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9일) 아침 조선일보(A10면)에 실린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현장 조사에 관한 기사와 사진은 정부가 재벌 앞에서 얼마나 무력(無力)하고 초라하며, 이 나라에서 재벌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이 기사와 사진은 대한민국 법률은 재벌의 울타리 안에서 무용지물(無用之物)이고, 재벌은 더 이상 법의 지배 아래 있는 게 아니라 '법 위'나 '법 밖'에서 치외법권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작년 3월 24일 오후 2시 20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들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나타나 현장 조사를 위해 방문한 공정위 직원이란 신분을 밝히고 건물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삼성의 경비 직원들은 "사전 약속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며 조사관들의 건물 출입을 가로막았고, 잠시 후 안에서 뛰어나온 두 명의 삼성 직원이 경비 직원에 가세해 공정위 직원들의 출입을 50분 동안이나 지연시켰다. 공정위가 나중에 확보한 건물 내 CCTV에는 그 사이 삼성 측이 관련 자료를 통째로 폐기하고, 책상과 서랍장을 바꾸고, 조사 대상 직원의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꿔치기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조사관의 전화를 받은 임원은 바로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서울 출장 중"이라고 거짓말로 조사팀을 따돌렸고, 다른 직원들도 모두 자리를 피해버렸다. 결국 조사관들은 담당 부서를 찾아가고도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자료도 확보하지 못한 채 그냥 물러나야 했다. 한국 최대 재벌의 최대 회사이고, 세계 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전무가 대한민국 공권력을 정지(停止)시키는 이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삼성전자의 안하무인(眼下無人)하는 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사건 후 보안 규정을 더 강화해 사무실 건물 출입구가 아닌 정문에서부터 차량 진입을 막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주요 파일을 대외비(對外秘)로 지정하고 영구 삭제하는 등의 후속 대책을 마련했다. 공정위가 이렇게 망신을 당한 다음 공정위 조사관들의 출입을 막고 자료를 폐기, 바꿔치기한 혐의를 확인하려 건물 출입 기록을 요구하자 삼성은 해당 직원의 이름을 뺀 허위 자료를 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이 사건 후 내부 회의에서 경비업무를 맡은 용역업체와 그 경비 직원들에게 "대처를 잘했다"고 칭찬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삼성이 정문 앞에 바리케이드까지 설치해 정부 조사기관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은 이 나라에 대한민국 말고 삼성이란 또 다른 정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삼성전자가 이렇게 무모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성이 지난 수십년간 좌·우(左·右)를 막론한 정계와 행정부·입법부·사법부·학계 등 이 나라의 핵심에 심어놓은 '장학생' 인맥(人脈)과 한국 최고의 '법률 기술자'들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 법률이 삼성에 적용되는 것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삼성의 눈엔 대한민국 법률만 우습게 보이는가, 아니면 세계 어느 나라 법도 삼성 앞엔 무릎을 꿇는다는 뜻인가. 삼성은 제 힘센 것만 믿고 하늘 끝까지 다다른 용(龍)에겐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온다는 항룡유회(亢龍有悔)의 의미를 무겁게 되새겨봐야 한다.
삼성의 안하무인은...뭐 예전부터 유명했지만...조선의 이런 사설도 놀랍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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