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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는 난리도 아니다. 현지에 있는 지인은 "육지에서 올림픽 유치했을 때를 방불케하는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라고 전해 왔다. 어제 새벽(현지시간 11일 저녁)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뉴세븐원더스재단(홈페이지: www.new7wonders.com)이 '세계 7대 자연경관(New 7 wonders of nature)'을 발표하고부터다.
경제 파급효과 1조? 글쎄
제주도가, 아마존(브라질), 하롱 베이(베트남), 이구아수 폭포(브라질ㆍ아르헨티나), 코모도 국립공원(인도네시아),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강(필리핀), 테이블 마운틴(남아공)<이상 알파벳 순>과 함께 당당 '세계 7대 새 경관'에 오른 것이다. 이로써 제주도는 유네스코 선정 세계자연유산 등재, 세계지질공원 인증,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등 유네스코 자연환경 분야 3관왕에 이어 또 하나의 왕관을 쓰게 됐다. 그러니 제주인들이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를 계기로 제주 경제가 성장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적 으로 인지도가 높아져 관광객이 폭증하고 이에 따른 막대한 경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는 거다. 제주발전연구원은 외국인 관광객이 최대 73.6%, 내국인은 8.5% 늘어나, 연간 6,400억 원에서 1조3,000억 원의 경제 파급 효과를 볼 것으로 추산했다.
문제는 그 같은 전망이 환상으로 그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번 7대 경관 선정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후진성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사기당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점점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전망의 환상성. 도대체 '세계 7대 경관'이라는 레이블(label)이 제주도의 명성을 한 단계 높여줄 거라는 기대 자체가 황당하고 뜬구름 잡기에 불과하다.
실제로 '새 7대 경관' 발표 직후 각국 언론이 보여준 반응은 '싸늘'하다. 뉴욕타임스 등 유력매체들은 이 기사를 전혀 다루지 않았고, 영국 가디언, 브라질 '오 글로보' 등도 단신 처리했다. 누가 물어봤냐고(So what)! 그런데 7대 경관에 선정됐으니 세계인들이 쇄도할 거라고? 하나의 야무진 꿈이라고 해두자.
ARS누르기로 제주 공복(公僕)들 지문 증발
우선 이번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을 가장 해친 국가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도 차원이 아니라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라는 이름의 거국 조직을 결성, 전직 총리를 '가오마담(얼굴마담)'으로 내세워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여기에 국내외 저명인사, 연예인들을 홍보대사로, 대학생 등을 서포터즈로 선정, 우물안 세몰이에 나섰다.
캠페인에 동원된 면면. MB 부부, 축구선수 박지성, 프로골퍼 최경주, 한국계 미식축구선수 하인스 워드,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오페라 가수 폴 포츠. 그 외 전국 지자체, 경제계, 종교계 인사, 전 국민에 더해 재외동포까지.
그 중 압권은 7대 경관 선정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전화걸기. 일국의 대통령까지 나서 스스로 시범까지 보이면서, 국민들에게 1통에 1,500원 하는 ARS 거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고 강요했다. 우매한 백성들 전화기로 지구촌 융단 폭격. 지난 5월 얼떨결에 나도 했다. 001-1588-7715로 전화 걸어 언어선택 번호를 누르고, 제주도 코드 7715를 입력했다.
▲ 제주도의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전국민적인 ARS 참여 캠페인을 벌였다. ⓒ프레시안 |
그것까진 봐줄 수 있다. 정부와 제주도는, 7대 경관 선정에 근거가 되는 ARS전화걸기에 회수제한이 없음을 악용, 무제한 전화걸기를 강행한다. 제주도 소속 공무원 중 주니어의 경우 양 엄지 지문이, 시니어의 경우 검지 지문이 없어진 사람 부지기수란다. 지난 몇 달, 하루 최소 300 통의 ARS를 걸어야 한다는 지시가 위로부터 떨어졌기 때문.
하루 배당 누르기 실적이 못 미치면 자아비판까지 했다고 한다. 당근, 본업은 뒷전. 환경부가 보다 못해 "왜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하느냐"고 은밀히 질타했지만, 제주 쪽 오불관언. 이달 초 환경부 고위당국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칠레 바첼렛 거부, MB 촐싹
참고로 2007년 이번 행사를 주최한 재단이 '신 7대 불가사의(New 7 wonders)' 선정을 추진할 당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그 때 각국이 선정에 목을 매는 바람에 경쟁이 과열되자, 당시 칠레 대통령 미셸 바첼렛은 '신 7대 불가사의' 유력한 후보였던 이스터섬의 거대 화강암 모아이석상과 관련해서 "그 누구도 이스터 섬의 경이로움을 알기 위해 투표 따위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라고 선언한다. 독재에 항거한 의사 출신 여성 대통령의 4년 전 의연함과, "경제를 잘 안다"는 어느 나라 대통령의 촐싹거림, 상당히 대조적이다.
선진국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나라라면 금도(襟度)를 지켰어야 했다. 아무리 왕관이 탐난다 해도, 냄비처럼 거국 조직을 만드는 건 삼갔어야 했다. 중복 투표가 가능하다고 해도 1인 1표에 머물러야 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가 선진국을 보증하는 수표가 아니라, 선진적 언행을 보이는 게 선진국의 징표다.
New7wonders 재단 후보국들에 거액 요구 추문
뭐, 그것까지도 일단 '왕관'에 눈이 멀어 저지른 일탈이라 치자. 정말 중요한 건, 제주에 왕관을 안긴 주체의 정체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다는 이 단체는 비영리기관이라는 스스로의 주장과 달리 홈페이지 이름(http://world.n7w.com)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명백한 영리기관이다. 그것도 남의 사무실 한 귀퉁이에 책상만 놓고 있는 정체불명의 기관이다. 유엔협력사무국은 4월, 이 단체와 아무 협력 관계가 없음을 공지한 바 있다.
▲ 뉴세븐원더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유엔사무국 공문 |
지난 5월 18일, 몰디브 문화예술부 장관 토이브 모하메드(Thoyyib Mohamed)는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금액을 요구해왔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철수하겠다"고 선언한다.
세수의 90%가 관광수입에서 나오는 인구 38만의 소국이 이를 거부할 정도면 화가 나도 단단히 났다는 뜻. 미니반뉴스가 이날 몰디브 미화 50만 달러짜리 청구서 받고 7대경관 응모 철회' 제하의 기사에서 폭로한 세븐원더스재단의 추악한 상술은 다음과 같다.
'몰디브 정부는 2009년초 미화 199 달러를 내고 경선에 참여했다. 당시 작성한 계약서 원본에는 다른 추가 비용들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몰디브가 7대자연경관 최종후보지에 선정되자, 뉴세븐원더스재단의 '상업 활동'을 담당한다는 뉴오픈월드 코퍼레이션(NOWC)는 추가 요금과 비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스폰서쉽' 비용으로, 35만 달러의 '플래티넘'과 21만 달러의 '투골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해왔다.
뉴세븐원더스 요원의 '월드투어' 자금지원도 요구했다. 방문비, 대형 에어벌룬 여행비, 항공료, 기자회견 비용, 숙박비, 의사소통 비용 등 총 50만 달러가 소요되는 비용의 부담을 요구했다. NOWC는 심지어 통신회사인 '디라구(Dhiraagu)' 측에 전화투표 주관사 자격의 댓가로 미화 100만 달러(몰디브 국민 1인당 3 달러 부담분)를 요구했고, 통신회사가 난색을 표하자 절반인 50만 달러로 낙찰을 보았다.
몰디브 정부는 돈도 돈이지만, 7대 경관의 선정 불투명성 떄문에 철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7대 경관 선정을 명백한 사기(scam)로 규정지었다. 그러니까 뉴세븐원더스는 자동 사기꾼(scammer). 그나마 다행인 건 몰디브 정부가 철회 전까지 이 캠페인에 투자한 돈이 1만2,000 달러(한화 약 1500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
철회 선언 직후 모하메드 장관은 "몰디브의 아름다움을 입증하기 위해서 7대경관 타이틀을 돈 주고 살 필요도 없으며, 그 누구도 이런 데 돈을 낭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4년 전 미셸 바첼렛이 말했던 내용과 판박이. 그는 또 "몰디브의 이런 결정이 국제 미디어에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재단은 인도네시아에도 마수를 뻗쳤다. 지난 3월, 인도네시아 정부에 개최비용으로 상식을 벗어난 금액을 요구, 인도네시아를 분노케 했다. 급기야 8월 16일, 인도네시아가 뉴세븐원더스에 대한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코모도 국립공원에 대한 후보지 철회를 요구했다. 그런 강경자세가 영향을 미쳤는지 어쨌는지 코모도는 7대 경관에 선정됐다.
대한민국, 국제사기꾼 봉 안됐기를
우리나라에도 재단 관계자들이 왔었다. 구체적인 내막을 파악하지 못해 단정하기 이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성으로 미뤄 과공비례(過恭非禮)일 정도로 엄청난 대접을 했다는 소문. 제발 뒷돈(kickback)이나 건네지 않았기를 신께 기도한다.
이번에 강력한 후보였던 갈라파고스 군도(에콰도르), 마터호른(스위스), 에어즈락(호주) 등이 맥없이 탈락한 것도 의문을 증폭시키는 요소.
▲왼쪽부터 갈라파고스 군도, 마터호른, 어어즈락 |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7대 경관 선정을 추진하고 있는 뉴세븐워더스의 정체를 좀 더 파헤쳐보자. 이 재단은 2001년 스위스 출신 캐나다인인 버나드 웨버(Bernard Weber)가 비영리 재단을 표방하며 창설한 단체다. 앞서 지적처럼, 스위스 제네바의 사무실 한 귀퉁이에 본부를 둔 이 단체는 '우리의 유산은 우리의 미래(Our heritage is our future!)'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세계의 유적을 관리, 보존하는데 존립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재단의 첫 상품(?)은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1999~2007년 전 세계 1억 명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투표한 결과를 종합해 선정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때도 물의가 적지 않았다. 2007년 7월 LA타임스 기자 트레이시 윌킨슨은 "인기 투표에 의한 신 7대 불가사의 선정(By popular vote, the 'New 7 Wonders' named)'이란 기사에서 "중복투표에 대한 제재가 전혀 없고 인구가 많은 중국 등에서 몰표를 행사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근민, WCC 개최와 강정(江汀) 문제나 신경써라"
지금은 '세계 7대도시(New 7 wonders cities)'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단체의 세 번째 사업인 이 프로젝트는 연말까지 실시되며, 결과는 내년 1월1일 공개된다. 그 밖에도 '꼭 가야할 7대 아시아 관광지' '필리핀의 최고 여배우 7인'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개 7마리' 등 설립 취지와 동떨어진 이벤트가 많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화끈한 여자'를 뽑는 이벤트도 진행한 바 있다.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업 아이템들.
이 단체는 기부금 및 판권 수익금으로 운영되고,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의 50%를 문화 다양성을 위해 전 세계 유적의 고증 및 문화, 자연유산 보존에 사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체적 모호성과 행적상의 비리 의혹 등으로 공신력 면에서 의심의 눈총을 받아 왔다. 게다가 최근들어 드러난 바에 따르면, 명백한 영리단체다.
그런 '듣보잡 단체'의 농간에 일희일비하다가 급기야 그 장단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추는 모양이라니!
제주는 지금 그런 것에 현혹되거나 부화뇌동할 시간이 없다. 아주 막중한 사안 두 가지가 어깨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내년 9월 개최될 제5차 세계자연보전연맹총회(WCC: World Conservation Congress) 준비와 강정기지를 둘러싼 갈등 해소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안은 안보와 환경, 그리고 천혜의 보물섬 제주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과제다. 제주지사 우근민, 정신 차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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