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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凡)현대가 KCC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 백기사로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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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들은 두 회사의 합병 비율 등을 문제 삼으며, 법원에 주주총회의결금지 가처분 소송도 냈다. 이런 와중에 범(凡)현대가인 KCC가 삼성의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10일 삼성물산은 자사주 지분 5.76%를 KCC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8일 KCC가 장내매수한 지분 0.2%까지 합하면 KCC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5.96%로 늘어난다. 삼성물산이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을 때 의결권이 없던 이 주식은, KCC로 넘어가면 의결권이 생긴다. 합병 찬반 표 대결을 벌일 때 우호 지분 확보가 중요한데, 이 경우 KCC가 지분 확보를 통해 경영권 방어를 도와주는 백기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가와 삼성,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회사의 우호 관계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삼성카드는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금융산업 구조개선법에 따라 가지고 있던 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해야 했다.

에버랜드는 당시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회사였다. 누구한테 지분을 파는지가 중요했다. 판 지분이 경영권 분쟁 등에 이용된다면 삼성으로선 골치 아픈 상황이 전개될 수 있어서다. 더욱이 당시는 2008년 편법 상속에 대한 시비로 삼성 이건희 회장이 순환 출자를 해소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었다. 수많은 시민단체와 기업의 이목이 삼성을 주시하고 있었다.

	2011년 삼성카드는 KCC에 에버랜드 주식 17%를 팔았다.
2011년 삼성카드는 KCC에 에버랜드 주식 17%를 팔았다.

그런데 돌연 KCC가 등장하며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 삼성카드는 그해 12월 12일 KCC에 에버랜드 주식 17%(42만5000만주)를 7739억원에 팔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증권가 전문가 중엔 삼성의 묘수(妙手)에 무릎을 치는 사람이 많았다. KCC는 1조원가량의 현금을 투입할 수 있는 기업이면서, 현대가(家)였기 때문에 편법 상속과 관련한 특혜 시비 역시 일부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건희 회장이 약속했던 순환형 지배구조도 자연히 해결됐다.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며 이득도 챙긴 것으로, KCC가 삼성의 가려운 곳을 완벽히 긁어준 모양새였다.

이 아이디어는 누구로부터 나왔을까. 삼성카드가 KCC에 지분을 판다고 발표하기 닷새 전인 12월 7일 발표된 삼성의 정기 임원 인사 명단에 그 해답이 있었다. 당시 명단은 여러 사람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김인주 당시 삼성카드 고문이 삼성선물 사장이 됐다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김인주 고문은 ‘삼성의 넘버3’, ‘삼성의 금고지기’ 등으로 불리다가, 2008년 7월 삼성 비자금 사건 때 이학수 당시 전략기획실장과 함께 물러난 사람이었다. 이후엔 삼성전자 상담역과 삼성카드 고문을 맡았다. 삼성에선 ‘상담역, 계열사 고문’을 맡는 것을 은퇴의 수순으로 본다. 그런데 그가 돌연 사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김인주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김인주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백기사로 KCC를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김인주 사장이었다고 업계에선 해석했다. 그는 이건희·이학수 체제에서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부사장이 에버랜드 지분을 지렛대 삼아 삼성그룹을 지배하도록 밑그림을 짰던 경험이 있었다.

김 사장은 지분매각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JP모건을 주관사로 선정한다. 여기엔 JP모건 한국 대표인 임석정씨가 KCC 정몽진 회장과 대학, 대학원 동문이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임 대표와 정 회장은 1960년생으로 고려대와 조지워싱턴 경영대학원 동문이라는 인연이 있었다. 임 대표를 통해 정 회장을 설득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 대표는 후에 있을 에버랜드 기업공개(IP0)시의 상장 차익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정 회장을 설득했다고 한다. 당시엔 장부가 대비 10% 할인 가격으로 KCC가 에버랜드 주식을 매입해 손해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 에버랜드가 IPO를 하면서 이는 성공한 투자가 됐다. 이를 전후해 KCC는 여러 재무 투자에 성공하는데 이는 정몽진 회장과 임석정 대표의 궁합이 그만큼 좋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후 주식시장엔 ‘KCC를 따라 투자하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임석정 대표는 이후 이재용 부회장의 신임도 얻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어떤 투자를 결정할 때 JP모건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3년 JP모건이 삼성 스마트폰과 관련한 부정적 보고서를 내놔 삼성전자의 주가가 휘청댄 적도 있지만, 지난해 있었던 삼성과 한화의 빅딜을 JP모건에 맡기는 등 끈끈한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과 임석정 대표는 경복고 선후배 사이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지분 매입 등은 CEO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재용, 정몽진, 임석정 세 사람의 관계가 삼성과 KCC의 우호적 관계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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