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도 샌프란시스코 시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름 내내 일요일 오후면 ‘스턴그로브 음악 축제’에 갈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민 말이다. 그들처럼 초여름 저녁 나무 그늘 풀밭에 모포를 깔고 싶었다.
파란 하늘 아래 비스듬히 누워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바흐나 모차르트, 혹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 거다. 100여년 전에 심어진 유칼립투스와 레드우드가 빽빽이 들어선 숲속 한복판에서 울려퍼지는 천상의 소리들.
그러나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는…. 손에 맥주나 와인이 들려 있다면 더 좋겠지? 음악을 들으며 아예 잠들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모포보다는 텐트가 낫지 않나?… 해봐야 소용없지만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한여름 밤의 음악 축제.
아, 그런데 이게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이번 주말, 우리 동네에서 클래식 음악 축제가 열린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에 전교생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인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 학교 앞마당에서 클래식 축제가 펼쳐진다니….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의 주요 프로그램인 계촌 클래식 축제. 더구나 정명화가 함께하는 축제다.
연극배우 출신의 계촌 이장님이 말씀하셨다. “정명화가 얼마나 대단한 첼리스트입니까. 그분이 그냥 참여 정도가 아니라 한예종 음악원 출신의 연주자들이랑 함께 아이들을 가르쳤다니까요.”
계촌초등학교 전교생으로 구성된 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좋겠다.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 3년간, 어쩌면 더 길게 그 쟁쟁한 선배 연주자들에게 매주 1회씩 지도를 받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무대에도 설 예정이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 파랗게 예쁜 친구들이 이번 축제에서는 어떤 곡을 연주할까? 지난해 ‘한여름 밤의 음악회’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헝가리안 무곡 5번’ ‘윌리엄 텔 서곡’ 등을 들려줬던 그들이다. 계촌을 상징하는 음악 ‘송어’나 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주 연주하는 곡 ‘위풍당당 행진곡’은 어떨까?
얼마 전 학교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던 곡이 뭐였더라?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 같았다. 아담한 시골 정경 속에서 춤추듯 울려퍼지는 음표들이 굉장히 예뻐서 어쩐지 목이 메는 느낌이었다. 혹시 그 곡을 다시 듣게 될까?
시골에는 없는 게 너무 많다. 책방이나 도서관, 미술관이 없는 것은 물론 카페나 베이커리, PC방조차 없다.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극장에 가려면 자동차로 왕복 2시간을 달려야 한다. 문화적 결핍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백 상태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예술 황무지.
하지만 결핍이나 공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 그 ‘누군가(계촌초등학교 같은 경우 강릉시교향악단 창단 멤버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권오이 교장과 원주리코더교육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경우 교사)’에 의해 시골 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클래식 공연의 주역이 된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 ‘결핍’에서 되레 ‘꿈’과 ‘낭만’을 발견하고 ‘부재’에서 새로운 문화적 에너지를 만들어낸 내 이웃의 누군가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
7월10일부터 12일까지 평창군 방림면 ‘계수나무마을’ 계촌에서 클래식 축제가 열린다. 시골 축제치고는 라인업이 굉장하다. 한국 클래식계의 새로운 바이올린 여제 신지아, ‘젊은 거장’의 대열에 들어선 실력파 피아니스트 김태형, 각종 국제콩쿠르를 휩쓴 ‘첼로 영재’ 여윤수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 세종유스오케스트라, 서울심포니브라스, 강릉소년소녀합창단 등이 계촌 별빛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참고로 여건상 마을에 오기 힘든 클래식 마니아들을 위해 마을 현지와 서울을 연결해 공연 실황을 온라인 중계한다는 소식도 전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유행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음악이나 풍경은 매우 영속적이고 고전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골 마을과 클래식 음악은 아주 잘 어울린다. 밭 갈던 농부와 그의 아내, 인근 펜션에 놀러 온 도시인 가족이 함께 어울려 음악의 환희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축제의 날. 그날을 위해 난 모처럼 원피스를 꺼내 입으려고 한다.
첼로 소리와 함께 초여름 저녁 어스름이 밀려올 때 가방 속에 숨겨 온 와인이나 맥주를 홀짝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클래식을 듣고 자란 우리 개들을 데려가면 혹시 동네 사람들이 욕할까? 뭐 어떤가? 축제일인데…. 도시의 대형 콘서트홀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소박한 환희가 그곳에 있으리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70121261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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