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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안 낸 스마트폰 할부금, 소비자가 1조5000억 '십시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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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 3사, 5년간 할부신용보험료로 1조4951억 걷어" 국감서 지적
이통사 "고객과 맺은 계약에 근거…문제 없다" 과기부·공정위도 같은 의견 내
신용현 "해외에선 흔치 않은 사례…할부 판매 따른 위험 이통사가 부담해야"
은행 대출을 받은 사람이 대출 원리금을 오랫동안 못 갚으면 그 손실은 누가 부담할까.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은행은 손실예상비용(대손충당금)을 설정해 스스로 손실을 감당한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로부터 스마트폰을 할부로 산 고객이 할부대금을 못 갚았을 때는 성실히 할부금을 갚고 있는 다른 고객이 대신 갚아주게 된다. 이렇게 최근 5년간 고객이 갚은 금액만 총 1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중앙일보가 29일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과 KT·LG유플러스 등 국내 이통 3사가 최근 5년 동안 (2012년~2016년) 할부신용보험료 명목으로 고객으로부터 걷은 돈은 총 1조4951억원, 지난 한 해에만 2117억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할부신용보험은 이통사가 일부 신용이 좋지 않은 고객으로부터 할부금을 떼일 때를 대비해 SGI보증보험에 드는 보험이다. SGI보증보험도 이를 "채무자인 이통사가 계약당사자가 돼 자신의 신용거래 위험을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이라고 설명한다. 보험계약자는 이통사이지만, 돈은 고객이 내왔다. 고객이 단말기 할부금을 내지 못해 이통사에 손실이 발생하면 SGI보증보험이 그동안 받은 보험료로 이 손실을 메워 주게 되는데, 이 보험료(연체보상금) 재원의 대부분이 단말기 가입자들이 내는 '할부신용보험료'인 것이다. 최근 5년간 SGI보증보험은 이통사에 총 1조6469억원을 연체보상금으로 지급했는데, 이중 1조4951억원을 소비자가 대납해 온 셈이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단말기를 할부로 사면 1만~4만원 상당의 돈을 채권보전료 명목으로 한꺼번에 냈다. 그러나 이통사들은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고가의 스마트폰이 보편화하자,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이 채권보전료를 폐지했다. 그러나 이 돈은 2년의 약정기간 동안 나눠 내는 '할부신용보험료'로 바뀌었을 뿐이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최근 5년간 단말기 할부금의 연체율은 3.3%였다. 1000명 중 33명이 납부를 하지 않고 있는 할부금을 나머지 967명이 대신 내주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지난해 3월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가입자의 62%가 휴대폰을 개통할 때 판매원으로부터 할부 비용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결국 성실히 할부금을 갚는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사람이 갚지 못하고 있는 휴대폰 구입 비용까지 대신 내주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단말기 할부 판매에 따른 비용을 고객이 부담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기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6월 미국 이통사 버라이즌과 AT&T, 일본 도코모 등 주요 5개국 이통사 조사 결과, 세금 외에 고객이 부담하는 별도의 할부 이자나 수수료·보험료 등은 흔치 않았다는 것이다. 장은덕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애플 아이폰을 할부로 구입할 때만 일부 수수료가 발생하지만, 그 외에는 소비자가 이통사와 체결하는 약관이나 청구서에서 따로 부과되는 비용은 확인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통사들은 "고객에게 할부신용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들이 할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대가로 정당하게 이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가계 통신비 부담 인하를 주도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통사와 고객 사이의 사인간 계약으로 부담 주체를 정할 수 있다"고 밝힌 공정거래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통신업계 주장에 힘을 보탰다. 할부신용보험료는 이통사가 고객이 단말기 할부 서비스를 받게 하기 위해 이통사가 대신 보증보험을 들어 준 것이라는 통신업계 측 주장을 정부 당국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용현 의원은 "2000년 이전에는 이통사가 단말기를 할부로 판매하는 것도 금지돼 있었지만, 통신업계 요구를 수용해 이를 허용하게 됐다"며 "할부 판매 허용으로 가입자를 늘릴 수 있었던 만큼, 그에 따른 위험 부담도 업계가 지는 게 맞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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