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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의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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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500년을 다스렸던 왕들의 평균 수명은 46세이며, 추존 왕비를 포함한 42명의 왕비들의 평균수명은 47세이다. 27명의 왕 가운데 영조(82세), 태조(73세), 고종(67세) 등 몇 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단명했다고 할 수 있다. 부족한 먹거리와 전염성 질병으로 생명을 위협받던 백성과 달리 전속 의관의 보살핌까지 받은 조선 왕들의 건강관리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각 왕들의 유전적 배경과 라이프스타일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문종의 질병
조선시대 기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병 2가지를 꼽으라면 두창(천연두)과 종기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문종 사망의 근접원인은 등에 난 종기(등창)이다. 종기란 세균 감염에 의해 피부에 결절이 생긴 상태를 말하는데 섭생 또는 개인위생이 불량하거나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들에게 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문종은 숨을 거두는 날에도 어의가 은침으로 종기를 따서 상당량의 농양을 짜냈다고 한다. 향년 38세, 즉위 2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남으로써 어린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오르고, 곧이어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은 동생(수양대군)에 의해 단종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문종은 평소에 여색을 멀리하고 심신을 바르게 수양했으며, 또한 효심이 깊어 대신들이 보기에 아주 이상적인 왕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개인 가정사는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세자 시절 첫 번째 맞이한 부인은 궐내에서 금지된 주술행위로 폐비되었고, 두 번째 부인은 조선왕실 최초의 레즈비언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역시 폐비된다. 세 번째 부인은 이미 문종의 딸을 낳은 후궁을 책봉했는데 아들(훗날 단종)을 낳은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화병으로 사망한 문종의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
할아버지가 조선의 개국공신이고 영의정 심온이 아버지인 소헌왕후 심씨는 14세 때 12세의 충녕대군(세종대왕)과 혼인하여 둘 사이에 8남 2녀의 자녀를 둔다. 세종 즉위 후 세도정치를 막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상왕 태종의 정책에 의해 심씨의 부친은 사약을 마시고 죽고 어머니는 관노가 되면서 친정 집안이 일시에 몰락하는 것을 왕비인 심씨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세자빈들의 비행과 불륜, 왕자들의 이혼 그리고 장녀와 2명의 왕자를 창으로 잃는 고통을 겪는다.

이 모든 과정에서도 심씨는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혼자서 아픔을 삭이며 감정을 남에게 표출하지 못하고 지냈다고 전해진다. 평소 특별한 지병이 없었던 심씨는 세종 28년 병을 얻어 2주 만에 사망하였는데, 이때 소헌왕후 나이 51세였다. 어머니가 겪은 이 모든 과정을 효성 지극한 큰아들인 문종이 함께했으니 그 역시 화병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문종의 아버지 세종과 세종의 어머니 원경왕후의 질병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인 세종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할 정도로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 잘 알려진대로 당뇨와 중풍, 임질, 통풍, 안질 그리고 자가면역질환을 앓은 것으로 보인다. 세종 나이 40에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함이 심하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육식 위주로 편식하고 비만하였으며 운동부족, 수면부족 등 생활습관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의 개선이나 치료를 위해 본인이 생활습관을 바꾸지 못하고 주술하는 무당에 의지하였다고 한다.

세종의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외향적 성격으로 남편이 왕(태종)이 되는 데 결정적인 내조를 하였다. 그럼에도 민씨의 남동생 4명 모두가 비참하게 죽고 잘나가던 친정 집안의 몰락으로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던 넷째 아들 성녕대군도 두창으로 잃은 후 불심으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세종 2년에 학질을 앓다 55세로 한 많은 세상을 마감한다.

질병의 근원은 화병(火病)
사람은 건강에 관한 한 유전적으로 모계에서 더 큰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문종은 어머니인 소헌왕후 심씨, 아버지인 세종, 그리고 친할머니인 원경왕후의 DNA를 직접 공유했다. 여기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질병 억제 능력에 영향을 줬다.

조선 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후손들이 장수인자를 물려받았음에도 단명한 근본적 원인은 바로 ‘화병’에 있다. 스트레스는 누구나 받으며 살아간다. 다만 이기지 못하면 화병이 되는 것이다. 분노와 같은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이러한 감정을 스스로 억누르고 내면화하게 되면서 억압된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생리적으로는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 물질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우울증이나 불면, 식욕 저하, 의욕 상실 등을 야기한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인체의 방어능력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각종 질환에 취약하게 되는 것이다. 화병은 1995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한국의 특유한 문화증후군으로 인정한 질환이다.

조선 최장수 왕 영조의 미스터리
조선후기로 갈수록 왕손이 귀해진다. 번식한 개체수가 감소하는 현상은 곧 멸종의 예비사인이기도 하다. 숙종은 14세에 즉위하여 36년간 재임하는 동안 굳건한 왕권을 확립하였다. 첫째 부인을 두창으로 잃고 숙종 자신과 아들도 두창에 걸린 경험이 있다. 그는 15세에 간염을 앓은 이후 50대에 간경화로 진행되었고, 60세에 간성 혼수로 사망하였다. 3명의 정식 왕후에게서 자식이 없었는데 장희빈이 왕자(경종)를 출산했고, 천한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가 연잉군(영조)을 낳았다. 숙빈 최씨는 자신이모시던 중전과 숙종을, 충성을 다해 섬겼으며 소박한 품성의 그녀는 둘째 아들 연잉군에게 항상 자중할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첫째와 셋째 아들은 일찍 죽었으나 남은 아들과 함께 당쟁에 휘말리지 않고 여생을 평탄하게 보냈다. 비록 아들의 즉위식을 보지 못하고 49세에 생을 마쳤지만 그녀는 성공적인 인생을 산 셈이다.

30세에 등극하여 52년간이나 재임할 수 있었던 영조의 건강 비결은 무엇일까? 18세에 종두를 앓은 것 말고는 큰 병치레는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성격은 부왕인 숙종을 닮아 감정을 가슴에 담아두지 않고 즉시 분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 비결은 의외로 평범하다. 냉혹하리만큼 철저한 자기관리이다. 대신들과 회의하는 중이라도 식사시간이 되면 신하들은 굶게 놔두고 자신은 식사하러 가기도 했고,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굶겨 죽일 때도 자신은 식사를 챙길 정도로 철저했다. 그것도 항상 소식(小食)이었다. 술자리도 절제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마치 탕평책을 펼치듯이 음식도 골고루 먹었다고 한다. 영조는 40세에 ‘온갖 보양이 모두 헛것이고 다만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요방(要方)’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현대인이 조선 왕에게서 배워야 할 건강 비결
1. 그날의 스트레스는 그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풀어라.
2.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지켜라.
3. 편가르지 말고 그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라.
4. 소식(小食)하라.
5. 보양만 찾지 말고 몸에 해로운 것을 금하라(흡연, 과음, 무절제한 성생활).
6. 근거 없는 미신을 좇지 마라.

건강에 금수저, 흙수저는 따로 없다. 자신의 유전적 배경을 이해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건강 경쟁력(기본체력)을 갖추는 것이 건강의 왕도(王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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