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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최순실은 어떻게 대통령을 ‘기획’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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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파일’로 본 국정개입 의혹 분석
청와대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60)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봤다는 JTBC의 보도가 세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연설문 뿐만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 전반을 최씨가 기획했다는 정황도 함께 드러나면서 파문은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24일 <제이티비시>(JTBC)는 최씨의 사무실에서 폐기 처리된 컴퓨터의 파일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200여개의 파일 중 44개가 대통령 연설문이나 국무회의 모두발언 같은 ‘공식 발언 자료’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최씨의 측근인 고영태씨가 “회장님(최순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고 했던 과거 인터뷰 내용과 관련한 증거가 나온 겁니다. 누리꾼들은 그동안 대통령의 연설에서 오류가 잦았던 점을 떠올리며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견된 파일은 연설문 뿐만이 아닙니다. 최순실 파일을 훑어보면 최씨가 대통령의 공식 발언과 정무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대통령이 입을 옷과 휴가 일정까지 전반적으로 관여했다는 추측이 나옵니다.

■ 정부조직개편·경제정책도 최씨 파일에

최씨의 컴퓨터에 들어있는 파일은 크게 다섯 종류입니다. 첫째가 앞서 언급한 ‘국무회의 말씀자료’ ‘5·18 33주년 기념사’ ‘신년사(방송3사)’ 등 연설문과 공식 발언자료입니다.

두번째는 국정 운영이나 경제정책 등 공무와 관련한 자료들입니다. ‘정부조직개편안 평가’ ‘가계부채―B’ ‘고용복지-업무보고-참고자료’ 등의 이름을 단 파일입니다. ‘가계부채―B’는 이번 정부 들어 1250조원을 넘겨 폭증하며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대책을 담은 파일로 추정됩니다. 고용복지 참고자료는 일자리 정책에 대한 문서로 보입니다. 이름만 봐도 중요한 공무 관련 자료를 청와대 내부직원이 아닌 최씨가 받아봤다는 겁니다.

JTBC 보도화면 갈무리
JTBC 보도화면 갈무리
정책 자료 뿐만이 아닙니다. ‘역대 경호처장현황’ ‘대통령당선인 대변인 선임관련’과 같은 중요한 청와대 인사 파일도 있습니다.

‘식사, 티타임 대상자’ ‘청와대회동(1228)’ ‘121228 청와대회동―수정’ ‘양승태 대법원장 면담 말씀자료’와 같은 파일도 있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심지어 어떤 말을 할지도 최씨가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에 힘을 더하고 있습니다.

■ 극비 필수인 외교문서도…특사단 파견도 관여?

셋째로 대외적으로 극비를 지켜야 할 외교 자료들도 나왔습니다. ‘중국 특사단 추천의원 명부’ ‘다보스 포럼 특사 파견’ ‘아베 신조 총리 특사단 접견 자료’ ‘호주 총리 통화 참고자료’ 등의 외교 문서입니다.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국가 원수와 직접 통화하면서 나눠야 할 이야기를 어째서 최씨가 자신의 컴퓨터에 파일로 갖고 있었던 것일까요?

중국 특사단 파견 서류도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박 대통령이 집권 뒤 최초로 보낸 특사 파견지가 미국이 아닌 중국이란 점은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중·일·러에 동시에 특사를 파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에 먼저 특사를 보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외교의 무게중심을 중국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이 중요한 특사단에 어떤 인물을 보낼지 추천하는 서류를 왜 최씨가 가지고 있었을까요?

‘일본 특사단 접견 자료’도 마찬가집니다. 박 대통령이 당선 직후 통의동 집무실에서 가장 먼저 치러야 했던 공식업무가, 바로 그 전달 일본 총선을 통해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의 특사단 접견이었습니다. 당시 면모가 공개된 아베 총리 내각에는 독도·위안부 문제 등에 극우적 색채를 드러낸 인사들이 기용된 상황이어서,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처음으로 한·일 새 정부 간 조율하게 되는 중요한 무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어떤 말은 하고 어떤 말을 하지 않을지 근거가 되는 접견자료는, 아시아 정세를 뒤흔들 수도 있습니다.

일본특사단의 방한 사실이 알려지자 항의하는 시민단체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특사단의 방한 사실이 알려지자 항의하는 시민단체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 티비토론 자료는 물론 당선소감부터 취임 행사까지 챙겼다

넷째로 대통령 후보 시절 유세문과 선거일정, 인수위 관련 서류들입니다. 선거 막바지인 ‘11일차 서울 유세문’은 물론, ‘3차 TV연설문’ ‘TV토론 관련’ 파일도 눈에 띕니다. ‘유치원 반론’ 파일은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유치원과 관련해 대응을 준비했던 자료로 보입니다. 최씨는 1986년 3월 육영재단 부설유치원장으로 운영을 맡으며 재단 일에 개입했고, 이에 직원들이 최태민·최순실씨의 부당한 전횡에 대해 시위를 벌이면서 1987년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내놓는 파란이 있었습니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위기에 강한 글로벌 리더’ ‘여성대통령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등의 파일은 대통령 선거 때 이미지 구축 작업도 최씨의 관심사였음을 알게 합니다. ‘신문 광고(안)’ ‘표지’ 등의 이미지 파일도 자주 등장하며, ‘인수위 엠블럼’ 한글 파일을 보면 최씨가 대통령직 인수위의 엠블럼 이미지까지 꼼꼼히 챙겨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선되고 나서도 최씨는 인수위 일을 직접 챙긴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 당선인 소감문’ ‘당선인 신년사(신문용)’ 파일도 최씨의 컴퓨터에 있었습니다. 당선 직후 대통령이 읽은 ‘대통령 당선인 소감문’의 경우, JTBC는 “대통령이 읽기 전 최씨의 컴퓨터에서 열어본 시간 기록이 남아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우표 시안’ ‘우표 제안’ 등의 이미지 파일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 시안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선을 보인 기념우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린시절부터 젊은 시절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은 독특한 구성으로 화제가 됐던 바 있습니다. 내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도 발행될 예정입니다.

한복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에 참석해 국민들의 희망이 적힌 복주머니 속 글을 읽고 있다. 청와대 공동취재단
한복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에 참석해 국민들의 희망이 적힌 복주머니 속 글을 읽고 있다. 청와대 공동취재단
함께 보이는 ‘취임식 행사업체’ 파일로 미루어볼 때 취임식 전반도 꼼꼼히 챙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누리꾼들은 정체불명의 ‘오방낭’ 이란 파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포털 자동검색어로 ‘오방낭 주머니의 비밀’이 뜰 정도입니다. 오방낭은 우주의 중심을 뜻하는 황색, 동서남북을 뜻하는 청·백·적·흑색 등 5가지 색을 이어붙여 만든 주머니로 안에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부적을 담는 주머니입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이 끝난 뒤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 복주머니’라는 행사를 가졌는데, 이 복주머니가 오방낭입니다. 최씨가 대통령 취임 행사와 관련해 아이디어부터 시행까지 세세하게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 대통령 ‘패션’부터 휴가 일정까지…페이스북도 관리?

다섯번째로, 대통령의 패션과 사생활에 대한 사진 자료들입니다. 누리꾼들이 관심을 갖고 지적하는 사안 중 하나는 최순실 파일 중에 ‘옷1’ ‘옷1-1’ ‘옷 3’과 같은 이미지파일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겁니다. 평소 최씨가 대통령의 옷과 장신구, 가방 등까지 꼼꼼히 챙긴다는 소문과도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130728 휴가’ 로 시작하는 여러 이미지 파일은 대통령의 휴가와 관련된 사진으로 보입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후 첫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2013년 7월 29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경남 거제시 장목면 저도로 떠납니다. 저도는 1967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다녀간 여름휴가지이기도 합니다.

박 대통령은 30일 저녁 페이스북에 ‘추억 속의 저도’라는 게시물을 올리고, 바닷가 모래밭에 나뭇가지로 ‘저도의 추억’이라고 쓰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사진 5장을 공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7월 30일 페이스북에 저도(猪島)에서 휴가를 보낸 사진을 공개했다. “35여년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고 썼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7월 30일 페이스북에 저도(猪島)에서 휴가를 보낸 사진을 공개했다. “35여년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고 썼다.
다소 우스운 것은 29일 청와대 쪽이 청와대 출입 기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까지 휴가지를 극비에 부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전직 대통령들이 휴가를 떠날 때는 대충 어느 곳인지 알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당시 유독 보안을 이유로 청와대가 장소에 대한 엠바고를 주문해 기자들에게 불만을 샀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대통령이 직접 페이스북에 장소명까지 적은 사진을 공개해 청와대가 우스운 꼴이 되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씨의 컴퓨터에 있는 이미지파일 제목에 나온 날짜는 그보다 하루 전인 28일인 점도 흥미롭습니다.

누리꾼들은 ‘페이스북’ 이란 제목의 문서파일, ‘홈피-트위터’ ‘홍보SNS본부 운영안’ ‘후보님 대화 SNS 시나리오’ 같은 파일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SNS 또한 최순실의 손이 닿는 영역이었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커지는 의혹들…청와대는 침묵중

커지는 의혹들은 청와대의 해명과 후속 보도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최씨의 연설문 가필 의혹이 드러날 당시,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봉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말했습니다. 파일이 공개된 뒤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통령 연설문을 외부로 반출하는 것은 대통령 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정윤회 게이트 때도 청와대가 걸고 넘어졌던 것이 ‘문건 유출로 인한 국기 문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 연설문이 밖으로 나간 것조차 문제인데, 일반인이 사전열람에 내용까지 수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연설문 뿐 아니라 정책서류, 극비 외교문서, 인사파일까지 아무 공적인 직책도 없는 일반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원문보기:
http://hani.co.kr/arti/politics/bluehouse/767200.html?_fr=mt2#csidxb6046557c5a724d8a936ab3048828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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