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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전부회장이 아버지인 신격호 회장과 갈등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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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1세인 신격호 총괄회장(93)은 온갖 악조건을 뚫고 1948년 도쿄에서 롯데그룹을 창업, 대성공을 거뒀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1967년 한국에 진출했다. 그룹이 커지고 두 아들이 성장하면서 신 총괄회장은 제과사업이 중심인 일본사업을 신동주(61) 전 부회장에게, 소매·화학 등 폭넓은 한국 사업은 차남인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에게 맡기는 분담 경영을 시켰다.

한동안 형제는 일본의 '온후한 신 부회장'과 한국의 '사교적인 신 회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신 총괄회장을 정점으로 ‘롯데 왕국’을 무리없이 이끌어 왔다. 그러다 지난해 말 장남인 신 전부회장이 일본 롯데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면서 한국과 일본 재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금까지 베일에 쌓였던 신 전부회장에 대한 관심과 사실상 강력한 후계자로 떠오른 신 회장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이자 일본 롯데의 후계자로 알려졌던 신동주 전 부회장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신 전부회장은 베일에 쌓인 인물이다. 매년 열리는 부친 신격호 회장의 울산 생가 방문에도 동참이 드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한국 롯데 그룹 내부에서도 신 전부회장을 잘 아는 임직원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신 전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두번째 부인인 다케모리 하츠코 여사 사이에서 195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동생 신동빈 회장과는 한살 터울이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자랐다.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향은 전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 전부회장을 만난 임직원들은 그가 권위적이지 않고 문학가적인 기질을 가진 젠틀맨이라고 평가했다.
롯데그룹 가계도
롯데그룹 가계도
신 전 부회장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78년 미쓰비시상사에 입사했다. 근 10년을 종합상사에서 실무 능력을 익히고 1987년 롯데상사에 입사, 2001년 롯데상사 부사장, 2009년 롯데홀딩스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2011년 롯데상사 대표이사 겸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당시만 해도 일본 롯데의 사실상 후계자로 확정된 것으로 비쳐졌다. 롯데상사는 롯데가 생산하는 과자를 판매하는 회사로, 일본 롯데의 핵심회사이다. 신 총괄회장이 창사 이래 계속 대표직을 맡고 있던 롯데상사를 장남에게 물려준 것은 사실상 후계자로 해석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롯데 관계자를 인용, “신격호 회장이 여전히 건강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장남과 차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인사로 후계자 후보인 장남이 ‘제왕학’을 배우는 시기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롯데 내부에서는 신 전부회장이 후계자가 아니라 ‘후계자 후보’라고 예측한 것이 이번 사태를 염두에 둔 듯 들어맞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신 전부회장은 지난 연말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은 물론 롯데상사 대표 및 부회장, 롯데아이스 이사직에서 전격 해임됨에 따라 일본 롯데그룹 경영에서 배제됐다.

신 전부회장은 그룹의 모태인 제과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과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서뿐 아니라 한국 롯데제과로 이어졌다. 일본롯데에서 제과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는 ㈜롯데다. 신 전부회장이 지난해 한국 롯데제과 주식을 일곱 차례에 걸쳐 사들여 지분율을 3.69%에서 3.92%로 높인 것도 어쩌면 제과업에 대한 애착으로 풀이된다. 결국 한국 롯데제과의 지분율을 높인 것이 동생은 물론 신 총괄회장과 갈등의 원인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에서는 임원 자리를 잃었지만 아직까지 신 전부회장은 호텔롯데, 롯데상사, 롯데알미늄, 롯데건설, 부산롯데호텔 등 한국에서 롯데그룹 6개 계열사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도 신 회장과 유사한 수준이다.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등기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느냐가 최대의 관심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신 전부회장은 1992년에 재미교포 사업가인 조덕만씨의 둘째 딸인 은주씨와 잠실 롯데 호텔에서 결혼식을 처렀다. 당시 주례는 국무총리를 지낸 남덕우씨가 섰다. 한국에서 전혀 생활을 하지 않은 그가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었다. 동생인 신동빈 회장은 일본 총리를 지낸 후쿠다씨의 주례로 이미 일본 도쿄에서 결혼을 한 상태였다. 동주 동빈 형제가 일본과 한국에서 전직 총리가 주례를 섰다고 해서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신 전부회장은 은주씨와의 사이에 외아들 정훈(22)씨를 뒀다.

반면 차남인 동빈씨는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동생이 형보다 집안의 각광을 더 받고 자랐는지 모른다. 신 회장 역시 195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형과 마찬가지로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형제가 대학은 물론 대학원까지 동문이다. 회사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과정도 비슷하다. 동주씨가 종합상사인 미쓰비시상사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해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한 것과 같이 동빈씨는 1981년부터 노무라증권에서 일하다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들어갔다. 두 사람 모두 부친인 신 총괄회장의 뜻에 따라 학업을 마친 후 한동안 다른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롯데에 입사한 케이스다.

두 사람의 길이 갈라진 것은 동빈씨가 1990년 한국으로 건너와 롯데케미칼(옛 호남석유화학)에서 일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신 회장이 일본 여성과 결혼한 이유를 들어 한국 생활을 권한 것으로 해석됐다. 즉 한국인 정서를 알아야 나중에 기업 경영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부친의 의중이라는 지적이었다. 이후 그는 코리아세븐 전무, 롯데케미칼 부사장, 롯데그룹 부회장을 거쳐 2011년 형보다 먼저 회장 자리에 올랐다.

경영 스타일은 대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빈씨는 편의점 바이더웨이, 우리홈쇼핑, 하이마트 등을 인수하며 한국 롯데를 재계 5위 그룹 반열에 올려놓았다. 반면 신 전부회장은 제과 사업에 치중하며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를 키우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많지 않다. 그동안 일본은 극심한 경기 침체기였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고 몇몇 기업을 빼곤 거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를 놓고 한국 롯데는 볼륨이 커졌는데 일본 롯데는 정체했다는 평가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본 최고 명문가의 집안과 결혼한 신동빈 회장은 한국에서 사업을 책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에 막강한 후원그룹이 존재하고 있다. 부인인 미나미씨 집안이 일본 최상류층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관심은 롯데그룹도 현대그룹이나 두산그룹, 금호그룹처럼 '형제의 난'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후계구도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신 총괄회장이 워낙 고령인데다 의사결정 과정이 유난히 불투명하기 때문에 재계에선 조심스레 그런 점에 우려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두 형제의 주요 계열사 지분율이 황금률처럼 엇비슷한 점 역시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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