사이(藤澤朋齊)와 대국 중 수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는 1942년부터 1953년 사이 후지사와와만 세 차례의 치수 고치기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수모를 당한 후지사와는 개명(改名)과 함께 한동안 잠적했었다. 오른쪽 사진은 은퇴 후 대국 결과를 복기하는 우칭위안 모습
우칭위안(왼쪽)이 후지사와 호사이(藤澤朋齊)와 대국 중 수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는 1942년부터 1953년 사이 후지사와와만 세 차례의 치수 고치기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수모를 당한 후지사와는 개명(改名)과 함께 한동안 잠적했었다. 오른쪽 사진은 은퇴 후 대국 결과를 복기하는 우칭위안 모습. /일본기원 제공

우칭위안은 질풍노도의 기세로 일본 바둑계를 석권해갔다. 1932년 9할 가까운 승률을 기록했던 그는 이듬해 유명한 '신포석' 이론을 발표했다. 평생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기타니(木谷)와 함께였다. 4선(線) 이상 중앙의 세력을 중시하는 이 이론은 400 여년간 통용되던 3선(線) 위주의 전통적 일본 실리 포석을 송두리째 뒤바꾼 '패러다임 혁명'이었다. 우칭위안이 '바둑계의 뉴턴'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다.

우칭위안은 다른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와의 대담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바둑은 고대 중국 철학인 360의 음양, 즉 천문학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유교의 역(易)은 운명의 지혜이고, 도교(道敎)는 영혼을 중시한다. 내 성격은 도교 쪽에 더 가깝다.' 가와바타는 그 책에서 '그처럼 순결한 예술가를 본 적이 없다. 그는 동양 정신의 정수'라고 썼다.

우칭위안은 또 "바둑은 조화(調和)"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1940년대에 "바둑의 모든 착점은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항해의 과정"이라고 했다. '세력과 속도'라는 현대 바둑의 두 기둥은 우칭위안의 신포석과 조화 개념에 의해 완성됐다.

우칭위안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데드 매치'라고 불린 '치수(置數) 고치기 10번기'다. 우칭위안은 1939년부터 일본 최고 스타들과 17년간 11번의 치수 고치기를 펼쳐 기타니, 하시모토(橋本), 후지사와(藤澤) 등 당대 최고수 7명의 치수를 모조리 바꿔놓았다. 그 사이 일본 극우주의자들로부터 수차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1936년 일본으로 귀화했다가 49년 대만 국적을 취득했고, 다시 30년 뒤인 79년 일본에 재귀화한 여정에 그의 인간적 고뇌가 배어 있다. 하지만 대만은 그에게 '대국수' 칭호를 내렸고, 중국도 그를 여러 차례 초청하는 것으로 우칭위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2006년엔 우칭위안 일대기가 중·일 합작 영화로 제작됐다.

그는 1983년 프로기사직을 은퇴한 뒤에도 여러 개혁안을 내놓는 한편 '21세기 포석법'을 발표했다. 잉창치배 심판장을 맡은 것은 80세가 넘어서였고, 100세를 맞은 올 2월에도 일본 기성전 도전기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일본기원은 영결식은 일단 가족장으로 치르고 후일 별도의 추모 모임을 갖기로 했다고 1일 발표했다.

☞데드 매치

바둑에서의 정식 명칭은 ‘치수 고치기 10번기’. 특정 상대와 열 번을 대국하는 동안 4승 차에 이르면 중단하고 사실상 ‘한 수 아래’로 대하는 것. 패하는 쪽이 입는 정신적·현실적 타격이 너무 커 ‘데드 매치’라고 불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