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 번째 대결이 펼쳐진 3월 12일. 나들이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토요일이었지만 앞선 두 경기에서 패한 이 9단을 응원하기 위해 TV 앞에 앉았다. 대국을 한창 보다가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뽐뿌’에 접속했다. 뽐뿌는 각종 휴대폰·이동통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국내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다.
뽐뿌에 올라온 게시물들을 살펴보던 중 ‘출고가 다 주고 개통했는데 대란이라니’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11일 저녁에 올라온 이 글은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7 엣지’를 정상가에 샀는데 대란(불법 보조금이 대규모로 제공되는 있음을 의미)이 일어나 화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사이트 내 다른 페이지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게시물이 다수 발견됐다.
- ▲ 인터넷 커뮤니티 뽐뿌에 올라온 게시물 / 뽐뿌 캡처
생각해보니 12일은 갤럭시S7 시리즈가 출시된 후 맞는 첫 번째 토요일이었다. 게다가 다음날인 13일은 이동통신 3사의 전산 휴무일이기도 했다. 주말에 구매한 휴대폰을 곧바로 개통해 쓰고 싶은 소비자라면 무조건 이날 이동통신 유통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즉시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상담 매장 6곳 중 2곳서 페이백 유혹…“38만원만 내세요”
차를 몰고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로 향했다. 9층에 집결해 있는 이동통신 유통점들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대규모 유통가라는 점도 염두에 뒀지만, 사실 이곳을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불법 페이백(공식 보조금 외에 추가로 현금을 돌려주는 것)의 ‘성지(聖地)’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이뤄지는 불법 페이백 지급 행위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뽐뿌 게시판에 ‘ㅅㄷㄹ ㅅㅋ ㅂㅇ’이라고 적혀 있다면 이는 ‘신도림(ㅅㄷㄹ) 테크노마트에서 SK텔레콤(ㅅㅋ)으로 번호이동(ㅂㅇ)’이라는 뜻이다. 페이백은 ‘ㅍㅇㅂ’, ‘표인봉’ 등으로 표시된다.
오후 5시쯤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도착했다. 9층에 올라가니 제법 많은 사람이 매장 곳곳을 누비며 상담을 받고 있었다. 약 20분 간 9층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방문객이 유독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몇몇 매장을 확인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찾는 소비자 상당수는 사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불법 페이백 정보를 확인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특정 매장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 ▲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 이동통신 집단상가의 모습. / 전준범 기자
9층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한 매장에서 첫 번째 상담을 받았다. 갤럭시S7 32기가바이트(GB) 모델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판매자는 계산기에 숫자 ‘380,000(38만원)’을 입력했다. 순간 의미가 헷갈려 “38만원을 (페이백으로) 주겠다는 의미냐”고 묻자 판매자는 ‘이런데 처음 온 모양이군’ 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38만원만 내면 제품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갤럭시S7 32GB 모델의 출고가는 83만6000원이다. 만약 LG유플러스의 ‘뉴 음성무한 59.9’ 요금제에 가입하면서 기기를 개통할 경우 받을 수 있는 공시지원금은 15만8000원이다. 여기에 판매자가 자체적으로 줄 수 있는 추가 보조금(공시지원금의 15%)은 2만3700원이다. 적법한 절차대로 이 제품을 사려면 구매자는 65만4300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이 판매자는 27만4300원을 지원해줄테니 38만원만 지불하라고 유혹한 것이다.
좀 더 돌아보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4군데를 더 돌았는데 모두 “정부 단속이 심해서 오늘은 (불법 페이백 지급이) 어렵다”는 내용의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는 갤럭시S7이 출시되는 지난 주말 불법 행위가 성행할 것으로 보고 현장 점검을 강화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도 이달 4일 ‘신도림 등 유통점의 불법지원금 관련 대책 방안’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통해 “판매 현장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섯 번째로 방문한 매장에서 다시 불법 페이백 유혹을 받았다. 이 매장 관계자는 계산기에 ‘240,000(24만원)’을 입력했다. 이번에는 입력한 숫자가 페이백 액수였다. 첫 번째 매장보다는 지원 규모가 적었지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액수이긴 했다. 기자가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 판매자는 즉시 옆자리에 앉은 젊은 커플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 ▲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 이동통신 집단상가의 모습. / 전준범 기자
◆ 페이백 사기 당해도 구제 불가능
방통위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불법 페이백 사기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만큼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선 안된다고 당부한다. 페이백 자체가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판매자로부터 사기를 당해도 구제를 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도 올해 초 한 유통점주가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점주는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간 가입자를 끌어모은 후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피해는 고스란히 페이백을 약속 받은 가입자들에게 돌아갔다. 2012년에는 거성모바일이라는 업체가 약 4000명에게 불법 페이백을 약속한 뒤 23억원을 가로채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동통신 판매 현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2014년 10월부터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시행한 이후 불법 행위가 표면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음성적으로는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이동통신 판매점을 운영하는 A씨는 “단통법에서 공시지원금 상한액을 최대 33만원으로 규제하고 있어 소비자들은 고가 스마트폰을 사고 싶어도 부담을 느껴 못산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페이백을 제안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에는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휴대폰 불·편법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전준범 기자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도 지난달 16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IT밸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33만원으로 고정된 공시지원금 상한액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KMDA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국내 이동통신 시장이 위축되면서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판매자들이 크게 늘어났다”며 “구매자는 물론 판매자도 불법 페이백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종철 방통위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은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판매자가 단말기를 1대 팔면 50만~100만원씩 챙기는 등 기본적으로 리베이트 규모가 너무 컸다”면서 “본인이 받을 돈을 조금 줄이는 방식으로 불법 페이백을 제공해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신 담당관은 “이동통신 판매 현장에서 이뤄지는 불법 행위에 대한 감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며 “불법 행위가 잦은 유통가에 대해서는 단말기 공급 물량 자체를 줄이는 등 구조적인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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