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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헤라클레스를 꿈꾼 코모두스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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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코모두스(Commodus· 161~192, 재위 177~192)는 거대한 제국과 훌륭한 조상들의 위업을 물려받았다. 아버지인 위대한 철인(哲人) 황제 아우렐리우스(121~180, 재위 161~180)는 일찌감치 아들에게 황제 수업을 시켰다. 코모두스는 11세 때부터 전쟁터를 따라다니며 통치자 훈련을 받았고 16세 때 아버지와 함께 공동 황제가 되었다. 2세가 반드시 훌륭한 황제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로마 황제들은 일반적으로 쓸만한 후계자를 양자로 들여 황제직을 세습시켰는데 아우렐리우스가 친아들에게 황제직을 물려준 것은 관행을 깬 파격적인 일이었다.

180년 전장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코모두스는 단독 황제로 등극했다. 초기에 소년 황제는 아버지가 꾸려놓은 충실한 고문단과 함께 무리 없이 통치했다. 그러나 183년 자객이 그를 습격했다. 사건은 친누나 루킬라의 음모로 알려지면서 일단락되었지만 그는 음모의 배후에 더 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두려움은 그를 폭군으로 만들었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코모두스의 재위 기간을 로마제국 몰락의 첫 시작으로 간주한다.

코모두스는 훌륭한 선황제와 자신이 비교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선황제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증오해 그들을 처형했다. 복수가 두려워 처형당한 자들의 측근들마저 죽였다. 주변에는 황제의 귀에 달콤한 말만 속삭이는 간신들만 남았고, 이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젊은 황제는 관능과 오락에 탐닉했고, 힘과 피에 중독되어 갔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된 영웅 헤라클레스처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존재가 되고 싶어했다.

로마 카피톨리니 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흉상은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한 손에는 사과, 한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다. 이들은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재위 기간 중 그는 이렇게 헤라클레스로 분(扮)한 흉상을 전국에 배포해 온 국민의 뇌리에 '헤라클레스 코모두스' 이미지를 심으려고 했다.

그 결과 코모두스는 국가 운영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극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제국은 그의 환락의 놀이터가 되었다.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와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쓰러뜨린 공적으로 신의 반열에 올랐다는 신화에 따라, 코모두스는 노획한 맹수를 로마로 운반해 와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쇼를 연출했다. 물론 황제에게 맹수가 해를 입히기 전에 숨어 있던 병사가 활로 쏘아 죽였다. 코모두스는 직접 검투사가 되어 원형 극장에 등장했다. 본인은 투구와 방패로 무장하고 상대는 커다란 그물과 삼지창만 사용하는 불공정한 경기였다. 언제나 승리는 황제의 몫이었다.

기원후 80년에 건립된 로마의 아름다운 원형 경기장은 늘 피로 흥건하게 물들어 있었고, 이것은 아름다움과 잔혹함, 공포와 쾌락이 양립하는 독특한 로마 문화를 만들었다.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검투사 경기, 범죄자나 전쟁 포로들을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지는 잔혹한 처형을 장대한 볼거리로 만들어서 온 국민이 '적을 괴멸시키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부단히 전쟁을 해야 했던 전쟁 국가 로마의 강력한 힘을 느끼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정치적 불만을 스포츠와 오락으로 해소하는 정책의 선례들이었다.

그러나 천하영웅 헤라클레스가 여자의 계략에 빠져 죽은 것처럼, 코모두스의 말로도 그와 비슷했다. 날이 갈수록 황제의 광기가 더해진다고 느낀 애첩 마르키아는 그날도 소위 '맹수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와인을 권했다. 와인에 든 독약이 온몸에 퍼지자 숨어 있던 레슬링 선수가 나와 그의 목을 졸랐다. 31세의 코모두스, 13년간의 터무니없는 그의 황제 노릇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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