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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가와사키市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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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와사키(川崎)는 도쿄 도심에서 가깝다. 웬만한 도쿄 외곽에 사는 것보다 더 빨리 도쿄 도심에 갈 수 있다. 그럼에도 집값은 싼 편이다. '공단 도시' 이미지 탓이다. 가와사키 산업사(史)는 일본 근대사와 함께 시작했다. 돈은 도쿄로 갔지만 노동·환경 문제는 남았다. 재일 한국인들은 이런 곳에 둥지를 틀었다. 가와사키는 백 년 넘게 공단의 부작용과 씨름했다. 그러면서 독특한 도시로 발전했다.
▶30~40년 전 재일 한국인 차별은 한·일 갈등의 뜨거운 이슈였다. 외국인등록증을 갱신할 때마다 지문을 찍게 한 제도가 차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85년 1만명 넘는 재일 한국인이 한꺼번에 날인을 거부했다. 발칵 뒤집힌 일본은 힘으로 눌렀다. 정부는 사법 처리를 공언했다. 먼저 지방 관청이 나서 날인 거부자들을 고발했다. 법원은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에서 가와사키시가 홀로 반기를 들었다. 당시 시장이 고발을 거부했다.
▶시장은 "법과 규칙이 인간애(愛)를 넘어설 수 없다"고 했다. 여론이 움직였다. 8년 뒤 재일 한국인 지문 날인 제도는 철폐됐다. 가와사키의 결단이 없었다면 악법의 수명은 한참 더 갔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1996년 가와사키시는 공무원의 국적(國籍) 조항도 앞장서 없앴다. 공무원 문호를 외국인에게 열었다. 당시 일본에서 공무원 업무를 볼 능력을 갖춘 외국인은 재일 한국인밖에 없었다. 일본의 다른 지역도 뒤를 따랐다.

▶엊그제 가와사키 시민들이 나서 '헤이트 스피치(인종 차별·혐오 발언)' 시위를 몸으로 막았다. 두 아이를 둔 재일 한국인 엄마의 호소에 일본 시민들이 움직였다고 한다. 앞서 가와사키시의 결단이 있었다. 공원에서 시위하겠다는 극우 단체 신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시위대가 도로로 나왔다. 이걸 시민이 막았다. 그동안 일본 지방 관청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극우 단체의 공원 집회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가와사키시와 시민은 그런 위선과 선을 그었다.

▶얼마 전 일본은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을 시행했다. 헤이트 스피치가 '외국인 배제를 선동하는 부당한 차별적 언동'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벌칙을 두지 않았다. 법만으로는 시위를 막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관청이 이 법을 앞세워 실제 현장에서 시위를 규제하는가에 성패가 달렸다. 가와사키시가 선구적으로 나섰다. 이번에도 모두가 호응할까. 제도적 차별을 이미 두 차례 무너뜨린 가와사키시만큼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다만 그 자랑스러운 역사가 이번에도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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