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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다시 돌아온 이순신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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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은 중국풍에...칼은 일본도라...

다시 만들자]
"갑옷 중국식, 칼은 일본도… 항복할 때나 칼 오른손에… 日 해군 기념비와 비슷"

[보존하자]
"많은 고증 거쳐서 제작, 사실보다 의미 강조한 것… 예술적 가치도 충분하다"보수를 위해 광화문광장을 떠났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40일 만에 기개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지난달 14일 경기 이천으로 옮겨져 결함·균열 부위 수리와 내부 보강, 세공, 색상 입히기 등 대대적인 보수를 마친 동상은 22일 밤 광화문광장에 도착, 설치작업을 마치고 23일 아침 시민들 앞에 다시 설 예정이다.

이 작업을 위해 23일 오전 1∼7시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에서 시청 방향 3차로 도로 교통이 통제된다. 동상이 다시 설치되는 23일 낮 12시 승전고(勝戰鼓) 타고, 환영시 낭송, 해군 의장대와 군악대 공연, 강강술래 공연 등 환영행사도 열린다.

보수를 마치고 23일 광화문광장에 다시 서는 이순신 장군 동상(왼쪽)과 진도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서울시·진도군청 제공

1968년 4월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은 42년 만에 처음 치료를 받고 다시 제자리를 찾았지만 이러저러한 문제점 때문에 다시 제작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동상 건립 당시부터 제기되어온 각종 논란이 이번 개보수를 계기로 다시 불거져 나온 것. 문상모 서울시의원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바른 정체성을 가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제작해야 한다"는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서울시는 동상을 다시 제작하는 방안을 놓고 각계 전문가들로 이뤄진 자문위원회를 구성,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안이 실현될 경우 42년간 광화문을 지킨 그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 이순신 장군 동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둘러싼 5가지 논란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 사무총장 혜문 스님이 정리한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5가지다. 우선 이순신 장군이 찬 칼이 일본도이며, 오른손잡이인 이순신 장군이 왼손이 아닌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항복하는 장수의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갑옷은 중국식인데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표준영정이 아닌 조각가를 닮았고, 동상 앞에 있는 북이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데 누워있는 것도 문제라는 주장이다.

김용철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동상과 거북선, 좌대 등의 전체 조형물 형태와 구성 원리가 일본 미야자키현에 있는 일본 해군 발상지 기념비와 흡사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기념비는 2차 세계대전 때 없어졌다가 1962년 복원됐는데, 이순신 장군 동상이 1968년 만들어졌으니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충무공(이순신 장군) 동상이 충무로에 세워지지 않고, 광화문(세종로)에 들어선 점도 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지난 1995년 이전 계획을 세웠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1970년대부터 여러 번 공론화됐다. 역사적 고증이 미흡한 것이 아니냐는 게 주요 논지였다. 1979년 5월에는 정부(문화공보부)가 심의를 거쳐 새 동상을 만들기로 방침을 세웠지만, 미술계의 반발과 10·26 사건 등이 겹치면서 흐지부지됐다. 현재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칼이 일본도라는 점과 중국식 갑옷, 얼굴이 표준영정과 다르다는 지적은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적 기념물은 그 자체로 의미 지녀"


이에 대해 동상을 만든 고(故) 김세중 기념사업회측(choongmoog ong.org)은 "동상의 조각적 특징은 기념비적 상징성에 있다"며 "동상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느냐보다는 그 인물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술계에서는 "동상 자체의 예술적 가치만으로도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기념사업회측은 "동상은 이순신 장군이 오른손잡이인 것을 전제로 만들었다"며 "충무공이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충무공의 역할과 의지가 그의 칼이 상징하는 실천적 힘과 조국수호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증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 해서는 "많은 고증자료를 배경으로 제작됐다. 안정감 있는 윤곽과 자태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칼과 갑옷의 길이는 조금씩 조정됐다"고 말했다.

얼굴 모습에 대해서는 "장군의 실제모습을 전해오는 영정은 없으며, 1953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충무공 영정은 1968년 광화문 동상이 제작된 지 5년 후인 19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고 했다.

조각가 전강옥(45)씨는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은 42년 동안 우리 기억 속에 역사로 이미 자리매김했는데,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새로 제작한다면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다"며 "동상을 없애는 것보다 새롭게 조명해 가치를 찾아주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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