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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스티브 잡스의 불법주차를 응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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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프로그래밍 용어에 '무한루프'라는 것이 있다. 원형 띠처럼 특정 명령이 무한히 되풀이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용어는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자리한  애플사 주소이기도 하다.

 

'무한루프 일번지(One Infinite Loop).'

 

재기발랄한 컴퓨터 회사에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주소명이다. 이 독특한 이름을 둘러싼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와이어드> 2008년 4월호에 실린 이야기를 보자.

 

"'무한루프'는 애플 본사의 주차난을 설명하기에도 좋은 용어다. 실리콘 밸리에 있는 모든 게 그렇듯, 애플사 주차장도 평등주의 원칙을 따른다. 고위 경영자나 '윗분'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주차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 경영자가 포르셰를 몰고 나타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누구든 아침 10시 이후에 도착하면 빈 자리를 찾을 때까지 주차장을 계속 도는 '무한루프'를 경험해야 한다."

 

'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미국 첨단기술 업계가 위계와 권위주의를 혐오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최고경영자가 손수 차를 몰면서 빈 주차장을 찾기 위해 진땀을 흘리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애플 주차장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계속 읽어보자.

 

"그러나 애플 주차장에서도 오래 돌지 않는 차가 한 대 있다. 스티브 잡스가 모는 벤츠다. 급한 업무가 있는데 주차장을 찾기 어려운 경우, 잡스는 출입문 근처의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댄다고 한다. (가끔 두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직원들의 장난기가 발동한다. 누군가 잡스의 유리창에 "다르게 주차하라(Park Different)"라고 쓴 종이를 끼워 놓는 것이다. 어떤 직원은 주차장 바닥의 장애인 표시를 벤츠 마크로 바꿔 놓기도 했다." 린더 카니, "사악/기발" <와이어드> 4월호 138쪽.


분방함과 장난스러움은 실리콘 밸리 특유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사진은 지난 4월 '개칭'한 구글의 첫 검색화면. 구글의 최고 경영자는 회사 이름을 (캔자스의 작은 도시 이름을 따) '토피카'로 바꾼다고 공식 발표했다. 만우절 장난이었다.
ⓒ Google

애플,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위의 일화는 애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첫째, 스티브 잡스의 대책 없는 고집불통이다. 잡스는 좀처럼 주장을 꺾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험한 입을 놀리기로 유명하다. 

 

80년 초반, 그는 초기 애플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동료로부터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명백히 불가능한 일조차 끈질긴 설득과 협박을 통해 가능한 일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초의 매킨토시부터 최근 아이패드까지 모두 이 '현실 왜곡'의 과정을 거쳐 태어났다.

 

이 험난한 여정에서 잡스로부터 욕을 먹은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다. 잡스는 아이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많은 통신업계 책임자들과 만났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이폰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폰 이전까지 휴대전화기는 제조업체가 통신사의 필요와 요구에 맞추어 '납품'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잡스는 통신사 간부들에게 휴대폰 개발 과정에서 아무 간섭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통신사가 제조업체를 고용하는 것이 상식인 현실에서, 감히 제조업체가 통신사를 고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독점계약을 미끼로 에이티앤티(AT&T)를 그의 '현실 왜곡장' 속으로 끌어들어기 전까지, 잡스는 무수히 많은 충돌과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는 간섭 않고는 못 배기는 통신사 경영진을 '터진 주둥이들'이라고 불렀다. 

 

1983년, 펩시콜라 최고 경영자 존 스컬리를 영입하면서 잡스가 던진 질문은 이랬다. "평생 설탕물이나 팔며 살래,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꿀래?" 결국 스컬리는 애플로 옮겨왔고, 얼마 후 잡스는 자신이 데리고 온 사장에 의해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설득한 상대가 세상보다 잡스의 삶을 먼저 바꿔 놓은 것이다.  

 

두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처럼 '막 가는' 스티브 잡스조차 실리콘 밸리의 반위계적 평등주의는 어쩔 수 없다는 점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피겠지만, 오히려 애플은 미국 재계에 반권위, 반위계주의를 주도적으로 확산시킨 기업이었다. 그 흔한 '회장 전용 주차장' 하나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의 불법 주차를 '응징'하는 직원들의 태도를 보라.

 

한국 기업이었다면 어땠을까? 회장이 운전대를 잡고 주차장을 돌 리가 없지만, 만일 직원들이 비슷한 장난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컨대 삼성 직원이 이건희 회장 벤츠 와이퍼 밑에 "삼성이 주차하면 다릅니다"라는 글을 꽂아두고 바닥에 요란한 낙서를 해놓는다면 말이다.

대중 혁명, 유희 혁명

 

우리는 이전 기사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에서 조직의 위계가 어떻게 창의성을 파괴하는지 살펴보았다. 권위주의에 지배되는 조직일수록 반대가 어렵고, 이런 환경에서는 '생각을 뒤집는' 혁신과 창의력이 발휘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무시한 채 단기 성과용 '응용'에만 집착하는 근시안적 교육정책이 갖는 문제점도 아울러 지적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려고 한다. 위계 조직 특유의 '엄숙함'이 창의와 혁신의 또 다른 원동력인 '재미' 와 '장난기(playfulness)'마저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애플이 만드는 제품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재미'다.

 

애플은 무엇이든 갖고 놀고 싶게 만든다. 이 원칙은 26년 전 탄생한 최초의 매킨토시에서 올해 공개된 아이패드까지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1984년, 애플이 가져 온 첫 혁명은 '따분함의 파괴'였다.

 

그 전까지 '컴퓨터'는 검은 화면에 녹색 문자가 깜박이는 기계였다. 키보드로 문자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치면 또 다시 뜻 모를 문자들이 죽 늘어서곤 했다. 애플은 이 따분하고 복잡한 과정을 없애 버리고, 모든 것을 그림으로 바꿔 놓았다. 복잡한 '명령어' 따위는 필요 없었다. '마우스'를 누르기만 하면 '폴더'가 열렸고, 필요 없는 것은 '끌어 당겨' '휴지통' 속에 던져 넣기만 하면 됐다.

 

애플이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GUI),' 즉 그림을 통한 컴퓨터 조작법을 최초로 도입한 것도 아니고, 마우스를 처음 발명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애플은 주목 받지 못하던 소수 전문가용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는 대중적인 기술로 탈바꿈시켰다. 혁명이었다. 대중을 위한 혁명이었고, 유희를 위한 혁명이었다. 


애플의 반엘리트적 대중주의

 

쉽고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맥'의 상징으로 만들었던 애플은 25년 뒤 아이패드에 와서는 아예 매개체로서의 인터페이스를 없애 버린다. 이제 포인터도, 마우스도 필요 없다. 손가락으로 직접 만지고 문지르고 꼬집고 비틀고 흔들면 된다. 이런 면에서 "아이패드는 애플이 만들어 낸 가장 놀랍고 혁명적인 도구"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아이패드가 공개됐을 때, 일부 평론가는 '애들 장난감'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이 조롱은 애플과 잡스에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다. 잡스는 아이패드를 소개하면서 "이제 사용자들이 응용소프트웨어와 내용물을 훨씬 친근하고, 직관적이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게 됐다"며 신나 했으니 말이다.

 

애플은 '엘리트'를 위해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철저히 대중적인 물건을 만든다. 이것이 단순히 시장 전략만은 아니다. 반엘리트적 민중주의는 6-7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저항문화(counterculture)의 핵심 축으로, 애플은 이 대중 운동의 모태 속에서 탄생했다.  '윗분,' '엘리트,' '소수의 인재' 좋아하는 기업이 애플을 따라갈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문화사학자 시어도 로잭(Theodore Roszak)은 실리콘 밸리의 분방한 정신을 1960년대 저항운동의 산물로 파악한다. 60년대는 위계적 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정치는 타락하고, 기업은 부패했으며, 삶의 터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었다. 젊은 목숨들이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전쟁터로 보내졌고, 사람들은 성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지만, 기술 진보는 대중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다. 대중들의 손에 미치지 않는 '저 높은 곳의' 기술은 권력의 도구로서 더 많은 통제, 착취, 파괴를 가져올 뿐이었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묘사했듯 말이다. 로잭의 분석에 따르면, 애플의 '누구나 쓸 수 있는 컴퓨터'는 '통제로서의 기술'을 거부하고 대중들에게 권력을 되돌려 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게 형성된 미국 서부 해안의 진보성, 반권위주의, 반도시/친자연주의는 실리콘 밸리의 정체성이 되었다. '다양성'의 상징인 무지개가 애플의 상징이 되고, 구글이 '사악해지지 말자'는 모토로 회사를 시작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대중에게 꿈을

 

잿빛 옷을 입은 남자들이 줄을 지어 걸어간다. 똑같은 제복을 입은 사내들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이들은 발을 맞추어 복도를 지나 '교육장' 안으로 들어간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심각한 표정의 지도자가 '훈사'에 여념이 없다. 이때 흰 셔츠와 붉은 반바지를 입은 여자가 망치를 들고 뛰어온다. 경찰이 뒤를 쫓는다.

 

여자는 원반선수처럼 몸을 돌려 공중으로 망치를 던진다. 망치에서 손을 놓은 여자의 몸짓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여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망치는 지도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고 곧이어 대폭발이 일어난다. 이제 사람들은 최면에서 깨어난다.

 

애플의 반권위적 진보성은 이 1984년 텔레비전 광고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첫 매킨토시 모델을 소개하는 이 광고는 친대중적 기술이 선사하는 해방, 자유, 기쁨을 묘사하고 있다. 미국의 저항운동이 이랬다. 권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지만 사람들은 경직되지 않았다. 음악이 있었고, 춤이 있었고, 놀이가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존 레논은 "상상하라(Imagine)"고 노래했다. 무엇에 대한 상상이었는가? 사람에 대한 상상이었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상. 꿈을 가질 수 없는 사회는 상상력을 가질 수 없다. 더불어 사는 기쁨이 없는 사회는 창의력을 가질 수 없다.

 


위계적 기업의 혁신법

 

무척 궁금하다. 쉬는 시간까지 줄어들어 밖에서 뛰어 놀지도 못하고, 소변까지 참아가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높으신 분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말이다. 놀이와 웃음 (그리고 배변)에 낭비할 에너지를 '국가 경쟁력'에 투여하는 '조국의 역군'들이 자랑스러워 보일까? 우리 어린이들은 어떤 상상을 하며 자랄까?

 

꿈꾸기 어렵기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들은 왜 직원들의 몸을 혹사해야 혁신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얼마 전 한국의 주요 공기업에 '민간 CEO'가 부임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단행한 '혁신'은 직원들을 불러다가 군대식 구보를 시키고, '혁신'을 목놓아 외치게 하는 것이었다.

 

'해병대 캠프'나 '특전사 지옥훈련'에서 혁신과 창의성을 찾는 기업과 정당도 있다. 혁신이 똑같은 제복과 집단적 훈련에서 나온다면, 가장 뛰어난 창의적 성과는 해병대나 특전사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직원들을 괴롭힐 게 아니라, '군기 센' 부대의 용사들을 연구개발팀에 영입하면 될 일이다.

 

그럴 시간과 돈이 있다면, 직원들에게 두둑이 보너스를 주어 휴가를 보내는 게 창의력 향상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옥훈련'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휴가를 이용해 자원 입대 훈련을 받으면 된다. 열심히 뛰고, 기고, '혁신'을 외치다 보면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그 순간에 조직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직에서 멀리 떨어진 그 순간만큼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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