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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게 에르란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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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리의 나라를 아십니까.

돌부리를 파내다, 지치면 포기하고 떠나버리는 나라.

바로 북유럽에 위치한 스웨덴입니다.

한 때, 스웨덴의 국민들은 싸워서 이겨야만 잘 사는 줄 알았죠.

그래서 끊이지 않았던 노조들의 파업.

그 때 따뜻한 시선으로 노조를 바로 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스웨덴의 총리.

"난 목요일이 좀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라며 모든 노조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조금씩 피어나는 어색한 대화 속에서

그들은 기업가가 몰랐던 노동자의 사정과 노동자 역시 미처 몰랐던 기업가의 고충을

서로가 알게 되었습니다.

"아예 매주 저녁을 같이 합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목요클럽.

이 대화의 모임이 이어진 23년,

이 23년간 선거에서 11번 승리한 스웨덴의 최장수 총리

스웨덴 국민의 아버지, '타게 에를란데르'이다.

위기의 스웨덴에, 이런 멋진 명언을 남긴 그.

23년 간 에를란데르 총리의 모임에 초대 받지 못한 자는 없었다.

학자부터 농부까지 모두 다 그와 함께였다.

그런 그의 노력 가운데, 완전히 사라진 파업.

그리고 잘 살게된 스웨덴 국민.

이제 스웨덴은 저주받은 돌부리의 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다함께 잘 사는 나라 말이죠.

타게 에를란데르(1901~85)

: 스웨덴에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1928년 룬드대학교를 졸업한 후 1928~38년 〈스벤스크 웁살라보크 Svensk Uppslabok〉 백과사전 편집자로 일했다. 1933년에 사회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1938~44년 사회복지장관, 1944~45년 무임소장관을 역임했으며, 페르 알빈 한손의 사회민주당 내각(1945~46)에서는 교육장관과 종교장관을 지냈다. 1946년 한손이 사망한 이후 사회민주당 당수 겸 총리가 되었고 1968년 퇴임할 때까지 양 직위를 겸임했다. 1970년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변경된 새로운 의회에서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에를란데르는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하면서 노인 수당, 어린이 수당, 임대보조금 지급안을 통과시켜 복지입법을 확대했다. 또한 교육개혁을 단행하여 의무교육 연한을 9년으로 연장하고, 고등교육 기회를 증대시켰다. 냉전시대에 그의 외교정책은 스웨덴의 중립을 견지하는 것이었다. 은퇴 후 1972~76년 4권으로 된 〈에를란데르의 인생 Tage Erlander〉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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