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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대장암 말기’ 세계적 바이올린 제작자 재일동포 진창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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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인 재일동포 진창현(83)씨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진씨는 세계에서 감독 및 검사 없이 바이올린을 제작할 수 있는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 가운데 한 명이다. 진씨가 제작한 바이올린 한 대 값은 150만엔(약 2140만원)을 호가한다. 정경화를 비롯해 헨리크 셰링, 아이작 스턴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명연주자들이 진씨의 고객이다.
병세 급속 악화… 손쓸 수 없는 상황

▲ 진창현씨

지난 3일 도쿄도 조후시 자택에서 만난 진씨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다가 가족들과 의사, 간호사가 흔들어 깨우면 겨우 눈을 뜰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지난 2월 26일 병원에서 갑자기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진씨는 이후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돼 지금은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고국의 기자가 집에까지 찾아왔다는 부인 이남이(72)씨의 귓속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들은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 초점 없는 시선이었지만 기자와 눈을 마주치려 애써 힘쓰는 것 같았다. 기자가 찾아오기 며칠 전 “바이올린 제작을 못해 참 슬프다.”며 어렵게 얘기한 게 마지막 의사표현이었다는 게 이씨의 전언이다.

●끈질긴 日 귀화 요구 끝까지 뿌리쳐

침실이 놓인 거실 창가에는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경북 김천 출신인 그는 열네 살 때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인이 존경하는 세계적인 마스터 메이커가 됐지만 아직도 모국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진씨는 세계적 명성을 얻자 일본인들로부터 끈질기게 국적 변경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본인으로 귀화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인 이씨는 “원점을 잊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게 남편의 지론이었다.”며 “귀화는 낳아 주고 길러 준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두 아들과 딸에게도 늘 강조했다.”고 말했다. 진씨의 큰아들 창호(50)씨는 바이올린 제작을, 둘째 아들 창룡(46)씨는 현악기에 사용하는 현을 제작하는 등 가업을 물려받았다.

▲ 2009년 10월 건강했을 당시 도쿄 센가와의 40년 된 작업실에서 일하는 진창현씨.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평생 스트라디바리우스 신비에 도전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본인 교사를 만나 바이올린 연주법을 배운 진씨는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한동안 바이올린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미군 병사들을 태우는 인력거를 끌거나 분뇨 수레를 끌면서 야간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에도 항만노역, 토목인부 등을 전전하며 메이지대학까지 마쳤다. 하지만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교직에 몸담을 수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달랠 길 없던 그는 그 무렵 우연히 바이올린의 최고 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에 대한 강연을 듣고 인생항로를 바꿨다. 20세기 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에 도전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진씨는 1976년 미국바이올린제작자협회가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음향과 세공으로 나누어 총 6개 종목에 걸쳐 개최한 콩쿠르에서 5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받아 현존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명성을 얻었다.

●한국인 첫 日 영어교과서에 실려

그의 삶은 일본에서 책과 만화, TV드라마로 만들어졌다. 2008년에는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일본 고교 2학년 영어교과서(산유샤(三友社) 간행 ‘코스모스(COSMOS) Ⅱ’)에 ‘바이올린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12쪽에 걸쳐 소개됐다. 한국 정부로부터 일반인의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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