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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2인자 부상`최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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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와 승부근성…1등삼성 1등공신
◆삼성 깜짝 인사◆
’삼성 최고의 야전사령관’ ’미다스의 손’ ’디지털 보부상’.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1977년 삼성에 입사한 지 35년 만에 삼성의 2인자로 부상한 최 부회장은 오늘날의 삼성전자 1등주의를 달성한 1등 공신으로 꼽힌다.

1951년생으로 춘천중학교를 거쳐 춘천고를 1년 정도 다니다 서울고로 옮겨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에 입사한 신입사원 최지성은 근무 희망 계열사를 1지망부터 3지망까지 ’삼성물산’만 써낼 정도로 고집 있는 사원이었다.

삼성물산에서 처음 배치된 부서는 잡화과. 그야말로 잡동사니 품목을 수출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 스스로 ’장사꾼’이라고 부르는 데는 당시 독한 비즈니스맨의 특성을 몸에 익혔다고 할 수 있다. 최 부회장이 그룹 비서실에 처음으로 몸담은 때는 1981년. 비서실 기획팀 과장으로 4년간 근무하면서 그룹 전반의 경영 안목을 익힐 수 있었다.

최 부회장은 그 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로 이동해 반도체 1위의 기틀을 닦는 데 일조하게 된다.

최 부회장의 그룹 비서실 2기는 1993년부터 1994년간의 1년여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직후의 시기다.

삼성 고위 인사는 "최 부회장이 반도체, TV, 휴대폰 등 사업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야전사령관으로 분류되지만 2번의 비서실 경력이 오늘날의 미래전략실장으로 가는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부회장의 ’독기’와 ’승부근성’은 그를 아는 사람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목이다. 그는 문과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000쪽이 넘는 반도체 기술 교재를 통째로 암기했다. 이 덕분에 웬만한 반도체 엔지니어를 능가하는 기술 지식으로 이과 출신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과거 반도체를 팔 때 외국 바이어들이 그의 해박함에 혀를 내둘렀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는 세계 각지를 돌며 시장 조사와 거래업체 면담을 강행했는데 스위스로 가기 위해 알프스를 넘던 중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생명이 위험했던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최 부회장은 2006년 보르도TV를 앞세워 소니를 제치고 TV사업에서 처음으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당시 최 부회장은 이를 기념해 보르도 와인을 글라스에 가득 부은 후 원샷을 하는 호방함을 보이며 임직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PC용 모니터와 휴대폰 등에서도 1위 신화를 달리면서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누구보다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면서 "이러한 스피드 경영의 장점을 다른 계열사에도 적극 접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최 부회장 발탁을 통해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타 계열사에 전파하려는 의중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왜 삼성전자 같은 금융회사나 화학회사가 안 나오는가"라며 타 계열사의 분발을 적극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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