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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씨 일가 풀리지 않는 40년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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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임선이 일대기 <또 하나의 가족> 출간으로 드러난 의혹들

“피청구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용도로 남용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최서원의 사익 추구를 도와준 것으로서 적극적·반복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국가의 기관과 조직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그 법 위반 정도가 매우 엄중하다.”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문의 한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최서원, 다시 말해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적극적·반복적으로 도와준 것은 매우 엄중한 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헌재가 언급한 최순실의 ‘사익 추구’는 미르, 플레이그라운드, 비덱스포츠 등 대통령 재임 중인 2013년 이후 벌어진 일들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그뿐이었을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온 나라가 순실이의 밥상이 되고 박근혜는 순실이의 젓가락이 될 테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나.”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가 죽기 전에 남겼다는 말이다. 조순제의 이 발언은 조순제의 장남 조용래씨(48)가 펴낸 책 <또 하나의 가족>에 실려 있다. 결과적으로 탄핵까지 이어진 비극적 결과를 신통하게 예언한 셈이다. 조순제는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 관계자들을 만나 9시간 동안 자신의 아버지와 박근혜의 관계 등에 대한 증언을 남겼다. 그의 ‘녹취록’은 2007년 대선 당시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가 벌어지면서 처음으로 빛을 봤다. 조순제는 대선이 치러지던 2007년 12월 19일 새벽 5시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암이었다. <주간경향>을 만난 조순제의 장남 조용래씨는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박근혜는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 한자리에 모인 임선이의 자녀, 사위, 며느리. 왼쪽부터 최순득 남편 장석칠, 최순득, 김경옥, 조순제, 정윤회, 최순실, 최순천. / 조용래 제공

1990년대 초 한자리에 모인 임선이의 자녀, 사위, 며느리. 왼쪽부터 최순득 남편 장석칠, 최순득, 김경옥, 조순제, 정윤회, 최순실, 최순천. / 조용래 제공


의붓아들 조순제가 남긴 ‘예언’ 

3월 6일 특검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검의 발표 중 눈을 끄는 대목은 ‘최순실과 일가들의 불법적 재산형성 및 은닉의혹’이었다. 특검에 따르면 최순실씨 일가의 재산 총계는 약 2730억원(국세청 신고가 기준)이었다. 

특검은 “언론 보도상의 의혹사항 등 총 28개에 이르는 의혹사항과 최순실 일가의 현재 재산 파악 및 불법적 형성 및 은닉 사실을 조사하기에는 주어진 조사기간이 부족했고, 또 재산 추적에 필수 수단인 계좌추적 등 강제수사 수단 이용이 용이하지 못하고, 관련자료 보유기관의 비협조로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발표문에 적고 있다. 특검은 “이 부분은 완료하지 못한 사항으로, 검찰에 이첩해 향후 다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삼성동 사저 누구 돈으로 샀나 

특검은 박근혜·최씨 일가가 경제공동체를 이뤘다는 근거 중 하나로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구입 당시(1990년) 계약과정을 임선이·최순실이 주도하고 돈도 대신 냈다고 밝혔다. “장충동 집을 팔아 구입자금을 만들었다는 (특검에 대한) 청와대 반박은 거짓말이다. 나는 영감(최태민)이 시켜 계모(임선이)가 산 것으로 알고 있다.”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대한 최태민씨 아들 최재석씨의 답이다. 그는 “삼성동 집을 구입한 후 아버지와 계모가 ‘뭐 그런 집을 샀냐’고 싸웠던 것이 기억난다”며 “실제 아버지가 남긴 부동산 목록에 그 집이 들어 있어 나중에 방문해보니 초등학교 운동장 담벼락에 붙어 있어 시끄러워 좋지 않다며 핀잔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가법 위반, 뇌물죄를 걸어 최순실 재산만 추징보전명령을 신청했다고 하는데, 최순영·최순천·최순득의 것으로 돼 있는 것도 걸어야 한다”며 “국회에서 다시 특검법을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도 청구소송을 해서 은닉재산을 밝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 주간경향>은 최씨 일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계’ 규명에서 핵심 열쇠는 최순실씨의 모친 임선이이며, ‘사돈에 팔촌까지 다 동원해 빼먹었던’(신동욱 공화당 총재의 발언) 최씨 일가의 은닉재산 추적에서도 핵심은 임선이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임선이 관계가 핵심이다’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조용래씨의 말이다. 조용래씨가 이번에 낸 책의 원래 가제는 ‘임선이 일대기’였다. 조씨는 책에서 왜 임씨 관계가 핵심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최태민이 박근혜의 정신을 철저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박근혜의 권력을 향한 욕망을 최태민이 이해하고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임선이는 낚시꾼 최태민이 끌어올린 물고기가 사실은 월척 정도가 아니라 용을 낚아 올린 것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진짜 낚시꾼은 임선이였고, 최태민은 임선이가 낚싯바늘에 꿰놓은 미끼였는지도 모른다.” 최태민의 역삼동 집에서 박근혜와 ‘밀회’가 이뤄지는 데도 부인인 임선이는 왜 이런 ‘기묘한 상황’을 그대로 두고 있었는지에 대한 풀이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6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 기자실에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수사 결과와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가 6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 기자실에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수사 결과와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책에 따르면 1958년쯤 임선이가 막내딸 최순천을 낳은 뒤부터 형편이 조금 나아져 조금 넓은 집으로 옮겼는데, 그 무렵부터 최태민의 전 부인이 낳은 자식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고 밝히고 있다. 안기부의 ‘최태민 가계도’에 따르면 ‘이 넓은 집’은 마포구 아현동 50번지에 있던 집이다. 가계도에 따르면 경남 양산시와 마포구 아현동의 집이 각각 어머니가 다른 최태민의 자녀들이 태어난 본적지로 되어 있는데, 임선이가 “딸 넷과 전처들의 자식 셋을 같이 키웠다”는 대목에서 의혹이 해명되고 있다. 역시 책에 실린 증언에 따르면 “임선이는 남의 새끼를 키울 마음이 없었지만 자기 때문에 아비 없이 크게 된 광숙이나 광연(광윤의 오기로 보임, 두 사람 모두 최태민의 둘째 처의 자식임: 편집자 주)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최태민이 자신과 살림을 차린 동안에 바람을 피워 낳은 최재석은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고 적고 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책에 실린 증언의 시각이 아버지를 달리하는 의붓아들 부부의 시각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훗날 벌어질 비극적인 사태는 바로 임선이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거나 “1990년대에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박근혜가 되게 되어 있다”는 허망한 예언을 내놓은 것이 최태민이라면, 실제 돈줄로 권력을 휘두른 것은 임선이였다는 주장이다. 최태민이 죽기 전부터 ‘머리가 굵어지면서 최태민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은’ 셋째딸 최순실이었다. 책에 따르면 조순제는 생전에 최순실을 ‘여자 최태민’이라고 불렀다. 조용래는 임선이와 최순실에 대한 기억의 공통 키워드는 ‘탐욕’이었다고 책에서 적고 있다. “어릴 때 임선이 집에서 밥을 먹으면 밥상에서 제일 큰 밥그릇은 최순실의 차지였다. 크게 뜬 밥 한 숟갈에 김치를 통째로 둘둘 말아서 한 입에 넣는 것을 보고 임선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년은 밥을 묵어도 꼭 장군처럼 처묵는다” 

책은 최순실과 관련해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흥미로운 ‘증언’ 두 가지를 기술하고 있다. 첫째는 정윤회와 최순실의 만남의 비화다. 책에 따르면 최순실과 박근혜는 성격도 비슷하게 닮았는데,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몸에 배어 있던 최순실은 비행기 티켓을 직접 끊는 게 싫어 외국에 나갈 때마다 조순제에게 부탁했다. 조순제가 해외여행 일을 하는 사람을 한 명 소개받아 최순실의 여행 일정과 예약을 도와주도록 했는데, 그 사람이 정윤회였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을 조순제가 주선했다는 증언은 처음 공개되는 일화다. 둘째는 전 남편과의 관계다. “최순실의 첫 남편은 이혼 후 역삼동 집으로 찾아와 식모 경화가 등에 업고 있던 딸아이를 데리고 뒤도 안 보고 떠났다. 그 이후로 최순실은 딸의 그림자도 못 보고 살았다.” 책에 실린 이 내용은 조용래씨 어머니 김경옥씨의 증언으로 보인다. 최순실이 전 남편과 관계에서 뒀다고 하는 딸은 어떻게 됐는지 현재까지 전혀 밝혀진 것이 없다. 

최순실과 전 남편 사이 딸의 행방은? 

최순실과 전 남편 정윤회의 결혼과 관련해 최근 안민석 의원 등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증언을 내놨다. 종전에 알려진 둘 다 재혼인 정윤회와 최순실의 결혼연도는 1995년이었다. 그런데 이번 국정농단 게이트 과정에서 새로 밝혀진 것은 이들이 결혼 전인 1992년도에 독일에 유벨(Jubel)이라는 회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말 최순실 은닉재산 조사차 다녀온 안 의원 등은 정·최 부부와 함께 이 회사의 공동대표로 돼 있는 유준호를 만나 증언을 청취했다. 안 의원의 독일 현지조사에 동행한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유준호가 정윤회·최순실을 알게 된 것은 1982년쯤이었고, 알려진 것과 달리 1992년 12월에 강남의 한 호텔에서 두 사람이 결혼했고, 그 자리에 유준호 부부도 참석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다음은 안 전 청장의 말이다. “유씨는 자신들을 제외하고 결혼식에 참석한 친척 20여명 대부분은 최씨 일가로 기억했다. 외부인이 참석하지도 않는데도 결혼식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것이 조금 이상했다. 정씨 쪽 일가는 참석하지 않았는데, 자신들(유씨 부부)이 정씨 쪽 친가 역할을 했다. 이들은 정씨가 대한항공 스튜어드 출신이 아니라 재미사업가라고 최태민이 알고 있는데, 그것을 안 들키게 연기를 해주도록 부탁받았다고 한다.” 안 전 국장에 따르면 이 호텔 결혼식 후 유씨 부부는 신혼여행지인 속초까지 따라갔다. “속초에 역시 최씨 가문의 일원인 장석칠씨의 별장이 있어 그곳에서 묵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강남의 결혼식에 정씨 일가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증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 정윤회씨의 아버지 정관모씨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딸 유연이를 낳고 난 다음에 찾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재차 확인을 위해 3월 8일 아버지 정관모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정씨는 “‘프라이버시’에 관계된 내용에 대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최씨 일가의 국정농단, 특히 40여년간 은닉해온 재산관계에 대한 규명은 이제 검찰의 몫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후 수사가 속개될지는 불확실하다. 안원구 전 국장은 “100여명의 인력이 달라붙어 2년 정도 수사를 해야 어느 정도 실체적인 진실 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씨 일가 재산의 뿌리는 박정희 정권의 불법 통치자금이므로 재산을 추적해 몰수하는 것은 박정희 시대의 청산을 의미하는 역사적인 일이다”라며 “따라서 이후 차기 대통령은 최순실 재산몰수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분명한 의지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가족> 펴낸 최태민 의붓아들 조순제 장남 조용래씨 인터뷰 “탄핵은 부정부패 뿌리뽑는 개혁의 시작점”

/박민규 선임기자

/박민규 선임기자

최씨 일가의 치부를 밝힌다고 했지만 최태민 부인 임선이씨는 친할머니이기도 하다. 책을 쓰게 되기까지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

“현재 홍콩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에 TV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나왔다. 눈물이 나왔다. 돌아가시기 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분 스스로도 자신이 했던 일이 옳은 일이 아니라고 후회하고 있었다. 사실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모 정치인이 이야기한 19금 이야기를 한 주인공이 아니라, 이 사안은 오래된 부정부패다.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일부분이나마 기여하고 싶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최씨 일가의 은닉재산에서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이는 임선이라는 기사를 썼다. 특검 조사도 받은 것으로 아는데, 임선이 쪽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안기부 가계도에는 부산시 사상구 임객범의 장녀라고만 돼 있는데.

“정확히는 모른다. 1남2녀로 알고 있다. 임삼덕이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부산에서 비료장사를 해서 꽤 돈도 번 것으로 안다. 임석불(출)이라는 오빠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석불이, 석불이… 이런 식으로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근혜와 최태민 관계의 미스터리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전여옥이 쓴 책에 실린 증언에 따르면 임선이 상가를 박근혜가 검은 상복을 입고 지켰다고 하는데.

“솔직히 심경이 복잡하다. 나는 유일한 친손자의 장손자인데, 나도 못 간 상가에 와서 남이 울고 불고 했다는 게….”

왜 책 제목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지었나. 책 뒤에 실린 연표를 보니, 1974년부터 두 가족 사이의 경계가 표시되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다.

“아버지(조순제)가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부터 비극적인 가족관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어린시절이지만 그들(최씨 일가)과 좋았던 추억도 있다. 부정부패의 토양에서 해체된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도 몰라야 하는 비극적 가족관계가 만들어진 것은 결국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 누구나 이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돈과 권력의 결과물이 부정부패라면 이 책이 어느만큼 개인이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냐는 것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박근혜와 최씨 일가의 내밀한 관계를 아는 사람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탄핵으로 오래된 부정부패가 발본색원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이 바랐던 것이 뭔지를 생각해야 한다. 탄핵은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다. 투명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는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홍콩에 살고 있는데, 예컨대 홍콩의 ‘염정공서’와 같은 성공적인 공직자 부패수사 전담기구 모델을 들여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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