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하는 인도 뉴델리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사는 주부 라디카 칸와(28)씨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교통인 오토 릭샤(오토바이 삼륜 택시)를 이제는 타지 않는다. 칸와씨는 "두 살 된 딸과 함께 시내를 이동하기엔 문이 없어 위험한 데다 승차감이 나쁜 오토 릭샤는 내키지 않는다"며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택시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인도판 '카카오 택시'인 '올라캡스(Ola Cabs)'를 이용한다. 어플을 실행하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택시의 번호판과 기사 정보가 화면에 뜨면서 차량이 5~10분 안에 도착한다.
지난 2011년 인도의 25세 엔지니어 바비시 아가왈이 설립한 올라캡스는 차량 공유서비스 업체 우버를 압도하며 인도 택시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35만명이 넘는 운전자를 확보해 인도 102개 도시에서 승객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이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이 발 빠르게 투자했다. 소프트뱅크는 2014년 올라캡스에 2억1000만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작년에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4억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만 7회에 걸쳐 총 11억8000만달러 투자금을 유치한 올라캡스의 현재 기업 가치는 50억달러(약 6조원)에 이른다.
인도 스마트폰 사용자 1억3000만명, 스타트업 열풍의 근원
인도소프트웨어개발자협회(NASSCOM)는 "인도에만 4200개가 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있고 지난해 1200개 스타트업이 생겨났다"며 "작년에만 50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35세 이하 창업자가 전체의 72%를 차지하는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스타트업 국가다.
이런 분위기 속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16일 뉴델리 컨벤션센터 '비기안 바반'에서 스타트업 창업자, 벤처 캐피털리스트 등 1000여명 앞에서 '스타트업 인디아' 출범식을 열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차량 공유서비스업체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 등 해외 '큰손'들도 함께했다. 모디 총리는 이 자리에서 '창업 등록 하루 완료' '신생 업체 3년간 소득세·세무조사 면제 혜택' 등 파격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냈다. 소프트뱅크는 10년간 1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철도역과 마을에 인터넷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스마트폰 사용자 2018년 5억명
모바일 서비스·전자상거래 등
작년만 1200개 스타트업 생겨
손정의 등 외국인 투자 쇄도
9억5000만명에 이르는 인도 휴대전화 사용 인구 가운데 스마트폰 사용자는 1억3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중국·미국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다. 2018년 스마트폰 사용 인구는 5억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스마트폰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중산층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9억명 이상의 휴대폰 사용자를 잠재고객으로 한 모바일 서비스 수요가 인도의 스타트업 열풍을 이끌고 있다"면서 "특히 인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모바일 커머스 사용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매년 30%씩 성장해 2014년 160억달러에서 2019년 60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보스턴 컨설팅은 전망했다.
미국 벤처캐피털 전문 조사기관 CB인사이츠가 발표한 전 세계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어선 비상장 스타트업을 이르는 말) 152개 기업 가운데 인도 기업은 7개였다. 대부분 전자상거래 업체다.
인도 1위 전자상거래 업체 플립카트(Flipkart)가 기업 가치 150억달러로 1위를 기록했고, 올라캡스(50억달러)에 이어 전자상거래 업체 스냅딜(snapdeal·25억달러)이 이름을 올렸다. 스냅딜이 지난해 중국 알리바바와 대만 폭스콘으로부터 5억달러를 유치하는 등 인도 토종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투자 유치 소식은 끊이질 않는다. 미국 업체 아마존(Amazon) 역시 지난해 20억달러 투자 공세를 펼치며 업계 3위에 올랐다.
'세계 IT 아웃소싱 기지'에서 '스타트업 천국'으로
인도는 1990년대 초 당시 재무부 장관이던 만모한 싱 전 총리가 정책적으로 소프트웨어 인력을 육성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한 IT(정보기술) 아웃소싱을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의 저렴한 IT 인력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호황을 맞았다. 2012년부터 IT 아웃소싱 세계 점유율 50%를 넘기면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이제 인도 IT 산업은 전 세계 IT 시장의 12.3%를 차지하는 140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9.5%를 차지하는 수치다. 250달러로 출발해 시가총액 210억달러가 넘는 세계적인 아웃소싱업체 '인포시스'를 키운 창업자 난다나 닐레카니는 "인도가 경제 성장을 비롯한 건강, 교육, 일자리 등 문제를 IT 없이 해결할 순 없을 것"이라며 "(IT 업체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990년대 IT 아웃소싱으로 도약한 인도가 스타트업 열풍을 통해 제2의 IT 혁명을 이루려 한다"고 보도했다.
열악한 인프라는 해결해야 할 과제
온라인 결제서비스 업체 페이티엠(PayTM) 창업자 비자이 샤르마는 파이낸셜 타임스(FT) 인터뷰에서 "인도에선 중국보다 전자상거래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열악한 인프라가 여전히 골칫거리다. 미국과 중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각각 87%, 50%인 데 반해 인도는 현저히 낮다. 4억명의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2000만명 정도만 속도가 빠른 광대역 회선을 사용하고 있다. 전체 인구 85%가 거주하는 중소형 도시는 IT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인터넷 사용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는 항공 화물이나 택배 등 물류 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해 배송비가 비싸다. 주마다 다른 세금 체계나 규제 역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디스카운트 전쟁'을 벌이며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 수익을 내지 못해 운영비를 투자금으로 충당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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