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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는 왜 몰락했나] 일본 명문기업 ‘원전 독배’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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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업 부실로 그룹 해체 위기 … 부정회계 사태가 침몰의 신호


▎지난 연말 원자력 발전 사업에서 거액의 손실을 기록한 게 드러난 도시바는 그룹이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도시바. 이 역사 깊은 일본의 명문기업이 사실상의 해체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도시바는 긴급회견을 열고 원자력 부문 자회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WH)가 수천억엔의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날 회견엔 쓰나카와 사토시 사장, 히라타 마사요시 최고재무책임자(CFO), 하타자와 마모루 원자력 담당 부사장이 출석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세 내용에 대한 물음에 하나같이 “조사 중입니다”를 반복했다. 중요한 내용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실적이 빠르게 회복되는 가운데 발생한 대규모 손실은 그룹을 단숨에 위기로 몰아넣었다. 주요 신용평가회사는 다음날인 28일 일제히 도시바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의 하향은 새로 돈을 융통하는 것과 변제 기한을 연장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1월 10일 도시바 본사에서는 주요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가 열렸다. 오후 3시 시작된 이날 설명회엔 약 200명의 금융관계자가 모였다. 도시바는 대규모 손실의 경위를 설명하고 신용등급 하락에 대해 사과한 다음, 대출 거래 잔고 유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불안감은 쉬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확하지 않았던 손실액 추정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 3000억엔(약 3조원)이 어느새 7000억엔(7조원)이 됐다. 심지어 아직도 추정치일 뿐이다. 2015년 도시바의 자기자본은 3288억엔, 자기자본 비율은 6.1%에 불과하다. 반도체 사업의 이익 전망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대책 없이 원전 사업 손실을 올해 재무제표에 계상하면 2016년 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에 약 5000억엔 규모의 최종적자가 확실하다. 이럴 경우 도시바는 자본잠식(채무초과)에 빠지고, 주식시장에서도 도쿄증시 1부에서 2부로 강등된다.

궁지에 몰린 도시바가 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자산 매각을 통해 자력으로 실탄을 마련해야 한다. 자산 매각의 핵심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다. 도시바 전체 이익 대부분을 벌어들이는 메모리 사업의 가치는 1조~2조엔 정도로 추산될 정도다. 일부만 매각해도 수천억엔의 돈을 마련할 수 있다. 애초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을 분리시키고, 지분 20% 정도를 팔 생각이었지만 이 구상은 이미 물 건너갔다. 이런 회사에 20%가량의 지분 투자를 할 투자자가 있을 리 없다. 그러자 아예 지분을 50% 이상 넘길 수 있다고 발표했다.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고 살 길부터 찾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궁지를 벗어나기엔 충분하지 않다.

둘째, 원전 사업과 결별해야 한다. 아무리 자금을 쥐어짜내도 밑 빠진 독이라면 의미가 없다. 대처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적자를 내고 있는 원전 사업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부터 짚어보자. 문제의 진원지는 2008년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서던전력과 스카나전력으로부터 수주한 원전 건설 프로젝트다. 이 건설 공사와 관련된 전체 비용을 조사한 결과, 예상을 훨씬 웃도는 추가 비용이 이번에 밝혀진 것이다. 하타자와 원자력부장은 “2건의 프로젝트 비용은 2조엔 규모에 달한다”고 진술했다. 열쇠는 지난 2015년 10월 도시바가 발표한 웨스팅하우스의 스톤앤웹스타(S&W) 인수가 쥐고 있다.

도시바 앞에 놓인 세 가지 난제


원래 S&W는 미국 대형 엔지니어링 업체인 CB&I의 건설 부문 자회사다. 웨스팅하우스와는 2008년부터 원자력발전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한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다. 웨스팅하우스가 발전소를 설계하고, S&W가 건설을 담당하는 식이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웨스팅하우스는 발전소 설계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공사가 지연됐고, 프로젝트 비용이 예산을 웃돌게 됐다.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타협을 보지 못했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웨스팅하우스와 S&W, 발주회사까지 개입된 소송전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2015년 여름 웨스팅하우스는 이해관계 해소를 위해 S&W를 인수하기로 CB&I와 합의한다. 2015년 10월 정식 발표가 이뤄졌고, 언론도 소송이나 미해결 분쟁이 모두 정리됐다고 보도했다. 도시바 역시 골칫거리가 사라지고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체제가 갖춰졌다고 어필했다. 그러나 일본의 회계 평론가인 호소노 유지는 웨스팅하우스가 인수에 합의한 2015년 여름이라는 시기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이 시기는 언론이 그해 초 발생한 대규모 회계부정 사태의 원인을 웨스팅하우스 손실을 제때 반영하지 않은 데에서 찾기 시작한 때다. 그는 “만약 소송에서 어떤 형태로든 판결이 나면 웨스팅하우스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이미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다”며 “이를 막기 위해 서둘러 분쟁을 끝낸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바는 S&W 인수 과정에서 발주회사인 전력회사가 납기 지연이나 공사비 증액을 납득했다고 설명한다. 이번 긴급 회견에서도 “전력회사와의 관계는 상당히 양호하며 완성이 끝없이 지연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사업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웨스팅하우스가 S&W를 산하에 둔 것만으로 전력회사와의 분쟁이 단숨에 해소되고, 공사비 증액까지 순순히 인정해 줬다는 점이다. 아마 웨스팅하우스가 전력회사 측에 비공식적으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으리란 의심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공사비가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일정액을 전력회사가 부담하지만 그 이상의 추가비용이 발생한 경우는 웨스팅하우스가 책임을 진다는 약속이다. 지난 긴급회견에서 “전력회사의 공사비는 고정하고 그 외는 웨스팅하우스가 부담하기로 했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왔지만, 도시바 측은 “현재 조사중”이라고 대답을 회피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도 규제 강화에 따른 설계 변경이나 공사 지연이 발생할 때마다 추가 손실을 피할 수 없다. 현재의 재무 상황을 고려한다면 도시바가 원전 사업을 더 끌고 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메모리 반도체를 떼 내고 자본 확충을 도모해도 원전 사업을 유지하는 한 새로운 손실이 발생할 때마다 위기에 처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란 의미다.

해체의 여정 시작


셋째,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와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여러 자산매각을 통해 설령 자본잠식을 피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건 계속 부담이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증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바로서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15년 9월 도시바를 특설주의시장항목(한국의 투자유의종목과 유사)으로 지정했다. 이에 도시바는 지난해 말 내부 관리체제 확인서를 도쿄증권거래소에 제출해 다시 심사를 받았다. 그러나 자회사에서 매출을 부풀려 계상한 것이 드러나 지난해 12월 19일 지정해제가 보류됐다. 3월 15일 이후 또 확인서를 제출해 재심사를 받을 예정인데 여기서도 외면받으면 상장 폐지가 결정된다. 특설지정인 채로 공모 형태의 증자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금융회사 등에서 돈을 끌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조차 쉽지 않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위기 신호가 많았다. 2015년 대규모 부정회계 사실이 발각되자 도시바는 큰 경영 혼란에 빠졌다. 같은 해 5월로 예정돼 있던 2014년 결산 발표는 9월로 늦춰졌고, 사장을 포함한 8명의 이사가 사임하는 이례적인 사태로 발전했다. 9월에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선 이후에도 침체는 계속됐다. 11월엔 사업이 순조롭다고 설명했던 웨스팅하우스가 도시바 인수 후 1156억엔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키요타 아키라 일본거래소 CEO는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근본적으로 기업의 경영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때도 도시바는 그룹 전체의 실적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2015년 최종 실적엔 웨스팅하우스의 손실 2600억엔이 반영됐다. 도시바는 또 변명했다. 웨스팅하우스를 포함한 원전 사업 전체의 사업성은 여전히 긍정적이고, 신용등급 하락에 따라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난 것이 손실의 원인일 뿐이라고 했다. 2015년은 원자력과 더불어 반도체 등 다른 사업도 부진했다. 결국 7087억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의료기기 자회사를 팔아 2500억엔 가량을 메웠지만 최종 적자가 4600억엔에 달했다. 투자자들은 여기가 바닥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2016년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정리해고 효과에다 반도체 메모리 사업이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실적이 착실히 회복됐다. 11월 발표한 반기 결산에선 연간 1450억엔의 흑자를 전망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원전 사업 부실 사태 하나로 끝났다.

100년이 넘는 역사와 19만 명의 직원. 거래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도시바의 한 중견사원은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특히 영업 부문에선 거래처로부터 앞으로의 납품이나 결제일, 사업 안전성 등에 관해 질문을 받아도 대답을 할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일본 경제를 지탱해온 한 명문기업이 해체의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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