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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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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무렵 아테네 인구는 고작 30만명이었다. 서울로 치자면 한개 동 정도의 마을이다. 아이, 여성, 노예를 제외하고 시민은 3만명뿐이었다. 인류는 근현대까지 그 작은 마을에서 만든 ‘생각의 지도’를 나침반 삼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현대 미국 같은 유일 초강대국 페르시아의 침략을 무찌르고 아테네를 경제대국으로 키워 지중해 전역을 장악하게 했고,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를 열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학문을 꽃피웠다. 신화의 시대를 끝내고, 그들이 인간의 이성으로 정치·철학·문화·예술에서 창조한 경지는 경이롭다.

 

당대 아테네와 쌍벽을 이룬 적대국가가 스파르타다. 아테네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면 스파르타는 독재의 상징이다. 그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싸운 펠로폰네소스전쟁 초기 아테네의 전몰장병 추모식장에 인류의 두 스타가 동시에 출연한다. 아테네 황금기를 연 정치가 페리클레스와 철학자 소크라테스다. 


먼저 나선 것은 아들뻘인 소크라테스였다.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처럼 약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부모가 유명하지 못하다고 해서 쫓겨나는 사람은 없다. 그 반대라고 해서 존경받지도 않는다. 권력을 가질 만큼 현명하거나 훌륭한지 여부만 기준이 된다. 이는 출생의 평등함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났기에 법률에 따른 법적 평등을 추구하도록 강제하고 있고, 덕과 사려에서 나오는 명성 이외의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서로에게 복종하는 그런 일이 없게끔 만들어놓았다.”


 그러자 60대 노지도자 페리클레스가 나선다.

 “우리에게 부는 행동을 위한 수단이지 자랑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법을 어기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정치에 무식하지 않다. 그뿐인가. 스파르타인들은 어려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지만, 우리는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그들 못지않게 위험에 맞설각오가 되어 있다. 시민 개개인은 인생의 다양한 분야에서 유희하듯 우아하게 자신만의 특질을 개발할 수 있다. 그래서 아테네가 ‘그리스(지중해권)의 학교’인 것이다.”


 아테네는 지금까지도 인류의 학교가 되었다. 아테네인들은 그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다. 아테네는 귀족 시민들이 사비를 들여 전쟁장비를 마련해 전투에 나섰다. 아테네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라도 지키고 싶은 나라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조차 한때 수차례 전투에서 전사로 이름을 날렸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죽음보다 가장 수치스럽고 두려운 것은 아테네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추방당해 자살했고, 페리클레스는 추방 위기 때 시민들에게 읍소해 위기를 모면했다.


소크라테스는 추방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차라리 아테네 안에서 죽는 것을 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국가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아테네에서 지도자는 살기 어려운 나라였다. 시민의 눈 밖에 나면 추방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누구도 스스로는 떠나고 싶지않은 나라였다. 살고 싶고, 지키고 싶은 그런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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