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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선수 국내 복귀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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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타자'란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

이틀에 걸쳐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그의 얼굴이 가장 밝아진 때가 있었다. 바로 '국민타자'란 말이 나올 때였다. 희로애락이 점철된 드라마틱한 8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한 '국민타자' 이승엽. 그는 '국민타자'로 살아 온 야구 인생이 행복하고, 그 수식어를 붙여 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한때는 퍼시픽리그 2위까지 넘보던 오릭스 버팔로스가 연패에 빠지면서 4위 세이부 라이온스에도 쫓기는 신세가 되자 인터뷰 장소인 오사카 교세라 돔의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다.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가 가려지는 중요한 경기인데도 관중석에 빈자리가 많았다. 자연히 인터뷰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한일 양국 기자들이 그의 한마디를 듣기 위해 취재 경쟁을 벌일 시기에, 그의 곁에는 < 스포츠서울닷컴 > 취재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승엽과 단독 인터뷰는 12,13일 교세라 돔에서 열린 니혼햄, 지바 롯데전의 훈련을 앞두고 약 30분씩 이뤄졌다.

◆ "올 시즌 50점도 못 줄 것 같다" 아쉬웠던 2011시즌

- 9월에 타격감이 살아난 듯 했는데, 10월에 부진했다.

타격감이 살아난 것은 맞아요. 하지만 두 달 전 다친 어깨가 10월 들어서 통증이 심해지면서 다시 주춤했죠. 부상 회복을 위해 충분히 쉬었어야 했는데 워낙 중요한 경기들이 많았기에 무리를 했죠. 그러다 보니 더 악화돼 스윙이 잘 안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안타가 나오지 않았어요.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했죠. 지금 몸 상태로는 9회까지 풀타임을 뛰기가 어려워요. 몇 경기를 참고 뛰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있었는데.

팀이 중요한 시기인데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지금 몸 상태에서) 크지 않을 것 같아요. 엄청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내년을 위해서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 나로서나, 팀을 위해서 좋을 것 같아요. 야구 선수는 매일 훈련을 해야 하는데, 지금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마 남은 경기에서는 선발에서 제외돼 대타로 나설 것 같아요. 몸 관리를 잘해서 내년을 준비해야죠.

- 올 시즌을 통틀어서 점수를 준다면.

글쎄요, 50점도 못 주겠죠 뭐(웃음). 일단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프로 선수는 어떠한 변명도 필요 없고, 결과로 말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올 시즌 최대 고비는 어느 때였나요.

음, 아무래도 초반이었죠. 지난해까지 센트럴리그에 있다가 올 시즌 처음으로 퍼시픽리그로 옮기면서 처음 상대하는 투수들이 많았죠. 또, 야구공도 바뀌었어요(웃음). 원래 치던 공보다 잘 안 나가더라고요. 담장을 넘어가야할 공이 펜스 앞에서 잡히는 경우가 많았죠. 마음이 조급해졌던 것 같아요. 지진이 발생하면서 분위기도 어수선했고요. 아, 나카무라(세이부) 선수는 올 시즌 홈런 47개를 쳤더라고요?(웃음). 정말, 잘 치네.

- 팀 동료이자 선배인 박찬호 선수는 2군에서 어려웠는데.

(잠시 생각하더니) 제가 생각하는 것은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프로 선수들이 한순간의 부진을 놓고 선수 생활 전체를 비난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봐요. 올 시즌 (박)찬호 형의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17년을 뛰면서 동양인 최다승(124승)을 기록했죠. IMF 금융 위기 시대에 국민들에게 희망도 줬고, 팬들도 즐거워했고요. 지금의 부진을 놓고 찬호 형을 비난하고, 일본행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봐요.

이승엽을 만난 날, 공교롭게도 박찬호는 미야자키에서 열리고 있는 교육리그에 참가해 2이닝을 던졌다. 이 소식을 전하자 이승엽은 목소리를 높이며 "아, 그래요. 어떻게 됐나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팀 동료이기 전에 선배 그리고 팬으로서 박찬호를 끝까지 응원하고 싶단다. 평소에도 박찬호에게 "형은 한국인의 영웅"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낸단다.

◆ "이제는 한국 가고 싶다" 국내 영구 복귀 선언

본격적으로 한국 복귀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시즌이 끝나지 않은 상태인지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생각을 물어봤다. 이승엽도 오랜 시간 골몰히 생각했고, 처음에는 시즌을 마치고 전화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리그 막바지에 관련 소식을 보도하겠다는 약속을 한 후 어렵사리 솔직한 심정을 들을 수 있었다.

- 취재진은 솔직히 정보를 듣고 왔다. 국내 복귀 의사를 듣고 싶다.

듣고 오셨다고 미리 알고 있었어요(웃음). 시즌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말씀드리기가 애매했죠. 음, 우선 제가 (한국에) 가고 싶어서 결정했어요. 스스로 8년간의 일본 생활을 돌아보며 '이제는 됐다'고 생각했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더 늦기 전에 한국에 가자고 결심했고,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길을 가고 싶었어요. (팬들도 공감할 것 같은데?)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팀 순위가 결정되면 사무국에 말해야죠.

- 오릭스와 계약상의 문제는 없나요?

음, (오릭스가) 배려해 줄 것으로 기대해요. 아직 1년 계약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내년 연봉을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요. 일본은 (일본 내)타 팀으로 이적하지 않으면 위약금 등 큰 문제는 없어요. (배려해 주지 않을까요?) 선수가 원하니까 해 주면 좋죠. (낀 글러브를 매만지며) 가고 싶어요, 이제. 한국에서 또 다른 목표를 갖고 도전하고 싶어요. 물론 중계권을 포함해 오릭스가 한국에 마케팅을 하고 있기에 걸림돌은 있을 수 있죠.

- 국내 복귀한다면 친정팀(삼성)을 생각하고 있나요?

친정팀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지만, 가고 싶다고 무조건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삼성은 젊은 선수들로 재편됐죠. 향후 협상 내용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 복귀 배경에 자녀 교육 등 가족 문제가 포함된 건가요.

아니요. 제가 가고 싶었어요. 올 시즌 중반을 거치면서 '지쳐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죠. (한국이) 그립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족들도 소중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둘째 문제죠. 야구를 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이니까요. 가족들도 제 결정을 이해해 줄 것으로 믿어요. 제가 남은 현역 시절 동안 운동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요?

일본 생활 8년 "보람 있었다…국민타자라는 말 가장 행복"

- 일본에서의 8년 생활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워낙 기복이 심해 가지고(웃음). 음, 보람 있었지요. 힘들고, 울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었고, 웃을 일도 많았죠. (가장 좋았던 순간은?) 아무래도 2006년 요미우리 2년째 잘 쳤을 때. 그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하지만 이후 무릎, 손가락 수술 후유증으로 경기를 제대로 못했고, 마음대로 스윙이 안 됐어요. 2군 생활보다 오히려 답답하고 힘들었죠. 그때 내쉬었던 한숨만 모아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돔 무너질 걸요(웃음).

- 나이가 들수록 야구에 대한 열정이 커진다고요.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올해로 프로 17년째인데요. 앞으로 17년을 더 할 수는 없잖아요? 길어야 5~6년인데. 언젠가 1루수 자리에 내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면 현재 시간이 아까워요. 예전에는 36살 때 은퇴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할 수 있을 때까지 해 보고 싶어요. 어린 선수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계속 해야죠.(웃음) (선배 양준혁처럼 41살까지?) 전 몸 관리 잘해서 더 오래 해야죠.

- 야구로 기쁨도 얻은 반면 상처도 컸을 텐데.

'상처, 비난, 굴욕', 이런 것은 다 지나갔죠(웃음). 지금 이 순간도 제가 국내 복귀한다는 것에 대해서 욕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것을 신경 쓴다면 말할 수 없었죠. 한때는 일부 팬들의 비난에 대해서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프로 선수고, 모든 이들에게 경기력을 보여 주는 것이기에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힘들었던 순간이 워낙 많아서 이제 웬만한 것은 웃으면서 넘겨요(웃음

'국민타자'로 살아온 야구 인생을 돌아보자면.

영광이죠. '국민타자', 저는 이 수식어를 붙여준 분들께 정말 감사해요. '국민'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영광이고 기쁘죠. 살면서 들었던 말 중에 국민타자라는 말이 가장 좋아요. 건방져 보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구나, 좋아해 주는구나, 느낄 수밖에 없죠. 물론 언젠가는 저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나타나고 제가 힘이 없어지면 바뀔 수 있겠지만, 여태까지 10년 넘게 들어온 것에 감사해요.

- 앞서 한국에서 마지막 목표를 언급했는데.

저는 평생 동안 야구만 했고, 앞으로도 야구를 하고 싶어요. 저는 정말 야구를 사랑하거든요. 은퇴 후에도 야구계에서 일하고 싶지,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나중에 좋은 지도자를 꿈꿔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국제 대회에서 수많은 경험을 했으니까요. 이 모든 것을 잘 접목해 선수들을 잘 이해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야구의 지식과 기술적인 것, 경험을 많이 가르쳐 주고 싶거든요. 언젠가는 이뤄지겠죠.

이승엽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확고히 한 듯 다소 껄끄러운 질문에도 막히지 않고 답변했다. 야구밖에 모르는 '국민타자' 이승엽은 자신이 갈 길이라고 믿는 또 다른 '야구 이정표'를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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