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사

미국은 아이폰 일자리를 어떻게 잃었나?

728x90
반응형

How U.S. Lost Out on iPhone Work


People flooded Foxconn Technology with resumes at a 2010 job fair in Henan Province, China.

By CHARLES DUHIGG and KEITH BRADSHER

지난 해 2월, 오바마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의 주요 중역들을 만찬 모임에 초대했을 때 각 초대손님들은 대통령께 드리는 질문을 한 가지씩 갖고 왔었다. 하지만 유독 애플의 스티브 잡스만에 대해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국에서 아이폰을 제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애플이 자사 제품을 미국에서 만들었던 시절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거의 미국에서 만들지 않는다. 7천만 대의 아이폰과 3천만 대의 아이패드, 5,900만 가지의 그 외 제품 거의 모두가 지난 해 애플이 판매한 수량인데, 이들 제품의 제조국은 미국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제조설비를 우리나라에 만들 수가 없나요가 대통령의 질문이었다.

잡스의 답변은 단호했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잡스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일자리는 미국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질문은 애플의 신조를 드러냈다 할 수 있다. 사실 해외에서 제조를 하는 이유는 값싼 인력때문만이 아니다. 애플 간부들은 해외 공장의 장점은 유연성과 성실성, 그 외 산업기술이 미국을 넘어섰다는 데에 있다고 믿고 있다. "메이드 인 미국"이 더 이상 애플 제품 대부분에 있어서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애플은 지구상에서 제일 잘 알려지고 제일 칭송받으며 제일 따라하려는 곳이 많은 기업이다. 게다가 애플은 전세계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 애플의 직원 1명당 이익액은 40만 달러로서, 골드먼삭스와 엑슨모빌, 구글을 넘어섰다.

하지만 애플과 같은 여러 첨단기술 업체들이 예전의 유명 기업들처럼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고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경제학자와 정책 결정자들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애플은 미국에서 43,000명을, 해외에 2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1950년대 제너럴모터스가 미국인 노동자 40만 명 이상을, 제너럴 일렉트릭이 1980년대에 수 십만 명을 고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이다. 하지만 애플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70만 명의 엔지니어들이 아이패드와 아이폰, 그 외 애플 제품을 만들고 조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미국인이 아니다. 아시아나 유럽 등지의 해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전자기기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설비에 의존하여 해외 공장에서 애플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지난 해 백악관 경제담당 보좌관이었던 제어드 번스틴(Jared Bernstein)의 말이다. "애플은 미국에서 현재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타내는 사례입니다. 이런 현상이 자본주의의 정점을 의미한다면 정말 우려해야 할 상황이죠."

애플 간부들은 지금 시점에서 해외 외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말한다. 한 전임 중역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 화면 디자인 변경을 갑작스럽게 결정내렸고, 공장을 하루 아침에 완전히 뒤바꿔서 몇 주 안에 출하시킬 수 있던 곳이 중국 공장이라고 한다. 새 디자인의 아이폰은 거의 한밤중에 지구를 돌아 도착하기 시작했다.


A production line in Foxconn City in Shenzhen, China. The iPhone is assembled in this vast facility, which has 230,000 employees, many at the plant up to 12 hours a day, six days a week.

그에 따르면 공장 안에 8천명을 수용하는 기숙사가 있으며, 비스킷과 차 한 잔이 주어지고, 30분 내에 공장 내부로 들어가서 12시간에 걸쳐 유리 화면을 프레임이 맞춰 끼는 작업을 벌인다고 한다. 96시간 안에 이 플랜트는 하루 만 대 이상의 아이폰을 생산한다. 그의 말이다.

"속도와 유연성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 정도에 비견할 미국 공장은 없습니다."

사실 어느 전자 업체에 가 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런 해외 아웃소싱은 회계와 법률 서비스, 은행, 자동차 제조, 제약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 걸쳐 공통사항이 되기도 했다.

애플만이 아웃소싱으로 성공한 사례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단 애플의 경우 기업의 성공이 국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애플의 사례는 미국 기업들의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대한 기여가 어떻게 상호 연관성을 갖는지에 대한 더 넓은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 9월, 노동부의 수석 경제학자인 벳시 스티븐슨(Betsey Stevenson)이 했던 말이다.

"재무적인 이익이 별로라 하더라도 미국인 노동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꼈던 기업들의 인식이 사라졌습니다. 이윤과 효율성이 너그러움을 이겨냈어요."

그러한 인식이 순진하다는 평도 있다.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교육을 잘 받은 노동자들이기는 하지만, 미국은 공장이 요구하는 중간 정도의 기술 인력에 대한 훈련을 멈춰버렸다는 점이 기업들의 주장이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혁신을 지속시키고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있는 곳으로 작업을 이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의 일자리를 장기적으로 더 잃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GM을 포함하여 한 때 자랑스럽던 국내 제조설비가 어떻게 됐는지 보면 되며, 민첩한 경쟁사들이 일어나자 GM 등은 가라앉고 말았다.

뉴욕 타임스가 기사 작성을 위해 광범위한 개요를 애플에 제공했지만, 비밀주의로 유명한 그 회사는 언급을 거부했다.

이 기사는 전현직 애플 직원과 계약자 30여명 이상의 인터뷰에 따라 작성됐으며, 그들 중 다수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익명을 요구했다. 그 외에 경제학자와 제조 전문가, 국제무역 전문가와 기술 분석가, 학계 연구자, 애플 공급업체 직원들, 경쟁자와 기업 파트너, 정부 관료도 포함된다.

애플 간부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세상이 바뀌었으며, 기업의 기여를 일자리 총계로만 측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애플이 미국 내에서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그들은 애플의 성공이 기업가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고 통신사와 애플 제품을 출하하는 사업체와 같은 곳에서의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방식으로 경제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자기들의 임무가 실업률 퇴치는 아니라고도 한다.

‘I Want a Glass Screen’

2007년, 아이폰이 정식 출하되기 약 한 달 쯤 전 이야기이다. 잡스는 관련자들을 사무실로 불러 모았다. 그동안 그는 주머니 안에 아이폰 프로토타입을 갖고 다니고 있었다. 이 때 회의에 참가했던 사람에 따르면 잡스는 화난 모습으로 아이폰을 들면서 플라스틱 스크린의 자그마한 흠집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보여줬다. 그 후 잡스는 자신의 열쇠를 청바지에서 꺼냈다. 그가 날카롭게 말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이 주머니에는 열쇠도 있죠. 흠집이 가는 제품을 팔고 싶지 않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흠집이 나지 않는 유리의 사용이었다. "유리 화면을 원합니다. 6주 안에 완벽하지기 바랍니다."

한 간부는 방을 떠나자마나 중국 심천(深圳)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완벽함이라는 단어까지 잡스가 말했다면 갈 곳이 그곳밖에 없었다.

지난 2년간 애플은 퍼플2(Purple 2)라는 코드명의 프로젝트를 작업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똑같은 의문이 계속 나타났었다. 휴대폰을 완전히 다시 상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고의 품질로, 가령 흠집이 나지 않는 화면을 가지면서도 충분한 이윤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빠르고 저렴하게 수 백만 대 물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거의 매번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미국 바깥에 있었다. 버전 별로 부품이 다르기는 하지만 아이폰 안에 들어가는 부품은 수 백 가지이며, 90%는 해외에서 조립된다. 진보적인 반도체는 독일과 대만, 메모리는 한국과 일본, 디스플레이 패널과 서킷은 한국과 대만, 칩셋은 유럽, 희금속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이 모두를 하나로 조립하는 곳은 중국이었다.

초창기 시절 애플은 제조를 미국 이외의 곳에서 하려하지 않았었다. 애플이 1983년 매킨토시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를 사례로 들자면, 당시 잡스는 매킨토시가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 자랑했었다. 1990년 잡스가 넥스트(애플이 결국 인수하게 된다)를 운영하고 있을 때에도 잡스는 기자에게 "저는 컴퓨터만큼이나 넥스트 공장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라 말했었다. 2002년 애플의 최고 중역들은 본사와 2시간 거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엘크그로브(Elk Grove)의 아이맥 플랜트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곤 했었다.

그러나 2004년, 애플은 제조설비를 해외로 대거 전환시켰다. 그 결정을 내린 사람이 잡스가 사망하기 6주일 전인 지난 8월 애플 CEO로 오른 티모시 쿡이었다. 미국 전자업체 대부분은 이미 제조를 해외로 돌린 상태였고, 당시 힘겨운 상황이었던 애플은 이익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내야 했었다.

부분적으로 아시아의 중견 수준 노동력 임금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아시아가 더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건비만으로 애플이 중국에 투자하지는 않았다. 기술 기업 입장에서 인건비는 부품조달과 수 백여 업체로부터 부품과 서비스를 확보하는 등의 공급망 관리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 전임 애플 간부에 따르면 쿡이 아시아에 집중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아시아 공장은 더 빠르게 물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으며, 아시아의 공급망은 미국을 능가했습니다. 그 점에서는 우리가 경쟁이 안 되더군요."

잡스가 2007년, 유리 화면을 요구하자마자 중국 공장의 장점이 드러났었다.

그동안 휴대폰 업체들은 유리의 사용을 피했다. 유리를 사용한 정밀한 절삭가공이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었다. 애플은 이미 미국 기업인 Corning을 선별하여 강화유리 거대 패널을 제조하기 시작했지만 이 패널을 수 백만 개의 아이폰 화면으로 어떻게 잘라내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다. 일단 비어 있는 절삭 플랜트를 찾은 중간 수준의 엔지니어를 투입하여 수 십만 조각의 유리로 실험을 벌이는 등, 준비 과정에만 상당한 비용을 지출했다.

그리고 나서 중국 공장의 경매가 있었다.

애플의 한 전직 간부에 따르면 애플 팀이 도착했을 때 중국 플랜트 소유주는 이미 새로운 설비를 건설하고 있었다. "혹시 저희에게 계약을 줬을 경우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중국 정부는 여러가지 산업의 비용을 보조해왔으며, 그러한 보조금은 유리-절삭 설비에도 들어가 있었다. 이미 애플에게 무료로 보여줄 수 있는 유리 샘플로 가득차 있는 창고도 있었으며, 중국 공장주들은 엔지니어들을 거의 무료로 배치시킬 수 있었다. 공장 안에 기숙사가 있어서 하루 24시간 호출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 플랜트는 애플과 계약을 성사시켰다. 또 다른 전직 애플 고위 간부의 말이다.

"전체 공급망은 현재 중국에 있습니다. 고무마개 천 개가 필요하다고요? 옆의 공장에 있습니다. 나사 백 만 개가 필요하다고요? 한 블럭 뒤의 공장에 있습니다. 좀 다른 나사가 필요하다고요? 세 시간이면 됩니다."

In Foxconn City

그 유리 공장에서 8시간 걸려 차로 나오면 비공식적으로 폭스콘 시(Foxconn City)라 불리는 도시가 나온다. 중국이 근면한 노동자로 미국을 능가한 증거가 바로 그곳이다.

미국에는 폭스콘 시티와 같은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의 설비에는 23만 명의 고용자가 있으며 일 주일에 6일을 일한다. 종종은 플랜트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폭스콘 노동력 중 1/4은 회사 안에서 살고 있고, 일단 17달러 이하를 벌어들인다. 한 애플 간부가 플랜트의 큰 변화때문에 폭스콘 시에 도착했을 때 그의 차는 노동자의 물결때문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규모를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폭스콘은 노동자들의 이동을 조절하기 위한 가드만 거의 300명을 고용하고 있다. 그래야 서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 내부의 구내식당은 하루 평균 3톤의 돼지고기와 13톤의 쌀을 요리하며, 공장에는 티끌 하나 없지만 내부의 공기는 연기와 담배 악취로 인해 텁텁하다.

폭스콘 테크놀로지(Foxconn Technology)는 아시아와 동유럽, 멕시코와 브라질 등 십여 곳에 공장을 갖고 있으며, 아마존과 델, HP, 모토로라, 닌텐도, 노키아, 삼성, 소니와 같은 전세계 가전제품의 약 40%를 조립한다. 2010년까지 애플의 세계 공급주문 담당자였던 제니퍼 리고니(Jennifer Rigoni)의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임무가 정확히 어땠는지 알려주기를 거부했다.

"하룻 밤 사이에 3천 명을 고용할 수 있는 곳이에요. 하룻 밤 사이에 3천 명을 고용하고 그들보고 기숙사에 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플랜트가 있나요?"

한 전직 애플 간부에 따르면 2007년 중순, 수 개월에 걸친 실험 끝에 애플 엔지니어들은 드디어 아이폰 화면에 사용할 수 있는 강화유리의 완벽한 절삭방법을 알아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절삭유리가 그날 밤으로 폭스콘 시에 도착했다. 그 때 관리자들은 노동자 수 천 명을 깨웠고 그들은 곧바로 유니폼(남자는 흰색과 검정 셔츠이고 여자는 빨간색)으로 갈아입고 손으로 아이폰을 조립하기 위해 바로 공장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3개월간 애플은 백 만 대의 아이폰을 판매했고, 그 이후 폭스콘은 2억 대가 넘는 아이폰을 조립했다.

폭스콘은 특정 고객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폭스콘의 성명서를 보자.

"우리 회사가 고용하는 노동자는 노동권을 보호하는 중국정부법에 따른 계약조건이 명시돼 있는 계약서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폭스콘은 우리의 노동자들을 매우 심각하게 대할 책임을 지며, 백 만 명이 넘는 노동자의 안전과 긍정적인 환경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폭스콘은 또한 애플의 전직 간부가 말해준 밤에 노동자를 깨워서 조립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든 노동자는 컴퓨터화된 타임카드를 갖고 있으며, 승인받지 않은 시간에는 공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습니다." 폭스콘은 이동이 아침 7시, 아니면 저녁 7시이며 일정에 변화가 생길 경우 적어도 12시간 전에 통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폭스콘 노동자들은 폭스콘 측 주장에 반박하기도 했다.

중국 공장의 또 다른 장점은 중국이 미국은 도저히 매치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엔지니어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애플 간부들은 아이폰 제조에 들어갈 20만 명의 어셈블리-라인 노동자를 관라하기 위해 필요한 엔지니어를 8,700명으로 추측했다. 애플의 분석가들은 미국 내에서 그런 정도로 실력있는 엔지니어를 많이 찾아내려면 9개월 정도는 걸릴 것이리라 예측했다.
중국에서는 15일 걸렸다.


In China, Lina Lin is a project manager at PCH International, which contracts with Apple. "There are lots of jobs," she said. "Especially in Shenzhen."

MIT의 부학장인 마틴 슈미트(Martin Schmidt)의 말이다. "애플과 같은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플랜트를 세우려면 일단 기술인력 확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엔지니어는 고등학교 이상은 돼야 하지만 대학교 학부 졸업학위까지 필요하지는 않는 수준이다. 그 정도 수준의 미국인들을 찾기는 어렵다. 슈미트의 말이다. "좋은 일자리입니다만 미국은 그런 수요에 맞춰주지 못합니다."

물론 아이폰을 보면 미국에서만 만드는 부분도 없지 않다. 가령 아이폰 소프트웨어와 혁신적인 마케팅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애플은 최근 북-캐롤라이나에 5억 달러 어치의 데이터센터도 구축해 놓았다. 아이폰 4와 4S에 들어가는 중요한 반도체의 경우 한국 삼성이 소유한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설비들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지는 않는다. 애플의 북-캐롤라이나 데이터센터를 예로 들면, 정규직 직원이 100명 밖에 안 되고, 삼성의 텍사스 공장의 직원은 2,400명에 불과하다. 1990년 애플을 떠나기 전까지 애플의 제품개발과 마케팅을 관장하고 있던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ee)의 말이다.

"백 만대를 팔다가 3천만 대를 판다고 해서 더 많은 프로그래머를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트위터와 같은 신생 기업 모두 많이 고용할 필요는 없는 회사들이죠."

미국 내에서 아이폰을 만들 경우 비용에 얼마나 더 추가될지 추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술제품 제조에 있어서 인건비는 사실 작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학계나 제조 전문가들 추측에 따르면 아이폰 대당 가격에 65달러 정도 추가되리라 말한다. 아이폰 대당 애플이 받는 마진이 수 백 달러 정도 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아이폰을 미국 내에서 만들어도 애플이 받아들일 보상은 상당하다.

그렇지만 많은 측면에서 그러한 계산은 의미가 없다. 미국에서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인 고용 이상의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세계 경제의 전환이 필요할 정도이다. 애플 간부진은 애플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미국인 노동자가 충분하지 않으며, 충분한 속도와 유연성을 제공할 공장도 없다고 본다. Corning처럼 애플과 협력하는 기업들도 해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이폰용 유리 제조는 켄터키 주에 있는 Corning의 공장을 되살렸으며, 오늘날 아이폰에 쓰이는 유리 다수는 여전히 그곳에서 생산된다. 아이폰이 성공한 이후로 Corning은 애플 디자인을 따라하려는 여러 업체들의 주문까지 받아냈으며, Corning의 강화유리 판매는 해마다 7억 달러 이상 더 늘어났고 주문을 받아내기 위한 고용도 천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장이 확대되기는 했어도, Corning의 강화유리 제조량 상당수는 일본과 대만 공장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Corning의 부사장이자 수석재무담당자(CFO)인 제임스 플로스(James B. Flaws)의 말이다.

"우리의 고객은 대만과 한국, 일본, 중국에 있습니다. 여기서도 유리를 만들어서 배로 보내면 그만이지만 그럴 경우 35일이 필요하죠. 비행기로 운송할 경우에는 10배가 더 비쌉니다. 그래서 유리공장을 조립공장 옆에 세웠죠. 해외에 있습니다."

Corning은 161년 전 미국에서 설립됐고 본사는 여전히 뉴욕에 자리잡고 있다. 이론적으로 이 회사 또한 모든 유리를 미국 국내에서 생산할 수는 있다. 플로스의 말이다. "그럴 경우 업계구조를 완전히 뒤바꿔야 할 겁니다. 가전제품은 이제 아시아의 사업이에요. 미국인으로서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제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시아는 지난 40년간의 미국처럼 되었어요."

Middle-Class Jobs Fade

캘리포니아 엘크그로브에 있는 애플의 제조설비에 처음 에릭 사라고자(Eric Saragoza)가 발을 딛었을 때 그는 자신이 엔지니어의 천국에 들어서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가 1995년이었다. 새크라멘토 가까이에 있는 이 공장 노동자는 1,500명이 넘었으며, 공장에는 로봇과 서킷보드를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 각 단계별로 있던 사탕-색깔의 아이맥의 만화경이었다. 엔지니어로서 사라고자는 빠르게 승진했으며, 엘리트 진단팀에 속하게 됐다. 그의 연봉도 5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와 그의 아내에게는 아이가 셋 있었고, 풀이 있는 집을 구매했다.

"마침내 학비 들인 것이 결과를 내는구나 싶었어요. 세상은 뭔가 만들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가전제품 사업도 변화하고 있었다. 유명도가 하락중이었던 애플도 자신을 다시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일단 한 가지 초점은 제조설비의 개선이었다. 사라고자가 일을 시작한지 몇 년 후, 그의 상사들은 캘리포니아 공장과 세계 다른 곳의 공장 간의 차이가 어떤지를 설명해줬다. 부품가를 제외시킬 때, 1,500달러 짜리 컴퓨터를 엘크그로브에서 만들 경우 22달러, 싱가포르에서 만들 경우 6달러, 대만에서 만들 경우 4.85였다. 즉, 해외이전의 주된 이유가 인건비는 아니었다. 재고비용, 완성에 걸리는 시간 등이 문제였다. 사라고자의 말이다.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토요일에도 나와야 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게는 가족이 있었어요. 애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요."

현대화는 특정 일자리를 변화시키거나 사라지게 하기 마련이다. 미국 경제가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바뀌고, 그 밖에 다른 산업으로 이주하면서 농부들은 제철 노동자, 영업사원, 중간 관리자가 되어 왔다. 이러한 변동은 여러가지 경제적인 이익을 수반했으며 일반적으로 발전을 할 때마다 미숙련 노동자라 할지라도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위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가졌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중간 수준의 소득을 받는 일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그러하다. 식당이나 콜센터, 병원, 임시직 등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새로 생겨나고 있지만, 이런 일자리를 가진 후에 중산층으로 진입할 기회는 보다 줄어들었다.

대학 학위를 갖고 있는 사라고자조차도 이러한 경향에 취약했다. 처음에는 엘크그로브의 일상적인 일이 해외로 넘어갔지만 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후로는 애플에게 미래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했고, 진단 엔지니어링 작업은 싱가포르로 넘어갔다. 그리고 재고를 맡아 오던 중간급 관리자들은 해고됐다. 인터넷 연결만 있으면 그들 모두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라고자는 비숙련 노동자의 위치로 있기에 너무 비쌌다. 그는 또한 상위 관리직으로 나갈 자격에도 미달했다. 2002년 간밤의 변화 이후, 그는 사무실로 호출받았다. 그는 해고됐고 당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 일을 했다. 그는 기술직으로 돌아오려 노력했지만 엘크그로브를 "실리콘밸리의 북부(north)"로 칭했던 애플은 엘크그로브의 플랜트를 애플케어 콜센터로 전환시켰고, 콜센터의 신규직원 시간당 급여는 12달러 정도였다.

실리콘밸리에서에서 구직기회는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잘 진행되지 못했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구직자는 아이가 없는 30대였어요." 현재 48세인 그는 다섯 명으로 이뤄진 집의 가장이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수 개월간 노력한 끝에 그는 절망감을 느꼈다. 심지어 교사 일도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소비자에게 돌려보내기 전에 확인을 하는 임시적인 에이전시에 자리를 잡았다. 매일같이 사라고자는 한 때 엔지니어로 일했던 곳에 운전하고 가서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그 외 수당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서 유리화면 수 천 개를 닦고 헤드폰을 꽂아 오디오 단자를 확인하고 있다.

Paydays for Apple

애플의 해외영업과 운영이 확대되면서 최고 간부들이 받는 수당도 증가됐다. 지난 회계년도 애플의 간부진 보상액은 1,080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미시간과 뉴저지, 메사추세츠 주의 예산을 합친 액수보다 더 컸다. 2005년 이후 애플의 주식분할이 있었고, 그 이후로 애플 주가는 주당 45달러에서 427달러 이상 상승했다.

그렇게 창출된 부의 일부는 주주에게 흘러갔다. 애플 주식은 제일 널리 분산돼 있으며, 오르는 주가는 개인 투자자 수 백만 명과 퇴직연금 등의 연금투자자에게 혜택을 준다. 물론 애플 직원들에게도 보상은 돌아갔다. 지난 해 연봉에 더해서 애플 직원과 관리자들은 20억 달러 어치의 자사주를 받았고, 여기에 옵션까지 더하면 14억 달러가 더 추가된다.

하지만 제일 큰 보상은 애플의 최고 간부진에게 돌아갈 때가 종종 있다. 애플의 CEO인 쿡은 지난 해 10년간 소유할 수 있는 조건의 주식을 오늘날의 주가로 받았으며, 그 가치는 4억 2,700만 달러에 이른다. 그의 연봉 또한 140만 달러로 증가했다. 애플의 재무보고에 따르면, 2010년의 경우 쿡의 보상 패키지는 5,900만 달러였다고 한다.

애플에 가까운 제보자에 따르면 애플의 보상기준은 애플이 그동안 미국과 세계에 끼친 가치로 볼 때 공정하다고 한다. 회사가 자라날수록 애플은 제조업도 포함하여 국내 고용자 또한 늘려왔다. 지난 해 애플의 미국 내 고용자는 8천 명이 늘었다.

다른 업체들은 콜센터를 해외로 돌리는 반면 애플은 미국 내에 콜센터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한 관측통에 따르면 애플 제품의 판매는 미국 내 다른 업체들의 고용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가령 페덱스(FedEx)와 UPS 둘 다 애플의 출하량때문에 미국 내 고용자 수를 늘렸다고 한다. 비록 애플의 허락 없이 특정 수치를 제공할 수는 없다면서 더 이상의 코멘트는 거절했다.

현직 애플의 한 간부에 따르면 이렇다. "중국 노동자를 사용한다고 비판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인력을 더 이상 내놓지 않고 있어요."

더군다나 애플은 내부적으로 소매점을 세우고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등, 좋은 미국인 일자리도 매우 많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아이패드 테스팅 일자리를 2개월간 한 후 사라고자는 일을 그만뒀다. 급여가 너무 낮아서 그만 두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 10월의 어느 날, 사라고자는 자신의 맥북 앞에 앉아 또 다른 이력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했고, 그 이력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무소에 도착했다. 중국 심천에 있는 PCH International 프로젝트 매니저인 리나 린(Lina Lin)에게 보낸 것이었다. PCH는 특히 아이패드의 유리 화면 보호 케이스와 같은 악세사리 생산을 애플과 협력하고 있다. 그녀는 애플 직원이 아니다. 하지만 애플 제품 생산과 관련하여 그녀는 애플과 긴밀하게 통합돼 있다.

린은 사라고자가 애플에서 받았던 급여보다 약간 덜 받고 있다. 텔레비전 시청으로 배운 영어가 유창하며 중국 대학 출신인 그녀와 그녀 남편은 매달 은행에 월급의 1/4을 저축하고 있다. 그들은 1,080 제곱미터 짜리의 아파트에 시동생, 아들과 같이 살고 있다. 린의 말이다. "일자리는 매우 많습니다. 특히 심천에는요."

Innovation’s Losers

지난 해 잡스 외 주요 실리콘밸리 인물들과 오바마 대통령 간의 저녁 식사 때 일이다. 저녁을 마친 그들은 떠나려고 모두 일어났으며, 대통령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왔다. 잡스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도 대통령보다는 적었지만 꽤 있었다. 그의 병세가 악화됐기에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잖나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국 대통령과 잡스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 둘을 같이 둘러싸게 됐고 잡스는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정말 위대해요. 하지만 솔루션에 대해 충분히 얘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만은 우려스럽습니다."

가령 저녁식사를 할 때 실리콘밸리의 중역들은 정부가 비자 프로그램을 개혁해서 외국인 엔지니어를 더 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었다. 대통령이 기업에게 "면세기간(tax holiday)"를 부여해서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국내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래야 일자리를 미국에서 더 만들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잡스는 정부가 미국인 엔지니어를 더 많이 훈련시키는데 도움을 줘야 애플의 숙련 엔지니어링 제조설비를 미국에 다시 세울 날이 올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주장의 효과와 유용성에 대한 논쟁은 많으며, 예기치 못한 개발로 인해 경제가 바뀔 때도 있다. 사실 예전에도 미국의 실업상황에 대한 개탄은 있었다. 가령 인터넷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198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래픽 디자인 학위가 더 좋은 선택이고 전화기 수리 연구는 이제 시대가 저물었다는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앞으로도 내일의 혁신을 가지고 수 백만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지난 10년간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반도체 제조, 디스플레이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수 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지만, 이들 사업 다수는 미국에서 시작했고 고용의 다수는 해외에서 이뤄졌었다. 미국 내 주요 설비를 문닫은 기업들은 중국에서 설비를 열었다. 이들은 설명을 위해 자신들이 주주들을 주고 애플과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애플의 성장세와 이윤마진에 대해 경쟁을 벌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말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자인 로렌스 캣츠(Lawrence Katz)의 설명이다. "새로운 중산층 일자리가 다시 나타날 겁니다만, 40대가 돼서 그런 기술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예 새로운 졸업생이 가져가지 않을까요? 그러면 혹시 다시는 중산층으로 되돌아갈 수 없잖을까요?"

여러 업계의 중역들은 잡스와 같은 인물때문에 혁신의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한다. GM의 경우 자동차를 다시 디자인하는 데에 5년 정도가 걸렸었다. 하지만 애플의 경우 4년 동안 아이폰 모델을 다섯 가지 선보였으며, 각 버전마다 속도와 메모리가 두 배로 늘어나면서 가격은 더 떨어뜨렸다.

오바마 대통령과 헤어지기 전, 잡스는 자기 아이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상당히 세세한 그래픽이 들어 있는 드라이빙 게임이었다)을 보여줬다. 그의 아이폰은 방의 부드러운 조명을 비춰 보였다. 다른 중역들(그들의 재산을 합치면 690억 달러를 넘는다)도 잡스 어깨너머 그 게임을 쳐다봤다. 모두가 동의하듯 그 게임은 정말 훌륭했다.

그리고 물론 화면 상에는 자그마한 흠집도 전혀 없었다.

David Barboza, Peter Lattman and Catherine Rampell contributed reporting.



A version of this article appeared in print on January 22, 2012, on page A1 of the New York edition with the headline: How U.S. Lost Out On iPhone Work.

Apple, America and a Squeezed Middle Class - NYTimes.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