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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청문회'받은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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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하면서부터 동창회에 나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기업 관련 조사를 하는 그가 괜한 오해를 받을 계기를 아예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사업하다 어려움을 당한 친구가 ‘재찬이한테 도와달라고 해볼까’라고 물었다. 내가 ‘생각도 하지 마라. 금마(그 사람)가 그런 청탁 들어줄 사람이 아니다’고 말렸다.”
정재찬(58)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중학교-고등학교 동창생들의 평가다. 동창들의 다른 평가도 있다. ‘정 후보자는 천재 스타일이 아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장관 자리에 오른 고위 관료 중에는 ‘○○고등학교 3대 천재 중 한 명’이라거나 ‘○○대 수석입학, 수석졸업’과 같은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 후보자는 이런 이력이 없다. 동창들은 “학창시절부터 공직생활까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이었다”고 증언했다. 뭐니뭐니해도 정 후보자를 특징짓는 것은 ‘재산이 적다’는 사실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정 후보자는 재산이 3억3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화제가 됐다. 본인은 육군병장으로 만기제대했고, 아들(26)은 공군 일병으로 복무하고 있다. 위장전입·세금체납·범죄사실도 없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5일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앞서 4일 청문회에서는 야당의원들조차 “참 깨끗하게 살았다” “잘된 인사다”라는 호평을 쏟아내면서 5시간만에 청문회가 싱겁게 끝났다. 정 후보자가 37년여간의 공직생활을 흠결없이 지낸 비결은 무엇일까.

	2014년 12울 4일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2014년 12울 4일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

경북 문경 출신의 정 후보자는 대구중-경북고(56회 졸업)-고려대(경영 75)를 나와 1977년 행시 21회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정 후보자는 ‘막걸리’로 유명한 고려대를 나왔지만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90년대 후반 건강에 이상이 생긴 뒤 완치된 이후로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정 후보자의 지인은 “정 후보자가 공무원 초기 경제기획원 예산실에 근무할 당시 상사가 권하는 술을 못이겨 회식 자리에서 졸도한 이후 주변에서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 후보자가 원래 술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란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정 후보자의 특징은 기업을 조사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뒷말이 나올 여지가 없고 그만큼 흠결이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는 술을 마시지 않아 저녁 자리가 많지 않다고 한다. 기업인들을 꼭 만나야 할때는 사무실로 초대한다고 한다. 공정위원장 자리의 특성 때문에 뒷얘기가 나올 수 있는 사적인 모임은 아예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정 후보자가 저녁 약속이 없으면 퇴근후에 주로 가족과 함께 지낸다”며 “집 주변 석촌호수를 산책하거나 가끔 영화를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장점은 한편으로는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부처 외부의 평가도 있다. 공정위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공정위의 업무는 무조건 기업과 안 만난다고 좋은게 아니다. 소통도 필요하다. 기업이 두려워 떨게 만들면서도 기업이 불공정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업무다”고 말했다. 정무위 야당 의원 일부는 청문회 이후 “정 후보자가 무난하게 답하긴 했지만 경제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느낄 수 없었다”, “소신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는 등의 평가를 했다.

재산이 적다

정 후보자의 재산 내역은 3억3000만원에 불과하다. 경제 고위 관료중에 꼴지 수준이다. 보유한 주식이 없고, 자동차는 2009년식 SM5다. 부인 명의의 잠실 주상복합 아파트(188㎡)가 8억8000만원이지만 주택담보 대출 등으로 받은 부부의 부채가 7억5000만원에 달해 순재산(자산-부채)이 적다. 이런 정 후보자에 대해서 주변에서는 “정 후보자가 원래 사리사욕이 없는 사람이다”는 평가와 함께 “재테크에 능하지 못했다고 본인이 주변에 말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 후보자는 ‘재테크 실패’의 쓰린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서울 대치동 아파트를 처분하고 현재 거주하는 잠실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결과적으로 수억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자는 평소 근검절약하는 소박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들도 근검 절약이 몸에 뱄다고 한다. 정 후보자가 지난 1월 공정위 부위원장직을 그만두고 야인 생활을 할 때 하루는 대학생인 딸(21)이 붕어빵을 사왔다고 한다. 정 후보자가 “길에서 파는 것 말고 빵집에서 좀 더 좋은걸 사오지 그랬냐”고 하자, 정 후보자의 딸은 “요즘 빵값이 얼마나 비싼데… 맛있고 배부르면 되지 괜히 돈 쓸 필요가 뭐 있나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번 청문회에서 한 여당 의원이 ‘청렴하게는 해왔는지 몰라도 재산이 너무 적지 않나. 청렴한 건 좋지만 재산관리 능력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라고 물었고, 정 후보자는 "업무에 충실하게 열심히 살다 보니 재테크라든지 신경을 못 썼다"고 답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북고(56회 졸업) 졸업앨범 사진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북고(56회 졸업) 졸업앨범 사진
평범하다

하위직 공직자의 집안에서 자란 정 후보자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게 동창들의 증언이다. 정 후보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과묵한 편이었다고 한다. 한 동창생은 “사려 깊고 어른스러운 성격이라 친구들과 마찰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평소 읽은 책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만큼은 유난히 수다스러워졌다고 한다.

한 동창생은 “정 후보자가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알았고, 친구들에게 싱거운 농담도 잘 했다”고 말했다. 다른 동창생은 “천재라기 보다는 착실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며 “엄청난 노력형도 아니었지만 항상 꾸준하고 묵묵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고 미팅에도 나갔다고 한다. 그러다 2학년 초반쯤 ‘공부를 해야겠다’고 선언한 뒤, 이듬해 행정고시에 합격해 동기에 비해 일찍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정 후보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7개 국장직을 섭렵하고 상임위원(1급), 부위원장(차관급)을 두루 지냈다. 공정위 부위원장 시절 라면 가격 담합, 통신3사와 제조3사의 휴대폰 가격 부풀리기 등의 사건을 처리한 것을 비롯해 소비자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사건들을 발굴해내는데 관심이 많았다. 카르텔조사단장 시절에는 석유화학업계 1조5000억원대 담합을 적발해 10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 후보자가 원만하고 차분해 보이지만 ‘한 칼’은 품고 있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우등생, 스타 위원장으로 이어질까

정 후보자는 이번에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함으로써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공정위 내부 출신 위원장에 대한 공정위 내부의 기대도 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무색무취한 정 후보자가 정부의 입맛에만 맞춰갈까 걱정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 후보자는 청문회에 앞서 ‘경제 활성화’를 언급했다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에는 불공정행위로 조사를 받아온 CJ·롯데가 ‘동의 의결’을 신청했다가 공정위로부터 거부당하는 편법을 통해 정 후보자의 재임 기간에 맞춰 판결을 받게 되는 일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청문회 우등생이 반드시 우수한 장관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넘버2,3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잘했다고 해서 넘버1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도 나온다. 정 후보자가 ‘경제 민주화’와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칼’로 잡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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