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전라북도 정읍시 |
생년월일 | 1982년 7월 15일(1982-07-15) (29세) |
신장 | 178 cm |
체중 | 92 kg |
선수 정보 |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수비 위치 | 투수 |
프로 입단 연도 | 2005년 |
드래프트 순위 | 2005년 2차 1순위(삼성 라이온즈) |
첫 출장 | KBO / 2005년 4월 3일 대구 대 롯데전 |
획득 타이틀 |
|
연봉 | 2억 4천만 원 (2011년) |
경력 | |
| |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 |
올림픽 | 2008 베이징 |
WBC | 2006년, 2009년 |
아시안게임 | 2006 도하 |
오승환(呉昇桓, 1982년 7월 15일 ~ )은 한국 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의해 2차 1순위(전체 5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고, 주 보직은 마무리 투수이다. 2005년 한국 시리즈에서 3경기에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 11탈삼진, 평균 자책점 0의 완벽한 마무리 능력을 보이며 한국 시리즈 MVP에 올랐다. 2006년 10월 1일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47세이브를 기록,[1]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인 한신 타이거스 소속의 후지카와 규지와 주니치 드래곤즈의 이와세 히토키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던 아시아 최다 세이브인 46세이브를 경신하였다. 2007년 9월 1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개인 통산 최단 기간 100세이브를 올렸다. 프로 데뷔 이후 3년 180경기 만이었다. 투구를 할 때 얼굴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하여 '돌부처'라는 별명이 있다.[2]
목차[숨기기] |
[편집] 고등학교 시절
서울도신초등학교와 우신중학교를 거쳐 한서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이름이 나 메이저 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도 얻었지만,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는 악재를 겪게 된다. 이후 포지션을 투수에서 야수로 바꾸고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는 경기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팀 내에서 주로 1번 타자와 외야수로 활동한다.
[편집] 단국대학교 시절
전국 대회에서 타자로서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팔꿈치 부상 경력도 있어서 프로 팀과 대학 팀의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다. 당시 단국대학교 강문길 감독은 고등학교 초기 오승환 선수가 뛰어난 투수였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투수로서의 자질을 인정하여 단국대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유한다.
[편집] 프로 야구 선수 시절
[편집] 2005년 신인 드래프트
2005년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 순위는 전체 5순위였다. 삼성 라이온즈보다 상위 지명 순위를 가진 네 팀은 모두 고졸 선수를 지명했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단국대학교 졸업 예정인 오승환을 지명했다. 경기고등학교 때부터 잘 알려진 선수도 아니었고, 단국대학교 시절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는 등 2번의 수술 경력이 있는 선수를 지명한다는 것은 다소 모험적인 행위였다. 이러한 삼성의 생각과는 달리 오승환은 자신은 삼성에서 제시한 계약금보다 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투수였다. 결국 계약금 인상에는 실패했지만 2005년 시즌 개막 후 오승환 선수는 중간계투진으로 활약하다가 원래 마무리 투수였던 권오준 선수의 부진으로 권오준 선수와 역할을 바꾸게 된다. 이후 신인답지 않게 마무리 투수로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그 해 신인왕과 2005년 한국 시리즈 MVP까지 차지하였다. 신인왕과 한국 시리즈 MVP를 동시에 차지한 경우는 오승환 선수가 유일하다. 대신 2005년에는 오승환이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를 맡게 되어 두산 베어스 투수 정재훈이 구원 1위를 차지했고, 오승환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구원 1위를 차지했다.
[편집] 프로 데뷔 후 첫 피만루홈런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LG 트윈스와의 연속 경기 2차전 7회말 주자 만루 상황에서 1번 타자 박용택과의 매치업 도중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에 던진 공이 홈런이 되어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만루 홈런을 헌납했다. 이 상황 이후 마운드에 글러브를 벗어 집어던지는 모습을 보여 '돌부처' 라는 자신의 별명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홈런으로 LG 트윈스가 8-1로 승리했다.[3]
[편집] 2009년 어깨 부상
2005년 프로 데뷔 이후부터 그는 삼성 라이온즈의 부동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여 왔고, 2005 시즌과 2006 시즌을 제패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그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차출되었다. 세 시즌 연속(2006~2008)으로 세이브 부문 1위를 차지할 만큼 꾸준한 성적을 올렸으나, 승리하는 경기마다 등판하는 데에 따른 과부하로 2008 시즌부터 구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2009 시즌이 되면서 어깨 부상을 당하여 시즌을 마감했는데, 프로 데뷔 이후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그를 대신하여 권혁, 정현욱 등이 번갈아 가며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4] 이 영향으로 2009년부터 2년간의 세이브왕을 이용찬과 존 애킨스에게 내주어야 했다.
[편집] 2010년 시즌 부진과 부상
2010년 어깨 재활을 마치고 다시 1군에 복귀했다. 2010년 3월 27일, LG 트윈스와의 정규 시즌 개막전에서 최고구속 147km의 위력적인 공을 뿌리며 호투했지만 세이브까지 원 스트라이크를 남기고 9회초 5:4 상황에서 LG의 이진영에게 동점 홈런을 맞아 첫 경기부터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역전패했다. 하지만 바로 며칠 뒤 열린 한화전에서 8회말 2사부터 올라와 4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면서 자신이 아직 건재하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4월 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강정호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며 또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2010년 4월 30일, 대전 구장 한화 이글스 경기에서 9회 마무리로 등판했던 오승환은 부상으로 인해 자진 강판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자진 강판의 사유가 허벅지 가래톳 부상이었다.
2010년 6월 16일, 사직 구장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9회말 2아웃에 마무리로 등판했으나, 롯데 중심타자 이대호에게 홈런을 맞으면서 또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결국, 시즌 중순에 팔꿈치 부상으로 이어져 또다시 부상에 시달리게 되었고,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게 되어 4세이브만 기록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 시리즈 1차전에 교체가 되었으나 볼넷과 안타를 줘서 2:4로 만들어 1차전에서 패배를 하는 원인이 되었다.
[편집] 2011년 부활
2011년 많은 휴식과 훈련을 한 오승환은 그 해 스프링 캠프에서 이례적으로 강속구인 147km를 찍었다. 그후 시범경기에서 5경기 5이닝 2세이브 6탈삼진 방어율 0.00의 성적에, 최고구속 148km로 부활을 알렸다. 이후 첫 정규리그 등판에서 1.1이닝 2볼넷 2탈삼진을 잡으며 첫 세이브를 올렸다. 이듬해 5월 7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최소 경기(12경기) 10세이브에 타이기록을 세웠다. 5월 20일 두산전에서 손시헌에게 초구 솔로홈런을 맞으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지만 무사 1,2루에서 신명철의 끝내기 안타로 그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8월 2일 넥센전에서 삼진 1개 등을 잡으며 역대 최소경기(37경기) 30세이브 타이기록을 세웠다.(최초 기록보유자 1994년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8월 12일 기아전에서는 최연소(만 29세 28일), 최소경기(333경기) 통산 200세이브를 기록하였으며 이 기록은 최소경기 200세이브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5]8월 27일 두산전에서 16경기 연속세이브를 달성하며 종전 2006년 두산 마무리 정재훈이 가지고 있던 15경기 연속세이브기록을 깨며 한국 신기록을 달성했다. 9월 10일 LG전에서 1이닝 1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역대 최소경기(47경기) 40세이브를 달성했다.10월 1일 SK전에서 마침내 자신이 가지고있던 아시아 세이브 타이기록(47세이브)을 달성했다. 오승환은 2011 정규시즌 두산(3실점, 1블론승), LG(1실점)을 제외한 5구단에게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또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9회 3탈삼진 포함하여 2이닝을 막았고. 한국시리즈 7차전 8회 2탈삼진 4이닝 잡으면 한국시리즈에서는 KS 통산 최다세이브 6세이브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1년 한국 시리즈에서 3세이브를 올리면서 2011년 한국 시리즈 MVP에 올랐다
2011년 시즌에만 오승환은 최소경기 10세이브(12경기), 20세이브(26경기), 30세이브(37경기), 40세이브(47경기)를 세웠고 역대 최소경기(333경기)· 최연소(만 29세 28일)200세이브를 달성과 25경기 연속 세이브(연속 경기 세이브 아시아 신기록), KBO 최초의 무패 구원왕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며 올시즌에만 세이브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깼다. 또 역대 세이브 1,2위간의 최대격차기록을 경신했으며 (2위 롯데 김사율과의 격차 27세이브)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는 KS 통산 최다세이브인 6세이브(종전기록 선동열,조용준 4세이브)를 달성했다.
[편집] 구종
현재 속구의 최고 구속은 시속 154km이고 평균 구속은 시속 146~148km이다. 직구의 볼 끝이 좋아서 약간 떠오르는 듯한 라이징 패스트볼 형의 모습을 보인다.(회전수에 비례해 확인된 화는 뜨려는 성질을 보인다).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커브, 슬로우속구 ,체인지업를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구종으로 뛰어난 피칭을 보일 수 있던 이유는 속구의 구위이다. 투구 스타일은 배트에 맞아도 범타가 될 만큼 좋은 속구를 가지고 제구력 또한 갖추고 있어서 초구부터 유리한 볼 카운트를 잡고 나간다. 또한 2008년 전지훈련에는 체인지업을 배웠고, 타자들이 타이밍 포착을 어렵게 하기 위해, 2008년 시즌초반 슬로우포심(128km~136km)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9년 전지훈련 때는 구속증가를 위해 평소보다 2배 많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소화했고 신인 때와 2006년 최다 세이브 때보다 구속이 2km~4km 증가한 모습을 보였으나, 변화구의 변화가 무뎌지고, 예전 '돌직구'를 던질 때보다 속구 볼끝이 약간 무뎌져서, 홈런을 많이 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 | Wow, the guy he looked like he was throwing 110 mph. (우와, 그 친구 110마일을 던지는것 같았어.)[6] | ” |
하지만 오랜 부상과 부진끝에 2011년 부활하여 '돌직구'로 불리는 150Km에 육박하는 구속과 '돌부처'의 별명을 되찾게 되었다.
[편집] 등장 테마곡
[편집] 선수 경력
- 세계 대학야구선수권대회 한국 국가대표 (2004년)
- 삼성 라이온즈 (2005년 - 현재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국가대표 (2006년)
- 한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 동군 대표 (2006)
-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 대표 (2006)
[편집] 수상 경력
- 2004년: 전국 대학 야구 리그 추계 리그 최우수 선수상
- 2004년: 전국 대학 야구 리그 춘계 리그 우수 투수상
- 2005년: 한국 시리즈 MVP
- 2005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상
- 2005년: 일구회 노력선수상
- 2006년: 일구회 특별기록상
-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구원부문 1위(47세이브, 아시아 신기록)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5대 클래식 모멘트 선정
- 2007년: 한국 프로 야구 구원부문 1위(40세이브)
- 2008년: 한국 프로 야구 구원부문 1위(39세이브)
- 2011년: 한국 프로 야구 구원부문 1위(47세이브, 아시아 타이기록)
[편집] 주요 기록
기록 / 날짜 / 상대팀 / 장소 | ||
---|---|---|
경기 내용 | 종전 기록 | 비고 |
프로 데뷔 / 2005년 4월 3일 / 롯데 / 대구 | ||
1이닝 1탈삼진 무실점 | ||
최소 경기 100세이브 (3시즌, 180경기) / 2007년 9월 18일 / KIA / 대구 | ||
4-1, 8회 2사 2루, 1⅓이닝, 2안타 1실점 | 2005년 조용준, 197경기 | 시즌 37세이브 째, 통산 18승 7패 |
아시아 시즌 최다 세이브 (47세이브) / 2006년 10월 1일 / 현대 / 대구 | ||
5-0, 8회 2사 만루에 등판, 1⅓이닝 무안타 무실점 |
2005년 NBP 주니치 이와세 히토키 (46S) 2007년 NBP 한신 후지카와 규지 (46S) |
시즌 47세이브, 2006년 시즌 세이브 1위 (47세이브), 4승 3패 1.59 |
한국 프로 야구 최초 트리플 10 (10승 10홀 10S) / 2005년 (9월 28일, 6월 23일, 8월 28일) / 10승·10홀 - 대구, 10S - 문학 | ||
10승 : 한화전 3이닝 무안타 무실점 3삼진 10홀 : 현대전 1⅔이닝 무안타 무실점 1삼진 10S : SK전 1⅓이닝 1안타 무실점 1삼진 |
2005년 시즌 99이닝 10승 1패 방어율 1.18 11홀드 16세이브 |
2005년 승률왕 (0.909) |
최연소, 최소 경기 통산 200세이브 / 2011년 8월 11일 / KIA / 대구[8] | ||
8회초 2사 1루 상황에 등판, 1.1이닝 무실점 |
최연소 : 구대성 (37세 11개월 12일) 최소 경기 : 조너선 파펠본 (359경기)[9] |
최연소 : 만 29세 28일 최소 경기 : 333경기 (세계신기록) |
최다 경기 연속 세이브 신기록 / 2011년 8월 27일 / 두산 / 잠실 | ||
연장 11말 등판, 1이닝 무실점 삼자범퇴 |
2006년 두산 정재훈 5월 19일 ~ 7월 2일 (15경기 연속) |
7월 5일 문학 SK전부터 10월 1일 문학 SK전까지 세이브 |
최다 경기 연속 세이브 아시아 신기록 / 2011년 9월 27일 / 두산 / 잠실 | ||
9말 등판,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2탈삼진 | 사사키 가즈히로 (22경기) | 23경기 연속 세이브 |
[편집] 한국 프로 야구 포스트 시즌 기록
[편집] 2008년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삼성 라이온즈 ◄ | 0 | 1 | 0 | 1 | 0 | 0 | 2 | 0 | 0 | 4 | 9 | 0 |
롯데 자이언츠 | 0 | 0 | 1 | 0 | 1 | 0 | 0 | 0 | 1 | 3 | 12 | 0 |
승리투수 : 정현욱 패전투수 : 강영식 세이브 : 오승환 홈런 : 삼성 – 채태인 (손민한을 상대로 4회 1점) |
[편집] 통산 기록
연도 | 소속 | 경 기 |
완 투 |
완 봉 |
승 | 패 | 세 이 브 |
홀 드 |
이닝 | 타자 | 피 안 타 |
피 홈 런 |
4 구 |
사 구 |
탈 삼 진 |
실 점 |
자 책 점 |
승률 | 평균 자책점 |
비고 |
---|---|---|---|---|---|---|---|---|---|---|---|---|---|---|---|---|---|---|---|---|
2005 | 삼성 | 61 | 0 | 0 | 10 | 1 | 16 | 11 | 99.0 | 358 | 46 | 5 | 20 | 0 | 115 | 13 | 13 | 0.909 | 1.18 | 승률 1위/ 탈삼진 5위/ 세이브 6위/ 홀드 9위 |
2006 | 63 | 0 | 0 | 4 | 3 | 47 | 0 | 79.1 | 289 | 43 | 1 | 12 | 1 | 109 | 15 | 14 | 0.571 | 1.59 | 세이브 1위(아시아 신기록)/ 탈삼진 9위 | |
2007 | 60 | 0 | 0 | 4 | 4 | 40 | 0 | 64.1 | 251 | 41 | 6 | 17 | 2 | 69 | 12 | 10 | 0.500 | 1.40 | 세이브 1위 | |
2008 | 57 | 0 | 0 | 1 | 1 | 39 | 0 | 57.2 | 219 | 34 | 2 | 15 | 1 | 51 | 9 | 9 | 0.500 | 1.40 | 세이브 1위 | |
2009 | 35 | 0 | 0 | 2 | 2 | 19 | 0 | 31.2 | 140 | 28 | 7 | 17 | 0 | 51 | 17 | 17 | 0.500 | 4.83 | ||
2010 | 16 | 0 | 0 | 0 | 0 | 4 | 0 | 14.0 | 80 | 13 | 4 | 5 | 0 | 19 | 7 | 7 | 0.000 | 4.50 | ||
2011 | 54 | 0 | 0 | 1 | 0 | 47 | 0 | 57.0 | 204 | 27 | 2 | 11 | 0 | 76 | 4 | 4 | 1.000 | 0.63 | 세이브 1위 (아시아 타이기록)/ 역대 최초의 무패 구원왕 | |
통산 | 7시즌 | 346 | 0 | 0 | 22 | 11 | 212 | 11 | 403.0 | 1521 | 232 | 27 | 97 | 4 | 490 | 77 | 74 | 0.667 | 1.65 | 통산 세이브 역대 3위 |
[편집] 에피소드
-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 가운데 팬이 가장 많은 선수중 하나이다. 2011년 9월 22일 대구 KIA전에서, 삼성 팬들이 오승환의 등판을 바라 상대 타자 나지완을 응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과 그의 아들 이지호 군이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이지호 군이 오승환을 보기위해 이재용 사장과 같이 잠실 야구장에 왔었다.
- 표정 변화가 전혀 없는 선수다. 야구팬들은 오승환이 조금의 미소만 띄어도 '폭소'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승환은 그의 가족중에서 가장 말 잘하고, 잘 웃는다고 한다.
- 그의 직구가 타자들이 전혀 못치는 이유에 여러가지 설이 있었다. 종속설이 있었지만 비슷한 구속의 KIA 투수 한기주와 종속이 비슷하게 나왔고, 방어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LG 투수 레다메스 리즈가 종속이 더 잘 나와서, 종속설은 믿기지 않게 되었다.(종속은 단순히 초속에 비례한다는 사실도 나왔다.) 하지만 KBS의 운동화 프로그램에서 그의 뛰어난 악력(레슬링 선수보다 높은 90kg를 기록했다.)에서 나오는 직구의 회전수(오승환의 포심은 초당 최고 57바퀴로 KBO 투수중에 1위를 기록하였다.) 비례하여 공이 떠오르려 하는 마그누스 효과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투구폼에서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 힘든 폼이라는게 밝혀져서 이후로 "회전수+투구폼" 설이 지지를 받게 되었다.
[편집] 주석
- ↑ 마이데일리 (2006년 10월 1일). 오승환, 세이브 아시아新 "좋은 팀에 있어 기록 가능". 2008년 7월 4일에 확인.
- ↑ 최훈 프로야구 카툰 <자비로우신 부처님>
- ↑ 중앙일보 (2009년 6월 22일). 박용택 만루 대포 오승환 무너뜨렸다. 2009년 6월 22일에 확인.
- ↑ OSEN (2009년 7월 17일). '어깨 부상' 오승환, 1군 제외…선동렬 감독, "두 달 정도 걸릴 듯". 2009년 8월 13일에 확인.
- ↑ 뉴시스 (2011년 8월 12일). <프로야구>삼성, KIA전 4연승 '선두 굳히기'…오승환 최소경기 200세이브. 2011년 8월 12일에 확인.
- ↑ 2006년 WBC 미국과의 경기 기고문
- ↑ 오승환 테마곡 '라젠카 세이브 어스' 결정 《스포츠조선》 2011년 4월 29일
- ↑ 참고로 이 날 경기가 끝나고 대구구장에서는 폭죽 쇼를 하였는데 대구구장 전광판에 폭죽이 붙어 화재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다행이도 인명사고는 없었다.
- ↑ 한국 프로 야구 최소경기 200세이브 종전 기록은 구대성의 437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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