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그러나 랩소디 네이티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는 불행히도, 옐로박스를 사용할 경우 맥오에스 8용으로 개발해 놓은 소스코드를 전부 다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써드파티 개발자들의 원성이 커졌다. 최고를 제공하지 않으려든 것이다. 어도비 또한 도약을 거부하였다. (어도비의 강경한 자세는 2010년 4월에서야 Creative Suite 5를 출시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애플은 역사적으로 소중한 고객들을 잃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애플은 운영체제 전략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랩소디를 떠나 맥오에스텐이 나온 것이다. 애플은 두 번째 네이티브 API인 카본을 만들어냈다. 카본은 맥오에스텐과 맥오에스 9(1999년에 나왔다)용 소프트웨어도 네이티브로 돌릴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카본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돌리려면 소프트웨어 수정이 필요했지만, 코코아가 요구했던 완전한 재작성보다 상대적으로 그 수정의 폭이 적었다. 다만 랩소디는 맥오에스텐 서버의 첫 번째 버전으로 나오게 되었다.
최종 사용자들에게는 어떤 당근을 줄지가 관건이었다. 랩소디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나, 이용자 눈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2000년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인 아쿠아(Aqua)를 선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핥아먹고 싶을" 인터페이스였다. iCEO, 잡스의 말이다. "아쿠아는 새로운 OS로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판매 포인트입니다." 맥월드 인터뷰에서 티베이니언이 한 말이다. "'껍데기를 벗겨내면 좀 더 잘 돌아가겠지'라 말씀하신다 하더라도 거기에 상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아이맥과 파워맥 G3의 파란+하얀색의 본체가 함께 있으니, 바로 아쿠아의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급한 맥 사용자들은 IT 전문가가 아니라고 해도 그래픽 디자인에서 빛나는 아이콘을 보려 안절부절 못 하였다.
애플은 카본을 내세우면서, 맥오에스 9로부터 맥오에스텐으로의 이주를 간단하게 할 방법을 찾아냈지만, 맥오에스텐을 완전히 활용하려면 역시 오브젝티브 C와 코코아로 애플리케이션 재작성을 해야 했다. 그래도 애플은 점진적인 압박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카본은 징검다리밖에 못 되었고, 맥오에스텐의 모든 기능을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개발자들이 맥오에스텐을 최대한 활용하기 원한다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달리 말해서, 애플은 맥오에스텐 프리젠테이션의 첫 1분동안 분명하게 맥오에스텐을 유일한 운영체제로 표시하였다. 맥오에스 9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포기해야 하는 운영체제였다. 이어서 맥오에스 9의 장례식이 2년 반 뒤에 일어났다. 클래식에 대한 지원 또한 2007년의 맥오에스텐 10.5에서 중단될 터였다.
2000년 9월에 맥오에스텐 퍼블릭베타가 29.95달러에 출시됐다. (2001년 3월 24일에 나올 정식판에서 할인이 이루어지는 베타판이었다.) 랩소디의 실패 이후, 애플은 부드러운 이주에 집중하고 있었다. 맥오에스 9의 호환성을 집어 넣은 맥오에스텐은 맥오에스 9용 애플리케이션와 새 OS용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다. 카본은 개발자들을 위해 똑같은 코드로 두 개의 시스템 모두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유료형 베타 자체는 정말 사용해보고 싶어하는 사용자들을 위한 차원이었고, 그 가격 또한 누구나 마음먹어볼 수 있도록 충분히 낮았다. 건설적이지 못한 참여를 막기에 충분하기도 했다.
클래식은 널리 쓰였다. 맥오에스텐용으로 컴파일된 첫 번째 애플리케이션이 나오기까지는 좀 기다려야 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며, 맥오에스텐 초창기 사용자들은 맥오에스 9용 애플리케이션을 한동안 계속 사용해야 했다. 맥오에스텐의 장점은 당시 한 가지였다. 특히 시각적인 아름다운 파인더 안에서 맥오에스 9, 즉, 클래식을 재시동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맥오에스텐을 처음부터 환영한 곳은 넥스트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던 개발사들이었다. The Omni group은 초창기부터 맥오에스텐에 투자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이제 아이패드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OmniGraffle과 같은 유명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맥오에스텐용 애플리케이션은 오랜동안 별로 많지가 않았다.
다른 개발사들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린 후에야 맥오에스텐용 업그레이드를 만들었다. 잡스는 영업맨이 되어야 했다. 당시 Director의 포팅을 요구하기 위해, 매크로미디어의 보스였던 롭 버지스(Rob Burgess)를 직접 부르기도 했었다. 어도비에게 부드러운 압박으로 작용하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첫 만남은 좀 어색했다. 맥오에스텐은 실제로 급격한 변화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맥오에스텐은 예전 OS처럼 이미지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려졌고, 그것은 참기 어려운 점이었다. 2002년, Jaguar가 나오고 나서야 맥오에스텐은 맥오에스 9의 속도에 근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평범한 사람들도 유닉스를 쓸 수 있게 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애플 운영체제는 모든 매킨토시는 물론이고, 아이폰과 아이포드 터치, 아이패드와 애플티비, 엑스서브 등, 대단히 다양한 기기에서 돌아가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맥오에스텐은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으며, OS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날의 유일한 유산인 HFS+ 파일시스템은 나이도 나이이거니와, 요새 저장 수요에 걸맞지 않은 점이 있지만 특별히 단점이 있지도 않다. ZFS를 통합시키려는 실패한 시도가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애플이 어떻게 대처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맥오에스텐은 언제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에이비 티배이니언에 따르면, 애플은 맥오에스텐의 수명을 20~30년으로 측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살게 되더라도, 그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 답하였다.
Arnauld de La Grandiere
arnauld(arobase)A_ENLEVERmacgeneration.com
Cet article peut etre consulte a cette adresse :
Il y a 10 ans, la naissance agitee de Mac OS X
728x90
반응형
'관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호사 조영래... (2) | 2010.12.21 |
---|---|
박찬호 오릭스행에 대한 일본 네티즌들 반응... (0) | 2010.12.20 |
개 I.Q 순위.... (2) | 2010.12.18 |
재벌가 2세, 50대에 알루미늄 야구방망이 구타 (0) | 2010.11.29 |
'떠 다니는 군사기지' 조지워싱턴호의 탑재무기 (2) | 2010.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