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athan Ive interview: Apple's design genius is British to the core
Apple’s design guru Jonathan Ive, who receives a knighthood today for creating products such as the iPad, tells Shane Richmond why this country’s industrial heritage lies behind his success.
Jonathan Ive joined Apple in 1992 and was put in charge of the company's design in 1997. Photo: Rex Features
By Shane Richmond, Head of Technology (Editorial) 6:30AM BST 23 May 2012
런던 코벤트가든에 있는 애플스토어를 거닐면서 조너선 아이브를 다시금 눈여겨 본 사람은 직원 한 명 뿐이었다. 손님들은 자기들이 좋아하고 만지고 사랑하는 컴퓨터와 아이패드, 아이폰, 아이포드의 디자인 책임자가 나타나도 모르고 있었다.
조용히 말하고 신중한 영국인 아이브는 1992년부터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에서 일해왔으며 1997년에 디자인 책임자가 됐다. 덕분에 그는 세계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가 됐다. 아이포드를 만들면서 그는 음악계를 완전히 변화시킨 제품을 만들었고, 아이폰 또한 휴대폰 업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의 팀에서 나온 가장 최신 제품인 아이패드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컴퓨터의 표준을 설정했다.
믿을 수 없을 그의 성공으로 그는 디자인 업계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재산도 8천만 파운드로 불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거의 못 알아본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제품에 관심 있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관심이 없거든요."
하지만 오늘 이후로 아이브의 얼굴을 알아볼 사람은 상당히 늘어날 것이다. 디자인과 기업에 대한 기여로 기사 작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이런 영예는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 언제나 디자인을 하고 싶었고, 제가 하기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입니다. 일단 그것을 찾아내기부터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실천해서 그것만 해야 하죠.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디자인과 제조에 있어서 영국적 전통이 매우 별다르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정받는다는 건 정말 좋네요."
아이브는 1967년 에섹스의 칭포드(Chingford)에서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스태포드셔(Staffordshire)였다. 그곳에서 그는 일반계 고등학교인 월튼(Walton) 고등학교를 나왔다. 선생님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디자인 일을 해보겠다는 자신의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매우 능숙한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가구와 은제품을 만들었죠. 스스로 뭔가를 만드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어요."
아이브는 제품의 디테일에 대한 애플의 관심에 대해서도 말했다. 소비자들이 전혀 보지 못 할 디테일도 종종 있다. "서랍 뒷면도 완성시키고자 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그의 말이다. "그래야 옳다고 보니까 하는 것이죠." 아이브는 아버지의 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키웠다고 한다. "자라면서 그리기도 즐겨 했지만 그리기는 아이디어를 드러내는 역할이었어요. 항상 그렸고, 만들기를 즐겼습니다."
그는 뉴카슬 폴리테크닉(Newcastle Polytechnic), 현재는 노섬브리아(Northumbria) 대학에서 디자인을 수학했으며, 지금도 외부강사로 대학을 자주 방문한다. "디자인 학교 다닐 시절에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패션 디자이너, 미술학도를 모두 가까이 할 수 있었어요. 그 점이 정말 재밌었죠. 제 대학 시절의 특징이었습니다. 창조적인 다양성이 촘촘하게 놓여 있다는 점, 런던에게 에너지와 활력을 주는 것도 그 점이라고 봐요."
아이브는 대학 시절에 처음 애플 맥을 접했다. 기술 부문은 서투르다 여겼던 그는 이제야 사용할 만한 컴퓨터를 발견해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전혀 저같지가 않았어요. 갑자기 말이죠. 이제까지 써야 할 컴퓨터는 모두 끔찍했거든요."
맥을 써 본 경험때문에 아이브는 애플과 애플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디자인 대행사인 탠저린(Tangerine)을 공동창립한 후, 그는 외부고문으로 애플 일에 뛰어들었다. 20년 전, 그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정식 애플 직원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가 "절대적으로 영국 디자인 교육의 산물"이라 칭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도 영국은 디자인과 제조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깊숙이 알고 있었어요. 영국이 산업혁명을 최초로 이룬 나라라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영국이야말로 제 일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죠."
애플 쿠퍼티노 본사에 있는 아이브의 디자인 작업실에서 좀 떨어진 샌프란시스코에 그는 영국인 부인인 헤더(Heather), 그리고 두 아이들과 함게 비밀스럽게 살고 있다. 디자인 작업실은 선택된 직원만 들어올 수 있으며 창문도 불투명하다. 이 곳은 애플의 여러가지 제품의 초기 형태를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기계로 가득하다.
아이브는 대머리에 근육질이다. 무뚝뚝하고 터프한 디자이너이리라 여길 수 있다. 애플 또한 애플대로 일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쓴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보면 직원들끼리 눈물까지 흘려가며 격렬히 싸우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브는 실제로 상당히 상냥한 인물이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답변을 일단 고민한 다음 말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애플에서의 일을 얘기할 때 그는 항상 "저"라는 말 대신 "우리"를 사용했다. 그는 애플을 다시금 성공궤도로 올린 사탕 색상의 아이맥이나 컴퓨터의 사용 방식을 아예 바꿔버린 아이패드 태블릿과 같은 제품을 만들 때, 모든 면에 있어서 팀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그 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특히 "단순함(simplicity)"과 "집중(focus)"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은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제품이죠. 우리 제품은 툴입니다. 디자인이 주의를 흐뜨리기 원치 않아요. 단순함과 명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려 노력한다는 얘기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확실히 구분을 한다고 봅니다. 신경쓴다는 사실(care)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말이에요."
애플 제품에 들어가 있는 신경씀이야말로 아이브가 진지하게 거론하는 대상이다. 그는 신경쓰다의 의미가 산업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칙으로 얘기했다. "뭔가 대량생산과 산업화에는 무신경함이 들어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죠."
"신경쓰는 것이 중요하죠. 훌륭한 관점이라고 봅니다만, 하나만 만들고 신경 끌 수 있고, 백 만 개를 만들더라도 계속 신경쓸 수 있습니다. 정말로 신경 쓰는지 아닌지는 제품을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만들고 시장에 내놓으면, 정말 여러가지 가치를 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신경쓰기만 생각하죠. 우리 제품이 말하지 않는 것은 일정표입니다. 기업이나 경쟁에 따른 어젠다를 위해 대응하려 하지 않죠. 우리는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흑백론으로 보자면 위와 같은 발언은 이상주의적이며 냉소적으로 느끼기 쉬운 성격이다. 다른 여러 가전 업체들처럼 애플도 최근 수개월간, 제품을 조립하는 극동 지역 공장의 노동조건을 두고 고민을 해야 했다.
애플은 소비자와 제품에게 신경쓰는 것처럼 노동자에게도 신경씀을 보이려 시도했다. 여러 건의 감사 결과에 따라 애플은 공장 내 노동조건을 개선시키고 보다 개방적으로, 그리고 경쟁사보다 더 깊게 공급망을 감시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브와 그의 팀은 애플이 만드는 제품 디자인만 하지 않는다. 너무나 새로운 아이디어여서 아예 제품을 만들 공정 자체를 모두 디자인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아이브의 업적은 대단히 많으며 지금까지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아 왔다. 하지만 기사 작위 수여는 그를 한 번 되돌아볼 좋은 기회이다. 만약 애플 디자인 중 기억나는 것 하나만 뽑으라면 그는 무엇을 뽑을가?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우리가 작업해 온 것들 모두 제일 중요하고 최고였거든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애플은 미래 제품에 대한 비밀주의로 유명하다. 하지만 만약 여왕이 새 아이폰에 대해 오늘 물어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폐하, 죄송합니다만 앞으로 나올 제품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습니다'라 말씀하시렵니까?"
"그러면 재밌겠네요."
그는 웃으며 답했다. NO라고 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Jonathan Ive: the quest for simplicity has to pervade every part of the process. Photo: Eyevine
"디자인의 의미는 너무나 많기도 하고, 전혀 없기도 합니다. 우리 팀은 사실 디자인에 대해 뭐라 대화를 하지 않아요. 아이디어 개발과 제품 제조에 대해서만 말하죠."
1998년에 그가 디자인한 아이맥은 애플을 완전히 바꿔냈다. 당시 애플은 거의 부도 직전이었다. 2001년에 나온 아이포드는 한층 더 나아가서 음반 산업을 변화시켰고, 2007년에 나온 아이폰 또한 휴대폰 사업에 유사한 효과를 주었다. 2010년 데뷔한 아이패드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컴퓨팅을 이끌고 있다.
조너선 아이브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결과가 있는 뭔가를 디자인하고 개발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 목표는 차분함과 단순함이에요. 대단히 복잡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미처 해결책을 알아차리지 않아도,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 아예 모르고도 풀어내도록 하는 데에 있죠."
단순성은 대화중 계속 등장하는 단어였지만 그는 그 의미에 특별함이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성은 어수선함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건 단순성의 결과이니까요. 단순성이란 뭔가 본질적으로 한 객체와 제품이 있어야 할 곳과 목표를 그려내는 것입니다. 어수선함이 없다는 건, 그냥 깔끔한(clutter-free) 제품일 뿐입니다.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요."
"단순성의 탐구는 공정의 모든 부분에 스며들어 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정말 근본적이죠."
하드웨어에서의 그러한 단순성이 언제나 소프트웨어와 짝을 이루지는 않는다. iOS(아이패드와 아이폰, 아이포드 터치용 OS)가 나온 이래로 소프트웨어는 옛 디자인의 장식적인 기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갖는 식이었다. 그래서 애플 맥과 iOS의 칼렌다는 가짜 가죽 질감과 바느질 자국을 갖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자 아이브는 움찔했다. 그런 것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동조한다는 제스쳐였던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동 문제에 대해 답하기를 거부했지만 의례적인 말 정도는 해 줬다. "다른 팀과 함께 제품 아이디어에 대해 작업한 다음, 하드웨어를 개발합니다. 그것이 제 포커스이죠. 우리의 포커스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책임이죠. 말씀하시는 요소에 대해서도 제가 정말 관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성공작을 만들었으니, 그와 그의 동료들이 그동안 만들어온 아이디어의 흐름을 당연스럽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이디어의 흐름 과정에 대해 여전히 경외심을 갖고 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매우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당장 여기 앉아 있는 것이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이디어는 없습니다. 존재하지를 않죠."
"거의 형성이 안 된 생각만 갖고 있다가 갑자기 뭔가 실제로 존재하게 되죠. 그 때의 생각도 너무 잠정적이고 파손되기 쉬운 생각이에요. 그래서 붕 뜬 논의가 되는데 여기에 살을 갖다 붙이려 하죠. 일반적으로는 몇몇 사람들 사이의 대화로 일어납니다. 그들만의 대화죠."
"그러다가 뭔가를 묘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첫 번째 물건을 만들면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죠. 실제로 형태와 치수를 아이디어에 부여했으니까요. 전체적인 공정상 제일 극적인 순간이 그 때입니다. 갑자기 사람도 많아져요. 집중도 받고, 충격도 줄 수 있죠. 대단히 강력해지는 겁니다."
아이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런 믿음을 지니기 위해 어느 정도의 열정과 진지함을 가졌는지 알아봐야 한다. 빈 말이 아니다. 그가 자기 인생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팀과 함께 해결하려는 문제를 판단해왔다.
아이브와 그의 팀은 아이디어 개발에 있어서 끝까지 가 보고, 새로운 요소를 연구하며 완전히 새로운 공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길 경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른 업계 전문가의 조언도 받는다. 가령 오리지날 아이맥을 개발하면서 아이브와 그의 팀은 사탕 공장과도 접촉했다. 사탕-색깔의 컴퓨터 본체를 생산할 때 투명도의 유지를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브가 훌륭한 디자인을 추구할 때 하지 않은 것을 한 가지 꼽으라면, 사무라이용 칼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보려고 일본으로 출장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다. 아이패드 2의 디자인을 위해, 사무라이용 칼을 어떻게 만드는지 구경하러 일본에 갔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돈 적이 있었지만, 아이브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답했다.
사실 그냥 나온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브와 애플이 워낙에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다. "감각적으로 알아보는 수준 이상으로, 정말 사소한 디테일까지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요. 거의 발작 지경이죠... 하지만 그게 옳다고 여기니 하는 겁니다."
"'서랍의 뒷면까지 마무리'한다는 얘기에요. 사람들이 볼 일이 없고, 절대로 안 볼 겁니다. 어떻게 생각해도 뒷면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힘들 텐데, 그래도 중요해요. 이들 제품은 누구를 위해 신경 써서 만드는지 보여주는 방식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스스로가 시민적 의무로 여기고 있습니다. 옳고 중요해요. 왜인지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지만요."
애플이 제품에 채우는 가치에 대한 감각, 그리고 디테일에 대한 이러한 집중은 놀라운 성공과 결합됐고 애플은 세계 최대의 회사가 됐다. 게다가 애플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인상도 만들어 놓았다.
물론 2000년에 나온 파워맥 G4 큐브처럼 성공 못 한 제품도 있었다. 큐브는 놀라운 디자인 제품이었지만 대량 판매에는 실패했다. 2007년 처음 나온 이래 '취미용'이라 불린 애플티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아이브는 애플의 실패담이 대부분 화면에 가려져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 불확실할 때가 사실 많습니다. 한 아이디어를 계속 추구해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때가 대다수죠. 아이포드와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럴 때가 많았어요. 가령 단계를 거의 끝까지 발전시켜 놓았고 해결책도 분명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나 남들에게나 가치가 뭔지 또렷이 말해줘야 할 때, 가라앉는 느낌이 듭니다. 가치를 말로 설명해야 한다는 상황 그 자체때문에 가라앉는 느낌이 드는 것이죠. 실제로는 충분히 좋게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 되니까요. 우리 스스로에게 실제로 대단히 솔직하게 '알지? 불충분해. 멈춰야겠어.'라 할 때가 꽤 많았어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를 주어로 쓰지 않을 때가 있음을 발견하셨을 것이다. 단순히 문장을 좀 바꾸려고 그랬을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점이 하나 있다. 자기 일에 대해 얘기할 때 아이브는 스스로를 지칭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항상 사용한다.
아이브는 프로젝트 정지를 외쳐야 하는 순간이 어디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제 임무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브에 따르면 전문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신조가 애플 내에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제품이 개발중에 있는 경우에는 상당히 유동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같이 앉아서 제품을 개발할 때는, 전자 엔지니어가 누구인지, 누가 기계 엔지니어인지, 디자이너는 또 누구인지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이 과정에서 팀웍이 중요하다. "애플에서는 디자인팀 다수가 15년 이상을 같이 일해왔어요. 그 점이 특별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룹으로서의 학습에도 뭔가 훌륭한 점이 있습니다. 실수를 같이 저지르고 있을 때도 근본적인 부분이 있다는 얘기죠. 아이디어를 수 없이 많이 실행해보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어야 뭔가를 배웁니다."
지난해는 애플로서 격변의 해였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전임 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서거하기 고작 수 개월 전, 새로운 CEO, 팀 쿡이 회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잡스의 부재때문에 애플이 이제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여러분 예상대로 아이브는 동의하지 않는다. "2년 전이나 5년 전, 10년 전과 똑같이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몇몇이 그렇게 똑같이 작업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들의 거대한 그룹 자체가 똑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이브는 그러한 팀이야말로 애플이 계속 성공하게 될 요인이라 생각한다. "집단 학습과 팀으로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좀 집착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당한 만족감을 얻어요. 특히 비행기에 탔을 때 주위 사람들 대다수가 뭔가를 사용하는 광경을 볼 때 그런 느낌을 받죠. 우리가 그동안 같이 고민해오던 제품을 모두들 쓰고 있잖아요. 정말 훌륭한 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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