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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YS와 광주…특별법 제정 등 ‘5·18 민주화’ 초석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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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5·18광주민중항쟁을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거듭나도록 물꼬를 트는 등 광주와 남다른 인연을 맺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역민들도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22일 오전 향년 88세의 일기로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 민주주주의 거목으로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5·18민주묘지의 조성,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초석을 마련한 일은 광주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김 전 대통령을 영원히 새기게된 계기가 됐다.  

1980년대 서슬이 시퍼렇던 5공 군부시절 야당 지도자로서 김 전 대통령은 5·18과 연계해 민주화 투쟁을 이어가며 민주세력을 규합해 나갔다.

1983년 5·18광주민중항쟁 4주년을 맞아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5월18일부터 6월9일까지 23일간 단식투쟁을 하기도 한 그는 단식을 끝내며 "나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을 알렸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꺽이지 않는 민주화 의지를 불태웠던 일은 유명하다 . 

영원한 야당의 맞수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3당 합당을 통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호남을 고립시키기 위한 야합'이라는 호남민의 비난을 의식한 듯 한국 민주화에 대한 자신의 노력과 열망을 '광주'를 통해 분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3년 5·13특별담화를 통해 "문민정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부"라고 선언하고 5·18민주묘역 조성을 발효한 뒤 4년만에 묘지를 완성시켰다. 

5·18묘역은 이후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립묘지로 승격되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주묘지가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별담화 이후 5·18 기념식은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1995년 12월 5·18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그는 당시 "신군부에게 광주 유혈 진압의 죄를 물은 것은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는 역사적 전기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초석을 놓은 5·18묘역을 대통령 재임시절 방문하려하고 했으나 한총련 등의 반발로 2차례 걸쳐 무산됐다. 

하지만, 1996년 광주지하철 1호선 기공식에 참석한 뒤 11년만에 광주를 방문하면서 5·18 묘역을 참배하게 된다. 

당시 5·18 묘지에 선 김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5·18의 진실을 땅에 묻으려고 애를 썼지만 진실은 밝혀졌다"면서 "5·18 특별법 제정은 정의와 진실을 위한 결단이었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할 때 다시는 이 땅에 정치적인 밤이 오게 해서 안된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3당 합당으로 호남을 고립화시키는 등 과오가 없지 않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광주민중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특별법을 통해 신군부에게 광주 유혈 진압의 죄를 물은 것은 광주로서는 잊지 못할 역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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