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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학, 美 지게차 원조를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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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클라크 본사가 있는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만난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계열사 생산 시설과 영업망 등이 표시된 세계지도 여러 장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렉싱턴(미국)=김덕한 특파원

1917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지게차(forklift)'는 올해로 100세가 됐다. 무거운 물건을 오르내리고 옮기면서, 물류 산업에 일대 혁신을 몰고 온 지게차는 미국 회사 '클라크'가 처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클라크의 주인은 한국인이다. 한때 전 세계에 25개 공장을 돌리면서 세계 지게차 시장의 40%를 차지했던 클라크는 1980년대 이후 쇠락으로 접어들어 결국 2000년대 들면서 파산했다.

2002년 미국 파산법원이 경매에 내놨을 때 클라크의 상태는 말 그대로 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응찰한 5개 기업 모두 클라크를 인수 직후 창고에 쌓인 부품을 팔아 치운 뒤 문을 닫을 심산이었다. 이때 영안모자 백성학(77) 회장이 파산법원에 나타났다. "공장을 돌려 회사를 살리고 고용을 모두 승계하겠다" 미국 파산법원은 이 약속을 믿고 이듬해 한국의 작은 모자 회사에 미국의 자존심이라 할 만한 브랜드의 재활을 맡겼다.

◇빠른 성장, 과당 경쟁 대신 내실·가족 경영으로
14년 후인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클라크 본사 맞은편 컨벤션센터. '지게차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전 세계에서 400명이 넘는 클라크 지게차 딜러들이 몰려들었다. 연단에 오른 백 회장은 "작은 모자를 만드는 기업이 미국의 전설적인 브랜드를 살려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전 세계의 클라크 가족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클라크는 영안이 인수한 지 딱 10년 만인 지난 2013년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지난해 후반부터는 미국 공장을 본격 재가동하며 예전의 영화를 재건할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17일 인터뷰에서 백 회장은 클라크 회생 비결에 대해 "기존 지게차 시장 방식이 아닌 내가 처음 모자를 들고 미국에 진출해 시장을 장악해 가던 방식을 쓴 것"이라고 소개했다. 빠른 성장보다는 이익이 좀 줄어들더라도 판매상들과 상생하는 '가족 경영', 고수익·고성장에 집착한 과당 경쟁 대신 '내실 경영'을 내세운 것이다. 백 회장은 "당시 업계 상위권 업체들은 잘되는 판매상 사업권을 본사가 거둬들여 본사가 부품, 서비스 사업까지 직접 챙겨가며 5% 넘는 이익을 냈지만, 우리는 2~2.5% 수익률에도 확실하게 딜러에게 지역 판매권을 인정해줘 가며 가족에게처럼 정보도 다 공개했다"고 말했다. 백 회장의 이런 전략은 다른 브랜드로 떠나버렸던 예전의 판매상들을 다시 돌아오게 했고, 한때 100명 아래로 떨어졌던 미국 판매상이 지금은 400명 이상 규모로 회복됐다.
◇"미국에서 공장 만들어도 충분히 성공"
백 회장은 클라크 본사를 750만달러(약 84억원)에 인수해 판매망을 정비하는 한편, 클라크 창원 공장을 1500만달러에 사들이고, 중국과 멕시코 공장을 신설하며 세계 생산 체제도 손봤다. 그러다가 2014년엔 멕시코 공장을 폐쇄하고 미국 공장으로 이전 통합을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공장을 미국으로 되돌려 와라"고 외치기 몇 년 전에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한 결정이었다. 백 회장은 "멕시코가 당장 생산비에선 경쟁력이 있겠지만 물류·재고 관리 비용까지 생각하면 큰 효용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올해에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작년의 4배가 넘는 6000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덕한 특파원

그는 특히 심각한 표정으로 "상당수 미국의 제조업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한국의 노동계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모자왕'으로 불릴 만큼 큰 성공을 거둔 백 회장은 지금도 인건비 비싼 미국에서 모자 공장을 4개 운영해가면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최고급 카우보이 모자 등 미국 시장에 특화된 상품은 미국 현지에서 만들어 수입품과 함께 판매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50년 부모를 모두 잃고 월남(越南), 초등학교 3학년 학력이 전부인 백 회장은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 모자점 점원 등을 거쳐 1959년 열아홉에 영안모자점을 창업한 후 자수성가했다. 그는 이 노하우를 활용해 좀 더 많은 기업과 사람이 외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돕고 싶다고 했다. 대우그룹 해체 때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을 인수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고 , 미국 기업 클라크를 인수해 회생시킨 데 이어 호주에 서울 면적의 3배나 되는 목장을 사들이는 등 끊임없이 신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이제 영토를 총칼로 빼앗을 수 없지만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곧 영토 확장"이라며 "남북한 인구 중 2000만명은 작은 사업이라도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가지고 외국에 나가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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