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사

퍼스트 무버 함정에 빠진 애플의 경쟁자들

728x90
반응형

애플(Apple)이 지난 주 신제품 발표회를 통해 모바일 OS 신제품을 대거 공개했다.

아이폰 6S와 아이폰 6S 플러스 발표는 연례행사처럼 예견된 것이었지만, 에르메스를 입은 애플워치, 키보드와 펜이 추가된 대화면 12.9인치 아이패드 프로(iPad Pro), 앱스토어와 시리(Siri)가 제공되는 애플TV는 기존 제품에 비해 충분히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였다.


(이미지 출처: 애플)

그러나 혁신적인 신제품과 기능들 사이에서 필자는 애플 제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독창성보다 이전에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실제로 제품 발표회가 끝난 직후부터 애플 제품이 어떤 것들을 베꼈는지 비교하는 기사들도 많이 올라왔다.

그 동안 애플이 발표하면 그것을 자사 제품에 베껴넣기 위해 혈안이 됐을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부 기업은 반대로 자신들이 이미 발표했던 것들이 애플 제품을 통해 되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신한 경쟁자들

IT 주요 기업들이 애플의 행보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故스티브 잡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아이폰의 대성공부터였다.

스타일러스를 쓴 감압식 PDA 단말기가 스마트폰의 미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애플 아이폰은 손가락을 슥슥 움직여 다양한 기능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세대가 전환되자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이자 트렌드 세터(Trend Setter)인 애플을 따라가려는 수 많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들이 등장했다.


(이미지 출처: 애플)

해당 분야의 선구자(퍼스트 무버)에게서 성공 전략을 베껴 더욱 개선된 제품을 싸게 출시해서 시장을 장악하는 '패스트 팔로워'는 기존 IT 시대에서는 인력과 자본이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이폰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당시 기업들은 아이폰의 디자인과 몇 가지 유저 인터페이스를 베껴서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는데 급급했을 뿐 아이폰 생태계와 새로운 소비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적당한 하드웨어를 만들고 마켓만 열어두면 개발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애플 앱스토어처럼 빵빵하게 채워놓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만 했다.

그 결과 아이폰 대항마를 자부하며 등장했던 모바일 OS들은 전통의 강자부터 신흥 주자까지 줄줄이 아이폰에 패했고, 애플처럼 자체 OS-스마트폰-앱스토어로 구성된 생태계를 만들려는 야망에 불탔던 기업들은 큰 손실을 입거나 아예 관련 사업을 접어야 했다. 오직 플랫폼만 만들고 하드웨어와 업그레이드 부담을 제조사들에게 떠넘긴 구글만 성공했을 뿐이다.

 


(이미지 출처: 애플)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에 이어 태블릿 시장에서 아이패드로 연타석 홈런을 날리자 경쟁자들은 "애플이 만든 제품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버리고 "애플이 만들 법한 제품"을 미리 만들어 애플이 새로운 시장을 장악하기 전에 먼저 선점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로 한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특정 제품이 위치한 시장을 개척하는 것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기존 제품의 디자인과 재료, 하드웨어 부품, 그리고 소프트웨어 기능과 UX(사용자 경험)까지 IT 기업이라면 "애플처럼 생각하고 애플처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애플이 진출할 시장 선점, 과연 효과 있었나?

애플의 새로운 시장 장악을 막기 위해 경쟁사들은 애플이 얽힌 신제품 루머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을 던졌다.


(이미지 출처: 팬택, 삼성전자)

아이폰 5S에 지문인식 센서가 들어간다는 소식에 베가 LTE-A에 지문인식 센서가 들어갔고 애플이 스마트워치를 만들 거라는 루머에 갤럭시 노트3와 갤럭시 기어가 함께 발표됐다. 모두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관련 기능을 공식 지원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그 뿐인가? 아이패드와 맥북 사이, iOS와 Mac용 OS X 사이 어딘가에 모바일 생산성의 미래가 있다고 짐작한 MS와 그 파트너들은 윈도우 8에 수 많은 2-in-1 시제품을 찍어내면서 성공 포인트를 찾으려고 애썼고, 애플과 라이벌 관계를 만들려는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만들 수 있는 모든 화면 크기로 찍어냈다.

 

그러나 경쟁자들은 아직 불모지였던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만한 능력도 배경도 없었다. 단순히 애플이 언젠가 진출할 수도 있다는 위협 때문에 먼저 새로운 시장에 발을 내딛었지만 정작 거기서 어떤 것을 만들고 제공해야 할지 심사숙고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몸만 살짝 뒤척이고 숨만 크게 쉬어도 모두 이슈와 루머가 되는 애플은 새로운 시장에 먼저 몸을 던지지 않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경쟁자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시장에 넘쳐나는 다양한 기기들이 각자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는 동안 '슬로우 빅 팔로워'가 되어 퍼스트 무버가 되려던 경쟁자들이 남긴 신제품과 신기술을 잘 차려진 뷔페처럼 입맛대로 골라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수 많은 실패 끝에 나온 서피스 프로3, 아이패드는 무혈입성

아이패드 프로를 보자. 아이패드 프로 자체는 9.7인치 아이패드 에어 화면을 두 개 이어 붙은 12.9인치 대화면 태블릿이지만 여기에 전용 키보드와 펜 액세서리를 붙여놓으면 영락없이 MS 서피스 프로3와 같은 모습이 된다.


(이미지 출처: 애플)

아이패드 프로에 장착된 스마트 키보드는 아이패드용 스마트 커버에 서피스 프로3 타이프 커버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형태다. 필압과 기울기를 인식하고 배터리를 충전해서 쓰는 애플 펜슬은 엔트리그 기술을 사용한 서피스 펜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MS 관계자들이 애플 발표회에서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해 iOS용 오피스 데모를 시연하는 모습은 낯설지만 꽤 익숙해 보인다. 

 


(이미지 출처: 마이크로소프트)

혹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프로3가 아이패드 프로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영감을 주었기 때문에 결국 서피스 프로3는 성공한 제품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MS는 윈도우 10이 돌아가는 서피스 프로3에 이르기까지 무려 4개의 서피스 모델과 윈도우 운영체제(8/RT/WP7/WP8)를 날려먹은 다음에야 모바일 시장에서 고객들이 노트북 대신 원하는게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서피스프로3 덕분에 아무런 실패도 경험하지 않고 아이패드 프로에 MS의 성공 전략을 고스란히 카피했다.

 

 

삼성-LG가 선보인 카메라 기능을 발전시킨 아이폰 6S

아이폰 6S와 아이폰 6S 플러스는 어떨까? 애플이 아이폰 6S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포스터치와 탭틱 엔진을 바탕으로 하는 3D 터치(Touch) 기능이지만, 새로운 카메라 기능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언급된 '레티나 플래시'와 '라이브 포토'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폰 6S는 전면 카메라로도 후면 카메라처럼 자연스러운 플래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스마트폰 화면을 플래시처럼 사용하는 '레티나 플래시(Retina Flash)' 기능을 추가했는데, 이는 LG전자가 지난 해 초에 선보인 G프로2에서 'LCD 플래시'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기능과 같은 컨셉이다.

움직이는 사진을 찍고 소리를 담는 '라이브 포토(Live Photo)'는 삼성전자가 갤럭시 S4에서 한창 카메라 기능에 열을 올릴 때에 사진에 소리를 녹음하는 '사운드&샷'이나 '애니메이션 포토' 기능을 연상시킨다.

 


(이미지 출처: 애플)

하지만 국내 기업들과 애플의 차이점은 레티나 플래시를 지원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일반 LCD보다 3배 밝아지는 커스텀 디스플레이 칩을 탑재한 하드웨어적인 보완 및 라이브 포토를 아이폰 뿐만 아니라 모든 iOS와 OS X 기기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차원의 지원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애플이 만들기에 가능한 일이다.

 

 

애플TV, 스마트TV 사용법에 대한 인식 변화


(이미지 출처: 애플)

그럼 애플TV는 어떻게 변했나? 아이폰 5S에 들어가는 A8 프로세서와 내부 스토리지를 갖춘 애플TV는 마침내 앱스토어가 추가되었고 음성 입력 기능 '시리(Siri)'를 리모콘(Siri Remote)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물론 TV 제조사들에게 애플TV는 실제로 TV에 연결해야 하는 셋탑박스일 뿐이고 자신들의 스마트TV가 더 많이 팔린다고 말할 것이다. 안드로이드 TV 콘솔을 만든 엔비디아는 애플TV가 출시되자 공식 블로그를 통해 테그라 X1이 탑재되어 게임 성능이 높고 4K 해상도를 지원하는 자사의 쉴드(Shield)가 애플TV를 포함한 다른 비슷한 셋탑 기기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이미지 출처: 애플)

하지만 스마트TV 셋탑이 갖춰야 할 기본이 강력한 게임 성능이나 TV와의 결합일까? 필자가 신제품 발표회에서 애플TV 데모를 보면서 감탄했던 부분은 바로 애플TV 팀 '젠 폴스(Jen Folse)'가 직접 리모콘을 들고 애플TV에서 시리 리모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시리에게 "액션 영화 좀 찾아달라"고 말하고 나열된 결과 중에서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영화"를 골라냈다. 그리고 007 시리즈 가운데 클래식을 좋아한다며 "숀 코넬리"가 주인공으로 나온 시리즈만 선택했다.

지금까지 스마트 기기에 들어가는 음성 인식(명령) 기능은 대부분 단편적인 것으로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내놓는 것으로 작업이 끝나고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만약 구글 음성검색으로 같은 결과를 얻으려면 처음부터 "숀 코넬리가 나온 007 영화"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결과 내 재검색이나 결과값이 다음 명령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확한 목적을 가진 질문이 필요하지만 애플TV에서 시리는 사용자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듯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도와준다. 또한 콘텐츠를 보는 중에도 '자막'이나 '날씨', '운동 경기 결과'도 즉시 보여줄 수 있다.

사실 이런 기능들은 다른 TV 플랫폼에도 기술적으로 구현이 가능한 것들이다. 단지 만드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해봤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iOS로 연결되는 생태계

애플 신제품 발표회에서 소개된 제품은 총 4가지. 애플워치는 기존 제품에서 새로운 컬러와 시계줄만 바뀌었지만 그 안에 돌아가는 watchOS가 2번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됐고, 아이패드 프로와 아이폰 6S도 새로운 iOS 9가 탑재된다. 애플TV 역시 iOS와 비슷하지만 tvOS라는 이름을 달고 TV 기능에 특화된 API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미지 출처: 애플)

하지만 watchOS나 tvOS는 기본적으로 iOS에서 멀리 떨어진 운영체제가 아니다. iOS라는 거대한 나무에서 watchOS나 tvOS 같은 가지들이 뻗어나가고 있는 형태다. iOS를 기반으로 iOS와 연동되기 때문에 iOS 개발자들이 손쉽게 애플워치나 애플TV용 앱을 만들 수 있다. 아이패드가 아이폰용으로 만든 수 많은 iOS 앱들을 바탕으로 시장에 안착했듯이 애플워치는 현재 1만개 이상의 앱이 나왔으며, 애플TV 역시 수 많은 TV 채널 외에도 앱스토어와 애플 뮤직이 들어갔다. 콘텐츠의 양과 질에서 경쟁할 업체가 없다.

또한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기 때문에 각 기기 사이에 연동 기능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향후 애플TV를 리모트 대신 애플워치에서 음성(시리)으로 조작하거나, 애플TV 모션 센서 지원 게임을 리모콘과 아이폰으로 함께 플레이하고, 누군가 거실에서 애플TV를 시청하는 동안 아이패드로 다른 채널을 볼 수 있게 될 날도 올 것이다. 

애플 생태계가 확고하게 자리잡으면서 경쟁 플랫폼의 태도도 달라졌다. MS가 아이패드 프로 발표에서 iOS 오피스 데모를 시연했던 것을 비롯해 구글은 안드로이드 스마트워치를 아이폰에서 돌아가도록 공식 앱을 내놓았고 삼성 기어 S2 역시 갤럭시 액세서리가 아닌 안드로이드와 iOS를 지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애플은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경쟁 플랫폼에 제공하지 않는다. 아이폰 사용자는 모든 종류의 스마트워치를 다 쓸 수 있지만 다른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은 적어도 애플워치 만큼은 사용할 수 없다.

 

 

더 강해진 팀쿡의 애플, 대응 방법이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증명하는 것은 하나다. 모바일 시장에서 애플이 아직 진출하지 않는 곳은 선점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피를 뿌려 개척해야 하는 불모지이며, 혹 피나는 노력 끝에 비옥한 옥토로 탈바꿈시킨다 해도 곧 막강한 자금력과 강력한 생태계, 그리고 전세계에 걸쳐 충성스런 고객들을 거느린 애플의 침략을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이미지 출처: 애플)

팀 쿡의 애플은 스티브 잡스 시절보다 훨씬 영악해졌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조적인 예술가(또는 이를 자처하는 천부적인 마케터)는 아니지만 경쟁자들과 똑같은 부류의 CEO이며 그들이 잘 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누군가 자신의 것을 베꼈다면 불같이 화를 내고 비난을 퍼붓겠지만 그는 웃으면서 상대방에게서 더 많은 것을 뺏어올 수 있는 사람이다. 

만약 애플에게서 무엇을 따라할까 생각했던 경쟁자들이 있다면 이번 애플 신제품 발표회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정신없이 애플 따라하기에 몰두하다 자신들이 만들고도 잊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되돌아 볼 시간을 갖게 됐다는 것과, 팀 쿡 스타일의 애플은 스티브 잡스 때보다 더 무너뜨리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