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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레전드 킬러?’ 선동열도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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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A 선동열 감독과 베테랑 이종범. ⓒ KIA 타이거즈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들 한다. 투수가 승패의 가장 큰 변수라는 의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진 않다. 투수는 수비 상황이라는 경기의 일부만 지배한다. 어떤 선수는 공격과 수비 모든 상황에서 경기를 지배한다.

1993년 해태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경기를 지배한 완벽한 괴물을 탄생시킨 시리즈다. 삼성은 준족과 정교함, 파워 그리고 강견과 수비범위 모두 완벽에 가까운 이종범이라는 천재를 막지 못하고 해태 아닌 이종범에 무너졌다. 이종범은 시리즈 MVP 투표에서 총 48표 가운데 45표를 쓸어갔다.

선동열 같은 대투수도 아닌 신인 타자가 어떻게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지 가장 완벽하게 리허설했다. 야구 천재 탄생의 서막을 열어젖히면서 말이다. 그랬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42·KIA)이 갑작스레 야구 팬들 곁을 떠나기로 했다.

경기 지배한 '야구 천재'의 은퇴 선언

20년 전 혜성처럼 나타났던 '야구 천재' 이종범이 딱 스무 해째 충격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을 목전에 두고 나온 선언치곤 꽤 묵직하다. 팬들은 물론 KIA 구단 전체가 예상치 못한 파장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동계훈련에서 가장 열심히 훈련했고 또 머리도 짧게 자르고 전의를 불태웠던 그였기에 돌발 선언은 충격 그 자체다.

불혹을 넘긴 마흔둘의 나이에도 시범경기 타율도 그리 나쁘지 않다. 타율 0.333(12타수 4안타)로 백업이나 중요한 타이밍에서 대타 요원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성적이다. 그럼에도 이종범은 돌연 은퇴의 길을 선택했다.

그 원인은 일단 KIA 코칭스태프와의 조율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 동계훈련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한 이종범은 흘린 피땀을 선동열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구단의 평가는 냉담했다.

개막전 엔트리 제외와 플레잉 코치진 제의가 그것. 현역으로 더 뛸 수 있다는 의지를 동계훈련 내내 보였지만 세대교체를 택한 코칭스태프의 주문을 외면하긴 힘들었다. 그야말로 '자의반 타의반' 은퇴를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공교로운 사실은 선동열 감독 부임 후 은퇴라는 사실이다. 전임 조범현 감독 재임 시절 '살아있는 전설' 이종범의 힘은 감독 이상이었다. 조범현 감독도 '프랜차이즈 스타' 이종범의 은퇴만은 쉽게 결정할 수 없을 정도의 지지를 장외에서 얻고 있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이종범은 은퇴를 선언했다.

SUN, 양신 이어 이종범까지 '레전드 킬러'

선동열 감독과 레전드 은퇴가 얽힌 사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아직 더 뛸 수 있다던 '양신' 양준혁의 옷을 사실상 벗겼고 그 이전에 역시 레전드급이던 김한수 코치의 은퇴도 있었다.

팀 내 레전드급 스타의 존재감은 때론 감독의 선수 장악력을 약화시키곤 한다. 선동열 감독은 이런 부분을 의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양준혁과 이종범 모두 선수와 팬들로부터 감독 못지않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대구든 광주든 하늘에 태양은 둘이 될 수 없다.

과연 선동열 감독은 부임 전 감독도 하지 못한 악역을 도맡게 된 걸까.

우선 가장 강력한 원동력은 자신의 중량감이다. 레전드급 현역 선수의 은퇴를 시도하기 위해선 자신의 힘 또한 막강해야 한다. 레전드의 가장 큰 무기는 충성도 높은 팬들의 지지다. 이 무력시위 앞에선 힘없는 감독들은 자신의 감독직을 걸어야 한다.

천하의 선동열이기에 이런 모험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즉, 프런트의 강력한 동조를 얻어낼 수 있는 능력과 팬들의 반발을 동시에 무마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능력을 선동열 감독은 무등산 호랑이와 나고야의 태양 두 닉네임을 통해 구축해 놓았다.

삼성 시절 선동열 감독은 두 개 중 하나는 확실했다. 바로 구단 프런트의 동조다. 반면, 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거사엔 성공했지만 역풍을 맞았다. 양준혁을 은퇴시킨 후 팬심을 잃었다. 팬들의 반발이 확대되고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충격적인 4-0 스윕패를 당하면서 여론은 악화됐다. 결국, 시즌 후 감독직 사퇴로 직간접적으로 연결됐다.

KIA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됐다. 바로 삼성에서는 없었던 팬들의 반발을 프랜차이즈 스타 'SUN'의 이름으로 잠재울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의외로 KIA에서도 팬들의 반발이 심상찮다.





◇ 은퇴를 선언한 이종범. ⓒ KIA 타이거즈

SUN 지론 '박수칠 때 떠나라'

그렇다면 왜 선동열 감독이 부임하는 팀마다 레전드들의 은퇴가 이뤄지는 것일까.

그 말은 바로 '박수칠 때 떠나라'다. 레전드급 선수들은 구차하게 현역 시즌을 연장하기 보단 가장 좋은 모습으로 팬들 앞에서 은퇴를 해야 한다는 게 바로 선동열 감독의 지론이다. 이런 표현은 김한수 코치 은퇴 때 이후 양준혁 은퇴 때도 은유적으로 표현된 바 있다.

주니치 은퇴 시절 선동열은 메이저리그에서 오퍼가 왔지만 스스로 옷을 벗었다. 가장 좋은 모습으로 팬들의 뇌리에 남겠다는 선택을 했던 것. 자신 스스로가 박수칠 때 떠났기 때문에 후배들도 그러길 바라는 선배의 배려로 비쳐질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세대교체의 필요성이다. KIA는 잠재력이 무궁한 신진급 야수들이 많은 구단이다. 지난 몇 년 이종범의 현역 활약으로 이종범을 비롯한 베테랑급 선수들의 세대교체를 하지 못했다. 이종범의 은퇴는 그 뇌관으로 작용, 향후 일어날 세대교체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사사로운 선수와 감독 간의 정에 매몰되지 않고 팀을 위한 대의를 택한다는 점. 그야말로 냉철한 승부사 기질이 필드 외에서도 발휘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광주일고 직계 후배인 동시에 해태 왕조의 영욕을 함께 했던 동료라는 사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검투사적 면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런 야구관은 자신의 야구 스승인 호시노 센이치(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의 주니치 시절 직접 체험한 바 있다. 선동열 감독 자신도 주니치 선수 시절 호시노 감독의 냉철한 선수 관리의 피해자 중 하나다. 호시노 감독은 한국의 국보였던 그의 2군행을 스스럼없이 지시하고 중간계투로 강등시키곤 했다. 명백한 실력이 우선주의다. 당연히 레전드 스타의 이름값은 선수기용에 서 후순위라는 게 선동열 감독의 선수기용 지론이다.

SUN과 이종범 '모두 피해자'- 원만한 해결점 찾아야

선동열 감독은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한 성역을 건드리는 초강수를 뒀다. 이종범 역시 은퇴선언이라는 자존심으로 맞섰다. 팬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 나름의 논리는 수긍이 가지만 접근법과 섬세함은 부족했다. 보다 더 긴 시간을 두고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부드럽게 접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시즌을 앞둔 상황에서 터진 파열음은 KIA를 이끌어야 하는 선동열 감독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진 못한다. 선동열 감독의 냉철한 판단에 은퇴선언으로 정면 대응한 앞세운 이종범 모두 팬들에게 큰 상처만 남겼다.

전설이 물러날 땐 그에 맞는 예와 대우를 해주는 게 맞다. 한국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나 NPB에 비해 전통적으로 구단이나 감독들의 레전드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상처받은 이종범 역시 마음을 추스르고 팬들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이종범 자신만 아픈 게 아니다. 지켜보는 팬들은 더 아프다. 20년 간 지지해준 팬들을 위로할 은퇴경기와 야구를 지배한 천재의 작별을 준비하는 여유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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