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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의 ‘마지막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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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자 할머니
냉방서 자며 폐지 모아 “전재산 기부”

“내 재산 모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 주세요.”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을 겪은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가 냉방에서 자며 모은 돈을 사후에 모두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200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1억원에 가까운 돈을 기부해 국민훈장을 받은 황금자(87·사진) 할머니다. 황 할머니는 최근 건강이 악화되자 남은 재산 3000만원을 강서구 장학회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924년생인 황 할머니는 13살 무렵 거리에서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함경남도 흥남으로 끌려간 뒤 평생을 혼자 지냈다. 유리공장에서 3년을 일한 뒤 제법 처녀티가 나자 일본군은 할머니를 다시 간도로 끌고 갔다. 온갖 욕설과 구타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군홧발에 짓이겨진 손가락은 지금도 펴지지 않는다.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가정을 꾸리기는 어려웠다. 이따금 길에서 교복 입은 남학생들을 만나면 군복 입은 사내들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욕을 쏟아냈다. 소녀 시절 겪은 고통이 환각처럼 되살아나 집 밖에 나설 수가 없었다. 길에서 떠도는 여자아이를 거둬 키웠지만 몸이 약한 아이는 10살을 넘기지 못했다.

할머니의 통장엔 국민기초생계비와 일본군 위안부 지원금, 노령연금 등을 합쳐 매월 200만원이 넘는 수당이 들어온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할머니는 겨울에도 임대아파트의 보일러를 켜지 않은 채 냉방에서 지냈다. 폐지와 빈병을 줍고 끼니는 복지관에서 때웠다.

할머니가 마음을 연 것은 할머니가 살고 있는 강서구 등촌3동 사무소의 사회복지사였던 김정환(46) 팀장을 만난 2003년이다. 기구한 사연을 불평 없이 들어주는 복지사를 할머니는 친아들처럼 여겼다. “모아온 돈을 자네한테 주고 싶다”는 할머니에게 김 팀장은 “의미있는 곳에 써달라”고 답했다. 할머니의 조건 없는 기부는 이렇게 시작됐다.

고집스럽게 폐지를 모으던 할머니는 지난가을부터 거동을 할 수 없어 방에만 누워 있다. 특별히 병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모진 지난날의 무게가 한꺼번에 닥쳐온 탓인지 간병인이 곁에서 음식을 떠넣어줘도 삼키기 어려울 정도다.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는 지난 7월 김 팀장을 증인으로 불러 “은행예금, 임차보증금, 내 재산 모두를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98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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