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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케아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가 향년 91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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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던 가구업체 이케아(IKEA)의 설립자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5년 전만 해도 인터뷰에서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아 죽을 시간조차 없다”고 말하던 캄프라드는 일평생 열정적인 기업가로 살며 이케아를 세계적인 가구업체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창업자가 2018년 1월 27일(현지 시각) 스웨덴 자택에서 사망했다./이케아
블룸버그 등 외신은 27일(현지시각)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고문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케아는 성명을 통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업가 가운데 하나인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스웨덴 스몰란드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캄프라드는 2013년 6월 이케아의 지주사 인터이케아의 회장직을 막내 아들인 마티아스에게 물려준 뒤, 고문으로 물러나 있었다.

이케아는 현재 49개국에 412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6년 회계연도(2015년 9월~2017년 8월) 376억달러(4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국 자회사 이케아코리아의 지난해(2016년 9월~2017년 8월) 매출은 3650억원에 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케아에 대해 “가구 소매업계에 혁명을 일으킨 브랜드”라며 “과거 유럽인은 가구를 장만하면, 애지중지 사용하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시 여겼는데, 캄프라드는 최초로 ‘가구는 소모품’이라는 신개념으로 업계를 뒤흔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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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에 이케아 창립…유럽인 가구 개념 바꿔

이케아의 성공 비결을 이해하려면 창업주의 삶을 읽어야 한다. 캄프라드는 1926년 스웨덴 남쪽 농촌지역인 스몰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사업가로서 기질을 보였다. 스웨덴의 작은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부터 장사를 시작해 12살 때는 우유배달 트럭을 얻어 타고 다니며 값싼 잡화를 팔았다. 이후 17세가 된 1943년, 이케아를 설립해 가구와 잡화, 생필품 등을 닥치는 대로 판매하다가 1951년부터 가구에 집중하게 됐다.


캄프라드는 1943년 17살의 나이에 이케아를 설립했다. 이케아 앞 두 글자 ‘IK’는 그의 이름 영문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뒤 ‘EA’는 잉바르 캄프라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농장 엘름타리드(Elmtaryd)와 농장이 있던 마을 아군나리드(Agunnaryd)의 이니셜에서 따왔다./블룸버그
캄프라드가 가구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냉전시기 이후부터 시작된 유럽 가구시장의 변화 때문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유럽인은 가구를 대대로 물려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값비싼 원목을 사용해 화려한 로코코 양식 문양 등을 넣어 무겁게 만든 가구를 수세기에 걸쳐 사용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부터 공업화, 도시화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도심지로의 이동과 잦은 이사, 해외에서 밀려오는
제3세계 노동자와 유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값싸고 옮기기 쉬운 가벼운 가구가 인기를 끌게 됐다.

이에 캄프라드는 값싸고 가벼운 가구 생산과 판매에 집중했다. 다른 저가 가구업체들과 비교해 가격을 한 단계 더 내릴 수 있는 ‘플랫팩(flat-pack)’ 방식을 고안한 것도 인기의 주 요인이 됐다. ‘플랫팩 가구’는 완성되지 않은 가구 부품을 납작한 상자에 담아 판매하면 소비자가 쉽게 집으로 가져가 직접 조립하는 가구를 말한다. 이는 이케아를 상징하는 제품 생산 및 판매 방식이다. 그 결과, 캄프라드는 운송비와 보관비용을 낮춰, 경쟁업체보다 저렴하게 제품을 제공하게 됐고, 큰 성공을 거뒀다.

◆ 캄프라드 세계 부자 8위…이건희 자산 3배

이후 캄프라드는 막대한 부를 쌓아 스웨덴 최고 부자이자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억만장자가 됐다. 2017년 기준 순자산은 587억달러(63조원)로 블룸버그 세계 부자 순위 8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25조원)보다 자산이 3배 가까이 많다.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는 북유럽에서 물려받은 재산 한푼없이 이룩한 성과다.

젊은 시절 캄프라드 모습./플리커
자산 규모만 보면 캄프라드는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것 같지만, 그의 삶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벼룩시장에서 옷을 사입는다는 사실이 2016년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스웨덴 TV4 채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캄프라드는 “벼룩시장에서 사지 않은 옷이 없다”며 “타인에게 절약으로 모범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캄프라드는 현직에 있을 때도 매일 지하철 등으로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낡은 승용차를 몰았다. 1993년도에 구입한 ‘볼보240’을 15년만에 교체하면서 “아직 쓸만한데 왜 바꿔야 하느냐”고 했다.

전용기를 몇 대는 살 수 있는 재력에도 불구하고 캄프라드는 비행기도 저가항공사 이코노미석만 이용했다. 이로 인해 아직도 이케아의 임원들은 출장때 저비용 항공과 값싼 호텔을 이용한다. 잉그바르는 생전에 “낭비는 죄악”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 “다수의 편에 서는 디자인…자원 낭비는 인류의 가장 큰 병”

이케아는 자사의 철학이 ‘민주적인 디자인’에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품질과 우수한 디자인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케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 중 하나인 책장 ‘빌리(Billy)/이케아
이 역시 캄프라드의 가치관에서 유래했다. 그가 1976년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의 서두는 이렇다. “많은 사람을 위해 더 나은 일상을 창조하라. 이를 위해 뛰어난 디자인과 우수한 기능의 다양한 제품을 내놔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낮은 가격이어야 한다. 우리는 다수의 편에 서기로 했다.”

다수의 편에 선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캄프라드의 이러한 원칙은 창업 76년째인 지금까지도 이케아 전 매장에 적용된다. 캄프라드는 “자원 낭비는 인류의 가장 큰 병이다. 제한된 자원으로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이 이케아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인도주의적인 캄프라드의 철학과 검소함은 기업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됐지만, 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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