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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 더 슬픈 ‘쌍용차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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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아빠없는 하루


부모 불안심리 전이돼


우울 상태 2~3배 심해

어린이날이 다가왔다. 교빈(가명·9)은 경기도 과천에 있는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 아빠 손 잡고 놀이공원에 가는 생각만 해도 앞니 빠진 얼굴이 해끔해진다. 예전엔 매 주말이 어린이날이었다. 아빠는 교빈의 손을 잡고 주말마다 이곳저곳 다니며 함께 놀았다.

몇년 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교빈의 손을 잡아줄 아빠는 좀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두시간이라도 아빠와 놀 수 있는 날은 한달에 한두번뿐이다. 아빠 서맹섭(36)씨는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다. 2008년 10월, 서씨는 경기도 평택 공장에서 해고됐다.

5살·2살 동생을 둔 교빈은 다음달 새 동생을 맞는다. 엄마 김지화(31)씨의 배가 한창 불렀다. 엄마·아빠 모두 벌이가 없어 노조가 주는 생계지원비 90여만원에 친척들이 보태주는 돈을 더해 살고 있다. 빠듯한 살림을 꾸리는 엄마에게 교빈은 귀한 딸이다. 동생들을 목욕시키고 밥도 혼자 차려 먹는다. 새 동생도 그렇게 돌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젓해도 아빠의 빈자리는 스스로 메우지 못한다. 한창 재잘거릴 나이의 교빈은 말수가 적다. 교빈이 7살 되던 2009년부터 아빠·엄마는 해고에 저항하는 투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런 부모를 지켜보며 자란 교빈의 사회성 발달이 늦은 편이라고, 쌍용차 해고자 및 그 가족을 상담해주는 경기도 평택시 심리치유공간 '와락'의 상담사가 말했다. 교빈은 지난 2월부터 와락에서 매주 한번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요즘 아빠는 평택역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하루 종일 지키고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2646명과 그 가족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질병으로 세상을 뜬 22명의 사망자를 기리는 분향소다. "농성 때문에 어린이날에도 아이들과 함께 있기 어려울 것 같아요." 오랜 바깥 생활로 피부게 검게 그을린 아빠 서씨가 말했다.

쌍용차 해고자 가족 가운데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와락에서 상담을 받은 이는 30여명인데, 25명이 지속적 상담과 놀이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상적 아이에 비해 2~3배 정도 우울·불안이 심한 경우다.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아이도 있다. 상담사들은 상담·치료를 아예 받지 못한 아이들이 훨씬 많아 걱정하고 있다. 권지영 와락 대표는 "부모의 불안한 심리가 아이들에게 많이 전이됐는데, 파업 등으로 부모가 아이를 돌볼 시간이 부족해 문제가 악화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5일 평택시 원평근린공원에서는 쌍용차 해고자의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날 잔치가 열린다. 심리치유공간 와락의 상담사들이 준비했다. 아이들은 튀긴 돈가스를 먹고 축구공을 차고 종이를 접어 날릴 것이다. 교빈이 기대하는 어린이날 선물은 따로 있다. "아빠가 매일 집에 와서 놀아주는 거죠." 이빨 빠진 교빈의 잇몸에서 조그맣고 하얀 것이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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