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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때 녹색성장센터, 이젠 낡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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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녹색 성장'에 맞춘 친환경 전력망 기술 연구
朴정부 '창조경제'로 바뀌자 사업 중단… 수백억원 날려
"R&D정책, 정권마다 급조… 원천 기술 개발 계속 실패"

- 4대강 수질 감시 로봇 물고기
대통령 한마디에 급하게 추진, 기술 개발도 못하고 57억 날려

- 작년 구글 무인차 각광받자…
'한국형 구글카' 시연하고 육성전략 서둘러 발표

이달 초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1645-1번지. 인적 드문 훤한 공터에 퇴락한 건물 한 채가 세워져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외관은 여기저기 녹슬었고 진입로의 가로등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주변 곳곳엔 시설물을 뜯어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근처 주민은 "SK그룹의 '스마트 그리드 체험센터'가 있던 건물인데, 한동안 버려져 있다가 카페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본래 이곳 구좌읍 일대에는 에너지와 통신, IT(정보 기술) 등 5개 분야 168개 기업들이 신재생 에너지 발전과 전기차 충전 시설 등을 곳곳에 설치해 놓고 있었다. 지난 2009년 '녹색 성장'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이곳을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시범 단지로 조성하겠다며 국비 766억원을 포함, 총 2500억원을 끌어들였다.

친환경 기술 체험관이 녹슨 건물로 -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SK 스마트 그리드 체험센터’의 6년 전 모습(위 사진)과 현재 모습(아래 사진). 건물 외벽 곳곳이 녹이 슨 채 카페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 이곳엔 재생 에너지와 전기차 기술에 대한 홍보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친환경 기술 체험관이 녹슨 건물로 -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SK 스마트 그리드 체험센터’의 6년 전 모습(위 사진)과 현재 모습(아래 사진). 건물 외벽 곳곳이 녹이 슨 채 카페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 이곳엔 재생 에너지와 전기차 기술에 대한 홍보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SK 홈페이지·허재성 객원기자

하지만 지난 2013년 들어선 박근혜 정부가 '창조 경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스마트 그리드 관련 사업이 대부분 중단되거나 방향을 바꾸면서 이곳 실증 사업 단지도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후 제주 구좌읍의 첨단 스마트 그리드 시설은 대부분 철거되거나 내버려졌다. 결국 정부 독려로 이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은 생돈만 날린 꼴이 됐다. 이 사업에 참여했던 한 대기업 임원은 "정권이 바뀌자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면서 "결국 기반 시설에 수백억원을 투자한 기업만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정권 따라, 시류 따라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정책이 한국의 과학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망치고 있다. 세계시장을 주도할 만한 원천 기술은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을 뒷받침해온 정부 R&D 정책은 정권이 바뀌는 5년에 한 번씩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병태 교수(경영학)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수퍼컴퓨터 같은 산업의 미래를 바꿀 기술에 대한 R&D 정책마저 몇 주 만에 급조되고 있다"면서 "이런 환경에서 한국의 정부 R&D는 '눈먼 돈 나눠 먹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물고기 사진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미래창조과학부는 "1조원을 투입해 2020년까지 한국형 알파고(AlphaGo)'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첫 승리를 거둔 지 불과 일주일 만이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관계자는 "미래부에서 '각 연구소가 어떤 인공지능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하라'는 공문이 왔고, 보고서를 제출한 며칠 뒤 곧바로 대책이 발표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인공지능 연구가 제외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알파고와 비슷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엑소브레인'이라는 완성 단계의 기술도 갖고 있었지만 과거부터 진행하던 연구라는 이유로 이번 육성책에서 제외됐다"고 했다.

시류 따라 정권 따라 급조되는 연구 과제

시류에 따라 대부분의 정책 과제가 '새 술은 새 부대에' 식으로 다시 시작되고, 또 급조되는 것이 정부 R&D 정책의 현실이다. 항상 이런 식이다 보니 특정 기술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know-how)가 제대로 축적되지 않는다.

미래부가 지난 4월 1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한국형 수퍼컴퓨터 사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9년 서울대 '천둥', 2011년 ETRI '마하', 2012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바람' 등 매번 수십억~수백억원을 들여 여러 차례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 연속성 없이 별개로 진행되면서 매번 백지에서 다시 시작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담당 공무원이 새로 올 때마다 새 수퍼컴퓨터 과제가 나온다"고 말했다.

급조된 연구 과제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됐던 '로봇 물고기'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수질 감시에 로봇 물고기를 쓰면 좋겠다"고 발언하면서 과제가 만들어졌고, 연구비 57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개발 일정을 서두르면서 기술도 제대로 개발 못 했고, 연구자들은 결국 징계까지 받았다. 과제를 진행했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관계자는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냈으니, 무조건 만들라는 식이었다"면서 "담당 공무원은 과제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안 썼다"고 했다.

부처끼리 인기 영합한 정책 경쟁 벌여

주먹구구식 R&D 정책은 정부 전반에 만연해 있다. 2009년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가 큰 성공을 거두자 문화체육관광부 등 3개 부처가 '콘텐츠산업 발전 전략'을 내놨다. 2013년에도 여러 부처가 '빅데이터 발전 전략'을 각각 만들었다. 하지만 모두 거창한 대책만 발표됐을 뿐,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새로운 사업으로 포장하기 위해 이름만 바꾼 재탕 사업도 많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하고 있는 '국가 신성장 동력 사업'도 이름과 가짓수만 바꾼 '재탕'이 반복되고 있다. 신성장 동력 사업, 미래 먹거리 사업 등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한 박사는 "산·학·연 전문가들이 총동원돼 기획했다지만 실제로는 몇몇 공무원들이 만들어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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