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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세 히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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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세 히토키(일본어: 岩瀬 仁紀 (いわせ ひとき), 1974년 11월 10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 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주니치 드래곤스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목차

[편집] 인물

[편집] 프로 입단 전

아이치 현립 니시오히가시 고등학교에 재학할 당시 현 대회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마지막이자 여름 대회인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아이치현 대회 4차전에서 팀은 패배했다. 고교 졸업 후 아이치 대학에 진학하여 아이치 대학 리그에서는 1학년부터 외야수의 주전으로서 출전, 타자로서 리그 통산 101경기 출전해 384타수 124안타, 타율 3할 2푼 3리, 9홈런, 64타점을 기록했다. 통산 124안타는 리그에서 역대 2위이다.[1]

1995년 춘계 리그에서 1경기 3홈런을 기록하여 외야수로서는 베스트 나인을 4차례나 수상했다. 같은해 추계 리그에서는 외야수 겸 투수로 활약해 투수에서는 3시즌 통산 15경기에 등판하는 등 8승 4패의 성적을 남겼다. 대학 졸업 후는 사회인 야구팀인 NTT 도카이에 입단했고, 199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는 주니치 드래곤스를 역지명하여 2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편집] 프로 입단 후

[편집] 1999년 ~ 2004년

입단 1년차인 1999년 개막전에서 실점을 허용하는 등 아웃카운트를 한 개도 처리하지 못한 채 강판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발판삼아 이후의 등판에서는 구단 수뇌부의 신뢰를 얻어 좌완 중간 계투를 맡아 자신의 특색인 제구력과 날카롭게 구부러지는 슬라이더를 무기로 오치아이 에이지, 이상훈(삼손 리), 선동렬 등과 함께 투수진을 구축하여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 해에는 데뷔 후 첫 타이틀인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상을 석권했다. 평균자책점 1.57을 기록해 중간 계투이면서도 10승 2패의 좋은 성적을 남길 정도로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그 해 시즌 20승을 달성한 우에하라 고지가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듬해 2000년 10월 8일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만 선발 등판해 7이닝을 던져 7안타 1실점을 기록하여 승리투수가 되었고 정작 본인은 선발 투수로 뛰겠다는 희망을 가진 적도 있어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시험도 겸해 기용되었다. 그 이후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었고 특히 2002년, 2003년에는 2년 연속 1점대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하는 등 수뇌진의 신뢰를 쌓았다.

2004년에는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으로부터 구원 투수로 지명되었지만 정규 시즌 개막 직전에 자택의 욕실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는 등 그 영향으로 인해 전반기에서의 성적 부진은 계속되었는데도 2승 3패 22세이브의 성적으로 팀의 5년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8월에 열린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다.

[편집] 2005년

10월 1일 히로시마전(나고야 돔)에서는 46세이브를 달성해 사사키 가즈히로가 갖고 있던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60경기에 등판하면서 피홈런은 한 개도 없었다.

[편집] 2006년

1월 20일의 계약 갱신에서는 7,500만엔이 증가된 추정 연봉 3억 500만엔으로 재계약 되었는데 주니치에 활동한 일본인 선수로서는 1992년의 오치아이 히로미쓰를 제치고 구단 역사상 최고 연봉이 되었다. 4월 4일의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는 9회말에 다무라 히토시로부터 동점 홈런(2점)을 허용하여 구원에는 실패했다. 2004년 9월 25일 무라타 슈이치에게 허용한 이후 그토록 허용하지 않았던 홈런을 맞아 피홈런 0의 기록은 끊어졌다.

7월 30일, 프로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고 10월 8일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인 2년 연속 40세이브를 달성했다. 2년 만에 팀의 리그 우승을 결정한 10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의 11회말 3대 3 동점인 상황에서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편집] 2007년

4월 6일, 가쿠 겐지의 구단 기록을 경신하는 117세이브를 기록했고 7월 7일에는 통산 5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2] 9월 8일, 아키야마 노보루와 대등한 9년 연속 50경기 등판의 프로 야구 타이 기록을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다음날인 9월 9일에는 사상 6번째의 150세이브를 달성했고 9월 19일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인 3년 연속 40세이브를 달성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에는 제구의 구속이 140km/h를 밑돌 정도의 부진에 시달려 전체적으로는 구위력과 제구에 대한 부담을 느낀 시즌이었지만[3] 8월 이후의 평균자책점은 1.27로 호조를 이루었다. 그 해에 새로 도입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한신 타이거스와의 제1 스테이지 2차전으로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제2 스테이지 3차전까지 모두 8회 도중에 4연투로 팀의 일본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3승 1패를 기록한 일본 시리즈 5차전에서는 8이닝까지 퍼펙트 게임의 호투를 하고 있던 야마이 다이스케를 대신해서 9회에 등판, 3자 범퇴를 처리하며 사상 최초인 계투에 의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해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 달성에 기여했다.

[편집]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시절의 이와세

6월 14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알렉스 카브레라에게 557경기 만에 처음으로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다. 8월에 열린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출전했지만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이승엽(요미우리)에게 역전 홈런을 허용하는 등 대회를 통해서 10실점과 3경기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귀국 후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인 10년 연속 50경기 등판을 달성했고 포스트시즌에서의 무실점 기록을 22이닝 1/3까지 늘리고 있었다. 12월에는 추정 연봉인 4억 3,000만엔(작년과 동일함)으로 4년 재계약을 맺었다.

[편집] 2009년

4월 21일, 스즈키 다카마사의 구단 기록을 경신하는 통산 587경기 등판을 기록했다. 그러나 4월 3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나고야 돔)에서 상대 타자 아오키 노리치카의 머리 부분에 위협구를 던져 퇴장당했다. 5월 12일 프로 야구 사상 4번째이자 좌완 투수로서는 사상 최초의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고 7월 30일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5년 연속 30세이브를 달성했다. 8월 15일에는 역대 단독 3위인 통산 228세이브를 기록하면서 8월 18일에는 20경기 연속 세이브를 달성했다.

[편집] 2010년

6월 16일에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나고야 돔)에서 개인 통산 250세이브를 달성했는데 사사키 가즈히로, 다카쓰 신고에 이은 세번째의 구원 투수로서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의 가입 조건을 채웠다. 게다가 6월 23일의 요코하마전(도요하시 시민 구장)에서 사사키를 제친 프로 야구 역대 2위가 되는 통산 253세이브를 기록했고 8월 7일의 한신전에서는 개인 기록을 경신하는 ‘6년 연속 30세이브’를 달성했다.

[편집] 2011년

그 해 시즌 개막부터 컨디션이 좀처럼 오르지 않아 실점하는 경기도 많았지만 5월 17일의 지바 롯데 마린스전(QVC 마린필드)에서 통산 7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 6월 12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다카쓰 신고의 통산 세이브 기록(286세이브)과 6월 16일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나고야 돔)에서 통산 287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프로 야구 기록을 경신했다.

[편집] 출신 학교

[편집] 선수 경력

사회인 시대
프로팀 경력
국가 대표 경력

[편집] 수상·타이틀 경력

  •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 : 3회(1999년, 2000년, 2003년)
  • 최다 세이브 : 4회(2005년, 2006년, 2009년, 2010년)
  •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2004년)

[편집] 주요 기록

[편집] 첫 기록

[편집] 기록 달성 경력

[편집] 기타

  • 시즌 46세이브 : 2005년(타이 기록)

[편집] 등번호

  • 13(1999년 ~ )

[편집] 연도별 성적

연도 소속



















고의
사구








평균
자책점
WHIP
1999년 주니치 65 0 0 0 0 10 2 1 -- .833 307 74.1 67 3 22 2 2 73 4 0 16 13 1.57 1.20
2000년 58 1 0 0 0 10 5 1 -- .667 323 80.1 66 3 28 4 1 65 1 0 20 17 1.90 1.17
2001년 61 0 0 0 0 8 3 0 -- .727 252 62.2 51 3 16 0 3 62 0 0 23 23 3.30 1.07
2002년 52 0 0 0 0 4 2 0 -- .667 231 59.2 38 2 15 4 3 66 1 0 8 7 1.06 0.89
2003년 58 0 0 0 0 5 2 4 -- .714 244 63.2 47 3 12 6 1 69 1 1 10 10 1.41 0.93
2004년 60 0 0 0 0 2 3 22 -- .400 259 64.1 53 4 14 2 3 53 1 0 20 20 2.80 1.04
2005년 60 0 0 0 0 1 2 46 2 .333 229 57.1 51 0 8 2 2 52 1 0 12 12 1.88 1.03
2006년 56 0 0 0 0 2 2 40 5 .500 214 55.1 40 3 8 3 0 44 0 0 8 8 1.30 0.87
2007년 61 0 0 0 0 2 4 43 3 .333 233 59.0 53 3 9 4 0 50 0 0 18 16 2.44 1.05
2008년 51 0 0 0 0 3 3 36 5 .500 212 49.0 55 2 10 2 0 41 0 0 16 16 2.94 1.33
2009년 54 0 0 0 0 2 3 41 1 .400 196 46.2 41 2 13 2 2 34 2 0 11 11 2.12 1.16
2010년 54 0 0 0 0 1 3 42 3 .250 202 48.0 47 1 13 1 2 41 1 0 12 12 2.25 1.25
통산 : 12년 690 1 0 0 0 50 34 276 19 .595 2902 720.1 609 29 168 32 19 650 12 1 174 165 2.06 1.08
  • 2010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붉은색 글씨는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고 성적.

[편집] 주석

  1. 역대 1위는 진노 준이치이다.
  2. 9년차에서의 달성은 사상 8번째이다.
  3. 연도별 성적의 비교에서는 입단 3, 6, 9년차의 성적이 저조한 것으로부터 “이와세의 부진은 3년 주기”라는 평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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