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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지만 살아있는 고양이' 증명한 두 남자, 노벨물리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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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 가능성 제시한 佛 아로슈·美 와인랜드 수상]
'슈뢰더 고양이' 실험으로 구현 - 눈에 안 보이는 미시 세계에선
모든 입자가 파동성 가져… 하나가 동시에 여러곳에 존재
해킹 절대 불가능한 컴퓨터, 100배 정확한 시계 개발 가능

양자컴퓨터의 기본 원리를 제공한 이온덫(ion trap) 실험장치. /미국 조지아공대 제공
상자 속에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살아 있을까, 죽었을까. 과학자들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微視) 세계에서는 고양이의 상태는 살아 있으면서도 죽었을 수 있다고 본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상태를 실제로 구현해 세계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꿀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제시한 미국의 데이비드 와인랜드와 프랑스의 세르주 아로슈에게 돌아갔다.

'죽었으면서도 살아있는 기묘한 고양이'의 개념은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슈뢰딩거가 제안했다. 과학자들은 미시 세계에서는 우리가 아는 고전 물리학이 아니라 양자역학(量子力學)이 적용된다고 본다.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에서는 모든 입자(粒子)가 파동성(波動性)을 갖고 있고, 입자가 한 시점에 한 위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운동 공간 내에 퍼져 있으므로 하나가 동시에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미국 표준연구소의 와인랜드와 프랑스 에콜 노르말(고등사범대학)의 아로슈는 1980년대 중반 전기를 띤 이온이나 광자(光子·빛 알갱이)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실제로 구현했다.

와인랜드는 베릴륨 원자에서 전자 하나를 떼어내 (+)전기의 이온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레이저를 가해 에너지가 바닥 상태도 아니고 들뜬 상태도 아닌, 중첩된 상태를 만들었다.

아로슈는 이와 달리 광자를 한 곳에 가둬놓고 도넛 모양의 원자를 집어넣어 광자의 상태에 변화를 줬다. 박사과정에서 아로슈의 제자였던 제원호 서울대 교수는 "광자와 원자 사이에 중첩 상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실험 장치는 두 가지 상태가 중첩된 이온을 가뒀다고 해서 '이온 덫'이라고 한다.

세르주 아로슈(사진 왼쪽), 데이비드 와인랜드.

이들의 연구는 곧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는 전자가 없고 있음을 0 또는 1, 즉 1비트로 표현한다. 이에 비해 양자컴퓨터의 비트는 0 상태와 1 상태가 중첩된 '큐비트(qbit)'로 불린다. 따라서 일반 컴퓨터는 2비트이면 00, 01, 10, 11 등 네 가지 중 하나가 되지만, 2큐비트는 네 가지가 동시에 다 가능하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교수는 "큐비트 300개가 있으면 2의 300제곱이라는, 우주의 모든 원자 수보다 많은 상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컴퓨터로 더 복잡한 계산을 더 빨리 하려면 컴퓨터를 병렬로 연결하는데, 양자컴퓨터는 그렇게 하면 2의 '컴퓨터 수' 제곱으로 컴퓨터 능력이 늘어난다.

노벨상을 발표한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이번 세기에 양자컴퓨터가 현실화되면 지난 세기 디지털 컴퓨터가 일상생활을 바꾼 것처럼 획기적으로 우리 삶을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양자컴퓨터는 현재 연구 단계다. 실용화 가능성이 큰 분야는 양자 암호다. 암호를 양자 상태로 보내면 누가 엿보는 순간 다른 상태로 변해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양자 암호를 수백㎞까지 전송하는 데 성공한 상태다. SK텔레콤은 올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이온 덫 개념을 이용한 양자 암호 중계기를 개발 중이다.

두 교수의 연구는 지금보다 100배나 정확한 시계의 가능성도 열었다. 원래 시간은 지구의 공전 속도를 기준으로 했다가 1967년부터는 세슘 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 시간을 1초로 정의했다. 세슘 원자 시계는 30만년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다. 노벨 재단은 "두 수상자의 연구를 원자 시계에 적용하면 137억년 전 빅뱅(Big Bang)으로 우주가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생기는 오차가 단 5초뿐인 '양자 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상금은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1000만크로네(약 17억원)였으나, 금융 위기 때문에 올해에는 800만크로네(약 13억원)로 줄었다. 두 사람은 이를 나눠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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