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사

범죄 혐의로 구속된 자칭 '주식 천재'… 이희진을 파헤친다

728x90
반응형

흙수저 신화의 진실은
"공부 안해도 전교 수위권… 가난해서 명문大 포기"
급우들 "30평대 빌라 살아… 성적은 반에서 10등쯤"

'청담동 주식 부자'로 알려진 이희진(30)씨와 그의 동생 희문(28)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을 구속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서봉규)은 이씨 형제가 허가받지 않은 금융투자회사를 차려 원금을 보장해 주겠다며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으며 자본시장법 위반, 유사수신행위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싸게 사들인 장외주식을 투자자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겨 차익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씨 형제가 챙긴 부당이득만 200억원대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씨 형제는 자신들이 사는 서울 청담동 한복판에 실내 수영장이 있는 661㎡(약 200평)의 고급 빌라, 한 대에 30억원이 넘는 부가티와 람보르기니 스포츠카, 금고에 쌓여 있는 현금 돈다발 등 재력을 과시하는 사진 수백 장을 SNS에 올리며 유명해졌다. 이후 형 희진씨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여자 아이돌과 사귀며 3000만원짜리 선물을 준 적 있다", "가지고 있는 건물만 합쳐도 1000억원대"라며 화려한 생활을 자랑해 더 인기를 끌었다. 한때 10대들 사이에선 '롤모델이 이희진'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김성규 기자

흙수저 신화? "전부 거짓말"

이씨가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방송 등에서 자신을 "흙수저 출신이지만 주식으로 대박 난 자수성가형 인물"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경기 안양시 반지하 집에서 태어나 고깃집 아르바이트, 나이트클럽 웨이터 등을 전전하다 주식시장에 눈을 떠 수천억대 부자가 됐다"고 말했었다.

'Why?' 취재진은 작년 10월 20일 이씨의 청담동 사무실에서 이씨 형제를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그때도 그들은 울먹거리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씨 형제는 "IMF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우리 형제가 가장 좋아하는 1000원짜리 통조림 옥수수조차 사 먹을 돈이 없어 어머니를 붙잡고 울었다"고 했다. 그들은 이 생활이 고등학교 시절까지 내내 이어졌다고 했다. 동생 희문씨는 "형이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한 적이 없었음에도 매번 전교 수위권 성적을 받을 정도로 똑똑했고, 서울에 있는 사립 S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포기해야만 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희진씨와 고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친구들의 말은 달랐다. 이씨 형제가 가난하지도, 희진씨가 공부를 썩 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친구 A(30)씨는 "축구를 할 때도 희진이는 60만원짜리 운동화를 신었고 30만원대인 B사의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며 "비싼 옷을 휘감고 다니는 바람에 몇몇 동급생들은 담임 선생님에게 희진이가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 B씨는 "다른 아이들처럼 30평대 빌라에 네 식구가 산 걸로 알고 있다"며 "흙수저라고 말할 정도로 못살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학교 성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A씨는 "공부를 못한 것은 아니지만 반에서 10등 정도였을 뿐"이라며 "희진이가 입학한 학교가 S대인지 Y대인지 K대인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이 다 엇갈린다"고도 했다. 이런 이유로 'Why?'는 당시 이씨 형제 인터뷰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보도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11개월 후 두 형제는 검찰에 구속됐다.

주변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씨 형제가 밝힌 일확천금 과정들도 신빙성은 낮아 보인다. 이씨 형제가 직접 언급한 내용은 이렇다. 형 희진씨는 2007년 한 포털사이트 주식정보 카페를 보며 주식시장의 원리를 통달했고 이듬해엔 독학으로 스마트폰 앱을 만들어 5000만원을 벌었다. 이 돈을 자본금 삼아 장외주식과 국내외 선물에 투자해 1000억원대 부자가 됐다.

이씨 말에 따르면 7년간 자산이 약 2000배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장외주식에 투자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씨는 한 방송에서 "디스플레이 부품업체 S사의 주식을 상장 전 구매해 50배 수익을 벌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투자자들이 증빙서류를 요구했지만 인증은커녕 해당 문서를 본 사람이 없다. 이 방송 이외에 이씨 형제가 어떻게 주식으로 돈을 수천 배 불렸는지, 어떤 기법을 썼는지는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다.

무료 방송으로 투자자 끌어모아

피해자들은 이들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형 희진씨의 탄탄한 방송 경력을 꼽는다. 이씨 형제에게 투자해 6000여만원을 날렸다는 김모(52)씨는 "그동안 방송 출연을 오랫동안 해온 걸로 안다"며 "처음엔 케이블 방송에만 나오다가 예능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치고, 유료 방송에서는 마치 홈쇼핑 타임세일처럼 '당장 사야 한다, 지금 아니면 때를 놓친다'고 하니 계속 그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투자자도 "연예인 같은 사람이 설마 속임수를 쓰겠느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2012년 처음 케이블 증권방송에 진출했다. 한 포털사이트 주식카페에 몇몇 주식 수익률을 예측해주고 자신이 주식으로 큰 부자가 됐다고 글을 올렸더니 한 방송사에서 섭외가 들어왔다고 했다. M채널의 한 주식정보 관련 프로그램으로 방송을 시작했지만 몇 달 되지 않아 해당 방송에서 하차했다. 당시 이씨가 출연한 프로그램이 서바이벌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증권분석가 여러 명이 등장해 주식 수익률을 예측하고 성과가 낮으면 탈락하는 형태였는데, 이씨의 성과는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지 몇 달 뒤인 2013년 이씨는 H채널로 이적하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M채널에선 상장주식 수익률만 논했지만, 방송사를 옮기면서 국내외 선물과 장외주식까지 논하기 시작했다. 당시 장외주식 매매를 권한 사람은 해당 채널에서 이씨가 유일했다. 화려한 말솜씨와 매끈한 외모로 이씨는 시청자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유료방송에 끌어들였다. 유료방송 시청료는 한 달 99만원, 평생회원가는 1500만원에 달했지만 수만 명의 투자자들이 이씨 방송을 신청했다.

토요일에는 무료 방송도 진행했다. 작년 10월 이씨를 만났을 때 이씨는 무료 방송에 대해 "재능기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05년부터 500만~1000만원가량 두세 번 주식에 쏟아부었지만, 매번 폭락했고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좌절했다"며 "다른 개미 투자자들은 저같이 절망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말은 전혀 다르다. 피해자 카페 대표 박모(41)씨는 "그 무료 강의가 바로 미끼 상품"이라고 말했다. 무료방송을 통해 한 달 99만원짜리 자신의 유료방송을 결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씨의 방송을 3년간 지켜봤다는 또 다른 박모(38)씨도 "당시 이씨가 유료방송으로 번 돈만 한 달에 10억원쯤 될 것"이라며 "시청료뿐만 아니라 이 방송을 통해 장외주식에 투자하게끔 유도했다"고 말했다.

장외주식 시장에서 이씨가 추천한 종목의 수익률은 항상 바닥을 쳤다. 정상적인 기업의 주식은 상장 한 달 내 상장 때보다 10~50% 정도 가격이 상승한다. 하지만 이씨가 유·무료 방송에서 추천한 주식 40여 개 중 38개의 주가는 상장 직후 반 토막 났다. 통상의 상장 기업과는 정반대의 경우였다. 투자자들 항의가 빗발칠 때마다 이씨는 "당장은 떨어져도 더 기다려야 한다", "개인 돈으로 피해를 메워주겠다", "수억원의 가치가 있는 우리 회사의 주식으로 지급하겠다"는 등의 말로 투자자들의 항의를 무마했다. 현재 이씨 거짓 정보에 속아 손해를 봤다고 고소장을 접수한 피해자만 200여 명에 달한다. 이씨는 '청담동 주식 부자'에서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의 이름을 딴 '이희팔'로 불리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의혹들

이씨가 아무리 언변이 뛰어나더라도 유료방송 시청료만으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청담동 자택과 수십억원짜리 수퍼카를 여러 대 구매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씨 형제가 구매했다는 청담동 사무실 5층 현관 왼쪽엔 세로로 길게 수영장이 있고 가운데에는 금장 소파와 대리석 테이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수영장 맞은편 야외 테라스엔 잔디까지 깔린 최고급 빌라였다. 테이블 위에는 이씨가 수차례 자랑했던 부가티와 BMW 등 자동차 키들과, 당시 설립 추진 중이라던 '미라클 해운'과 관련된 각종 서류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업계에선 이씨가 추천하는 장외주식마다 상장 직후 혹은 한두 달 내에 가격이 절반 이상으로 떨어진 점으로 미뤄 이씨 형제가 해당 회사 등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해 한 대형 투자회사가 돈이 안 되겠다고 판단한 장외주식을 이씨 형제에게 처분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곧 휴지 조각 이 될 주식을 이씨 형제가 매수하고 이를 유료방송 시청자들에게 처분하면서 각 회사가 유망한 것처럼 속여 이득을 봤다는 것이다.

장외주식 특징상 매매가와 내용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피해를 보고도 해당 주식의 거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 검찰은 이씨 형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득을 얻었는지를 비롯해 관련 의혹들을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