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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고구려란 국호는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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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몽이 부여('삼국사기' 등에는 동부여라고 했으나, 정작 고구려인들이 쓴 '광개토왕릉비' 등에는 북부여라고 했고, 그 북부부여는 고구려를 기준으로 한 명칭이었습니다)에서 남하한 뒤 세운 나라 고구려. 이 이름은 나중에 왕건이 빌렸고(후술), Korea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관절 고구려는 무슨 뜻일까요?

 
2. '삼국사기'에는 주몽이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세웠다고 기록했습니다만, 실상 주몽의 남하 이전에도 고구려는 존재했습니다. 한 무제는 눈에 거슬렸던 위만조선을 1년 정도 집요하게 공격해서 멸망시킨 뒤에 이른바 한사군을 설치하는데, 그 한사군 중 하나인 현도군(현토군이라고도 합니다)은 기원전 107년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도군의 현 중에 고구려현이라는 이름이 눈에 띕니다. 어? 고구려현?
 
3. 한사군을 포함해서 현도군의 위치를 놓고 논란이 있지만, 저는 대체로 식민사학에 혼이 묶여 통설을 따르자는 주의이므로 현도군도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 고구려현은 압록강 어딘가에 있었던 듯한데, 보통 중국식 지명이 2자인데, 3자인 것으로 봐서 고구려는 그 지역의 주민들이나 세력을 지칭하던 명칭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현을 설치하면서 그 이름을 따서 고구려현이라고 했나 봅니다.
 
4. 하지만 현도군은 주몽과 그 패거리가 속한 다물군의 공격을 받아 한반도에서 밀려나 요동 지역으로 이사를 갑니다. 이때가 기원전 75년입니다. 이 이후에 주몽이 지금은 혼강이라고 부르는 비류수에 꼬붕 오이, 마리, 협부를 데리고 왔고 자기 나라를 세웁니다. 주몽도 고구려라는 이름을 선택해 국호로 정합니다(물론 주몽이 아닌 후대의 어느 왕이 국호를 정했고, 그것을 소급했다는 의견도 있긴 한데, 그냥 통설을 따릅니다).
 
5. 그리고 주몽의 아들 유리왕이 배 다른 형제(어쩌면 씨도 다른 형제일지도 모르는) 비류와 온조를 밀어내고 왕위를 잇습니다. 재위기간이 비교적 길었던 만큼 별별 사건이 많았던 유리왕대이지만(마누라가 가출한다든지 아들들이 죽어나간다든지) 중국과 얽힌 큰 사건 하나가 바로 하구려사건입니다.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흉노를 치겠다며 고구려에도 군대를 보내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억지로 군대를 보내는데, 남의 집 싸움에 끼어들기 싫었던 고구려 병사들은 집단 탈영(전장 이탈이겠죠?)해 약탈을 저지르고 심지어 중국의 높으신 분 하나도 죽이게 됩니다. 당연히 왕망은 변방 오랑캐가 개긴 것에 화가 나 날뛰었고, 복수를 선언합니다.
 
6. 하지만 엄우라는 신하는 "걔들도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건데 용서해 주시죠?"라며 고구려를 두둔하다가 되레 고구려 정벌을 떠나게 됩니다.  본 의 아니게 고구려를 공격하게 된 엄우는 중국 사서에는 고구려왕(또는 고구려후) 추라는 인물을 만나자고 유인해서 그 목을 베고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왕망은 엄우가 고구려왕 목 따온 것을 기뻐하며 "건방지게 고구려는 무슨 하구려라고 해!"라고 하여 남의 나라 이름을 강제로 바꿉니다. 재미있는 건 '삼국사기'에는 같은 사건에서 죽은 사람을 추가 아닌 연비라는 장수라고 기록했는데, 사실 이 두 계열의 기록 중에서 어떤 것이 맞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따로 검증할 만한 제3의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인 우리야 '삼국사기'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증이지만, 그렇다고 중국 사서 기록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데, 여기에서 그런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보다 중요한 건 미치광이 왕망이 고구려를 하구려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7. 높을 고(高)와 아래 하(下)를 바꿔서 부른 것으로 보아 고든 하든 수식하는 말이고, 구려가 핵심어임을 알 수 있는 단서이기 때문이죠. 왕망은 미친 놈이지만, 고구려의 뜻을 알 수 있는 단서 하나는 남긴 셈입니다. 그렇다고 고마워하지는 말고요. ㅎㅎㅎ
 
8. 단서는 또 있습니다. 중국이라고 해서 매번 변방 이민족들과 싸움박질은 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교류할 창구 하나는 마련해야 합니다. 요동 쪽에서는 책구루라는 곳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책구루에서 중국인들은 고구려인들에게 북이나 피리, 그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악공, 옷이며 책을 주었다는데, 여기에서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모자입니다. 어느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인들은 대가는 책을 쓰고, 소가는 절풍을 썼다고 하니 책은 높으신 분들이 썼던 모자인 셈입니다. 그리고 구루는 고구려인들 말에 성(여러분이 좋아하는 ㅅㅅ 말고 캐슬요) 이라고 중국인들은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책구루는 책이라는 모자를 주는 곳이라고 해서 책구루라고 한 것이죠. 그런데 구루라는 말이 어째 고구려의 구려랑 비슷하지 않습니까? 앞에서 고는 꾸미는 말이고, 구려는 꾸밈을 받는 핵심어라고 했었죠? 그렇다면 답은 나온 셈입니다.
 
 
고구려인들이 썼던 여러 형태의 모자들
 
9. 중국인들의 기록 말고도 고구려인들이 성을 구루 비슷하게 발음했다는 단서는 또 있습니다. 고구려의 지명 등을 분석하면 '홀'이라는 단어가 무척 많이 나오는데, 이 홀은 성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매홀(買忽)은 수성(水城)이었다는 기록을 보면 매라는 말은 물 수(水)와 홀은 재 성(城)과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매홀은 물의 성이었다는 뜻입니다(참고로 이 매홀은 오늘날의 수원입니다). 성이라는 의미의 단어 홀은 당시 고구려인들이 정확히 어떻게 발음했는지 알 수 없지만, 구루, 구려와 비슷한 발음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10.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고구려는 고+구려이고, 구려는 성이라는 의미로서 구루, 홀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높은 성 정도의 뜻이 고구려였습니다. 이쯤에서 맨 위로 스크롤을 올려 오녀산성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시죠. 정말 높지 않습니까? ㅎㅎㅎ
 
11. 성곽의 나라 고구려는 5세기 이후에는 구 자를 빼서 고려라고 부릅니다. 사실 이때부턴 고려라고 불러야 하는데, 김부식은 자기 나라 고려와 구별하려고 '삼국사기' 기록에서 고려라고 해야 할 것도 모조리 고구려로 바꿔서 적었습니다. 사실 이해는 갑니다. 5세기 이후 고구려를 고려로 하면 자기들도 헷갈릴 테니까요.
 
12. 자기 나라 이름을 높은 성의 사나이 이라고 불렀고, 그에 걸맞게 성 쌓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고구려인들은 영토 곳곳에 산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들은 당시 세계최강국인 수와 당의 대군을 격퇴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물론 끝내 함락되어서 멸망한 건 함정. 다굴 앞에 장사 없다. 이제는 고구려인들은 모두 시간 너머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성은 아직도 남아서 고구려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조용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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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고구려라는 뜻은 고(高)+구려(성) 높은 성 이라는 뜻인데  고구려 사람들은 5세기경
 
고구려 대신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함  하지만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만들때  후에 고려라는 나라랑
 
헤깔리지 않기 위해서 고구려라는 국호를 사용해서 우리도 현재 고구려 라고 불리고 있네요.
 
고구려=고려=KOREA 라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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